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친 비행기로 확인한 사랑
이대훈
2000.12.07
조회 39
서울의 교통 체증이 때로는 사랑의 결실을 맺는 데 도움이 될때도 있다는데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
-----------------------------------------------------------------------
우리가 처음 만난 건 ''97년 1월, 저희 둘의 첫 직장인 C화장품의 신입사원 연수교육에서였습니다.
그녀는 미용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강사로 입사하게 되었고, 저는 영업관리 파트를 지원했었습니다.
공대를 나온 저로서는, 그야말로 화장품이란 것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고, 교육 중 쉴새없이 흘러나오는 전문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자연스레 그녀와 이야기 할 기회를 갖게 되었죠.
연수가 끝난 후, 그녀는 서울 본사에, 저는 부산에 발령받아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서울과 부산에서 떨어져 지내면서도, 우린 업무 상 전화를 통해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었고, 어느새 매달 한두번씩은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데이트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주말이 되면, 외박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녀 대신, 제가 서울로 가는 게 관례가 되곤 했죠.
그러던 어느날, 피곤한 저를 안쓰럽게 생각해, 이번엔 그녀가 부산으로 내려 오기로 했고(물론 그녀의 집에는 회사 연수에 1박2일로 참가해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서...), 저는 약속 당일 부산의 김해공항에서, 그녀가 타고 올 서울발 부산행 8시 비행기를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착할 시간인 9시가 다 돼어서도 올 사람은 오질 않고, 대신 핸드폰이 울리고...
"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훈씨! 나 차가 막혀 비행기를 타지 못했어요, 어떡하면 좋아... "
참고로, 본사는 강남 청담동에 있어서, 6시에 퇴근해 8시 비행기를 타기엔 시간이 빠듯한 상황인데, 빨리 만날 욕심에 여유를 두지 않은 탓입니다.
" 문디, 그러니까 미리미리 서두르라꼬 했다 아이가, 내리오기 싫으면 치아라!" 라며 경상도 남자 특유의 애정표현(?)을 시작했고,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흐르기만 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까, 성질만 낸다고 될일도 아닌 것 같아, 흥분을 가라앉히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회사 연수에 1박2일간 참가(?)해야만 했거든요.
집에 돌아갈 수도 없고, 금요일 오후라 비행기표는 없고...
그러나 우린 꽤나 똑똑한 커플이었습니다.
" 마, 비행기는 물 건너 갔은께, 니는 지금 바로 서울역에 가서 제일 빠른 기차타고무조건 내리온나, 입석이라도 끊어서... 아마도 김천쯤이 중간 지점일끼다. 거기서만나자."
이렇게 해서, 나는 차를 몰고 무작정 김천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3시간 후의 멋진 상봉(?)을 상상하며, 나의 명석한 두뇌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게 왠일입니까?!,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구지나 구미쯤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차가 막히기 시작하더니, 10분, 20분... 대형 사고가 났는지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갓길도 없는 도로구간이라, 발만 동동 구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랜시간이 지나도 도로는 뚫릴 기색이 없었고, 이젠 하나 둘씩 시동을 끄고 잠을 청하는 차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시간이 새벽 1시경... 김천역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을 30분 넘긴 시각이었죠.
그때(97년)만 해도 휴대폰이 귀한 시절이라, 그녀는 휴대폰 대신 삐삐밖에 없었고, 내 휴대폰은 통화권에서 이탈한 상태라 연락할 방법도 없고...
이런 경우를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릅니다. ''피가 마른다는 느낌''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거라고 혼자 되뇌이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데요.
"지방 소도시 역 주변에는 불량배들이 설친다는 데... 그것도 지금은 새벽 1시...여자 혼자..."
이러는 동안 경찰차가 오고, 견인차가 도착하고 하더니, 드디어 막혔던 길이 뚫리고, 살인적인 속도로 김천을 향해 질주하던 중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 전데요, 왜 연락도 안돼고 오지도 않는 거죠? 무서워 죽겠어요"
" 사고가 나서 차가 막혀서 그러니까, 니는 역 대합실에 매표소 안에 들어가 있거라"
" 새벽이라 그런지 대합실 불도 다 끄고, 지금 이 안에는 노숙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어요, 술 취한 사람들도 많구요"
" 그라믄, 니 거기서 젤 가까운 여관에 가서 내한테 전화 다시해라, 최대한 빨리 갈께, 그라고 절대로 누가 문열어 달라고 해도 열어주면 안된데이. 절대로..."
이렇게 전화를 끊고 40분 후, 저는 그녀가 무서움에 떨고 있는 김천역 앞 허름한 여관에 도착하게 되었고, 도도하기만 했던 그녀는 나의 품에 와락 안기며 까닭 모를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우리는 해운대 달맞이고개의 근사한 카페 대신, 김천역 앞 포장마차의 닭똥집과 소주로 그녀의 26살 생일을 축하하며, 긴긴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후 이 날의 외박 사건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녀의 집에 들키게 되었고, 그때만 해도 결혼에는 관심도 없었던 제가, 한 여자를 책임 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저희 둘 곁에는, 우리의 무용담을 듣다 잠든 10개월 된 아들아이가 하나 누워있는데요.
서울 여자와 경상도 남자가 만든 작품(?)이라서 그런 지, 옹알이도 서울 부산 억양이 뒤섞여 있네요.
서울여자와 부산남자의 결혼, 추천할 만합니다.
못다한 나의 이야기-토이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