때는 1990년..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때입니다...
한참 피끓는 청춘... 18세.. 달리는 기차도 밀면 쓰러질 것 같은 나이죠...그러나 우린 학교와 입시라는 굴레에 갇혀 제대로 힘 한번 못써보고 지나간 그 시절...
가을 중간고사를 앞둔 어느날, 우리 셋은 시험한번 제대로 보자는 결의로 시간 장소등을 정하여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장소는 우리집 (참고로 저희 부모님께서 맏벌이를 하셨거든요. 그래서 낮에는 항상 집이 비어 있었습니다.) 시간은 토요일 오후... 예정대로 모이긴 모였습니다.근데 TV좀 보다가... 애꿎은 라면 몇개 끓여 먹다가.... 공부는 하기 싫고, 그렇다고 뾰족히 놀만한 일도 없고....그렇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그 때였습니다. 불현 듯 제 눈엔 우리집 방 한칸을 세들어 사는 신혼부부의 활짝 열려진 방안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부는 왜 맨날 방문을 열고 다니는지... 참으로 이해할수 없는 사람들이었죠... 방안 TV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비디오테이프 한 개는 항상 저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저는 늘 음흉한 눈빛으로 비디오테이프를 노려보곤 했었는데... 그날따라 그 테이프가 번쩍번쩍 빛이 나는게 "어이.. 나 보고싶지? 볼래?" 하는 것 같드라구요...애라.. 모르겠다.. 만장일치하에 우리는 옹기종기 거실 한구석에 모여앉아 비디오의 PLAY를 눌렀습니다. 혹시나 했던게 역시나.. 우리의 기대에 부흥이라도 하듯...두 남녀가 열심히 무언가를 하더군요....한마디로 의상비, 장소비, 소품비등 비용이 전혀 안드는 영화라고나 할까요... 대사도 별로 없구..(물론 영어라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요), 배우도 딱 둘만 있으면 되는 그런....
입을 떡 벌리고 침을 질질 흘려가며, 눈도 안깜빡거리고 화면이 뚫어져라 쳐다봤죠..여섯 개의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 꿀떡꿀떡 침 넘어가는 소리....
그리고 비디오에서 나오는 심란한 소리등등.... 얼마쯤 흘렀나....그야말로 적막강산이던 아파트를 한방에 날려 버리는 듯한 또 한가지의 천둥번개같은 소리!!! "띵동띵동" 바로 초인종소리였습니다.... 증말 간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야말로 비상사태, 일촉즉발, 위기일발....
STOP을 누르고 부랴부랴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문제의 비디오의 주인인 그 아저씨가.... 하필이면 오늘?
이 대낮에 왜 집에 오냐구요? 우리 셋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못하고 어떻게든 사태를 해결해 보고자 무지하게 머리를 굴렸습니다..... 일단 아저씨를 방에 못 들어가게 하기 위해 식당으로 안내했죠...저희가 먹던 라면을 드시게 했습니다..... 그 아저씨 그냥 얼이 벙벙해 가지구 라면을 드시드라구요... 그런데 거실과 부엌이 통해 있어 비디오를 빼낼 수가 없었습니다....아뿔사!!!. 또다시 대책회의를 시작했습니다..."머리를 쓰자... 머리를 쓰자" 하고 있는데,
제 머리에서 또다시 번쩍 떠오르는 한마디 "두꺼비집이다 "....전기가 연결된 두꺼비집... 그렇습니다.. 그 아저씨의 직업이 전기수리업자 였던 것입니다....
스스로 감탄에 감탄을 하고 있던 찰라....
느닷없이 우리의 A군!!어디서 자기 팔뚝만한 햄머를 집어들고 밖으로 뛰어 나가는 것이 아닙니까?그러더니 "빠지직... 찌릿찌릿...." 몇 초정도 살벌한 소리가 들리더니 A군은 햄머와 함께 사라 지고, 남은 K군과 저는 사태를 파악하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이눔이 두꺼비집을 햄머로 내리쳐 순식간에 번개같은 불이 튀고, 두꺼비집 주변의 벽에도 쫘악금이 간 것은 물론이고, 온 집안이 정전이 되버린 것입니다...황당해서 정말...지가 무슨 이대근입니까? 우리집 벽이 무슨 장작이라 되는줄 알았는지....하지만 저는 뻔뻔하게 "어? 대낮에 웬 정전이냐?"라며 능청을 부렸고, 라면먹던 아저씨.. 투철한 직업정신을 앞세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알아서 후다닥 달려가시드라구요...이리보고 저리보고 하시더니 상태가 심각한 듯 연장통을 가져다가 작업에 열중하시더군요.... 이때다 싶어 K군과 저는 테이프 꺼내기를 시도했는데....아!! 우째 이런일이... 엎친데 겹친다고....산넘머 산이라고... 하늘도 무심하시지...정전이 됐는데 비디오가 작동을 하겠습니까? 저요..그날 증말 환장하는줄 알았습니다.테이프는 꺼내지도 못하고 또다시 둘이 앉아 대책회의 시작...전기를 고쳐서 꺼내려면 최하 3-4시간은 걸릴거고....아저씨에게 들키면 그 망신살은어쩌겠습니까? 평생을 "흉악한 놈덜"이라는 딱지와 함께 주변사람들에 변태취급을 받아가며 살지도 모르고,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되는 가운데.....최후의 방법..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비통한 표정으로 최후의 방법을 실행했습니다... 바로 비디오를 분해(??)하는 것이었죠...말이 분해지요... 무식한 K군 비디오를 거의 작살을 내 놨드라구요... 이판사판이었죠...한마디로 해물탕에 꽃게시체처럼 뚜껑은 날아가고 내부 구조가 훤히 보이는 비참한 최후를맞이한 비디오를 뒤로 하고....겨우겨우 테이프를 꺼내 아저씨 방... TV위 그 자리에 그대로 올려 놓았습니다...완전범죄라구요? 천만의 말씀.. 그날의 사태는 여기서 끝난게 아니었으니....전기 다 망가졌죠... 비디오요? 그날 이후 지금까지 저희 어머니는 비디오에 "비"자만 나와도 저를 그때 그 비디오처럼 분해라도 하실 듯이 노려보곤 하시지요.... 식구들에게 왕따당함은 물론이요,,,, 시험인들 제대로 치렀겠습니까? 정신적, 육체적, 금전적, 학업적, 사회적 피해량이 이루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제가 테이프 끝까지 마음껏, 제대로 볼거 다보고 이 지경이 됬으면 말도 안합니다...
잠깐... 그 잠깐 훔쳐본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그리고, 전기를 다 고치신 아저씨...다음날 저의 옆구리를 꾹 잡으시더니....한마디 하시더군요.
"잘 봤냐? 호기심이 많은 나이지... 흠흠흠" 이러는 게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기가 막혀...두꺼비집 부쉈던 햄머로 뒤통수를 세게,, 아주 세게 맞은 듯한...
충격으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죠... 진작에 다 안다고 얘기를 하시던가.... 그랬으면 우리의 친구 A군....그렇게 불쌍하게 되지는 않았을걸...두꺼비집 부수고, 햄머 손에 들고, 집에서 한시간 이상 걸리는 군포역앞 야구장까지 뒤도 안돌아 보고 뛰었댑니다... 거기는 뭐 하러 갔는지... 참. 나....하여튼 훗날 A군을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무식하면 양심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를 버리고 줄행랑을 치다니...
해마다 크리스마스 모임에 가면 A군은 언제나 제 구두발 밑에서 이젠 잊어버리자고, 그만 용서해달라고...애원을 하곤 한답니다...10년이 지난 지금도 비디오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친구들에게 이 방송을 통해 꼭 한마디 남기고 싶습니다... 이상한 비디오 조금 봤기로서니.... 그게 무슨 큰 죄도 아니고...다커서 결혼해 보니 별 신기한 일도 아니고... 주라고 봐도 안보는 그런 내용들이지만,,,
그 순수했던 시절... 작은 사건으로 인하여 발견한 우정과 평생을 얘기해도 지겹지 않은 수많은 추억들... 그리고 조금은 무식한 나의 친구들... 영원히 변치 말자꾸나.
그리구... A군!!!!... 내 맘 알지?
김범수1집-This Masqua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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