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꽃보다 더 활짝 핀 24살 나이때 이야깁니다.
당시 한 친구가 연말 즈음에 생일이 있었고, 25살이 된다는 부담감과 올해만큼은 다르게 보내자는 세명의 친구들의 의견이 모아지자, 과감하게 특급호텔로 정했습니다.
신혼첫날밤이 아니면 떠올리지도 않을 호텔이라는 이름...
선이라도 볼 기회가 있었다면 가봤겠지만, 아직 그 나이는 아녔기에 가볼 기회가 없었던 거죠.
딱히 남자친구 하나 없던 애들이, 호텔에 방을 잡느냐 하면 그건 아니고요, 한번도 가보지 않은 일류호텔에 가서 우아하게 커피를 한잔 마시자는 거였죠...
그래서 혹시 자리가 없을까를 대비해서 한 친구가 역시 우아하게 예약을 했습니다.
당일이 되고 약속시간에 모두 모여, 호텔에 커피마시러가는 주제에 배고플까봐 저녁을 떡복기니, 오뎅이니, 김밥이니 하며 배를 그득히 채우고,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예약된 시간이 다 되엇길래, 번쩍거리는 인테리어 구경을 뒤로 하고 실내로 들어섰습니다.
웨이터들이 뒤에 오더니 코트를 받아주더군요...
음....역시 호텔이라 다르긴 다르군....
만족한 우리들은 카페치고는 다소 밝은 분위기에 의아했지만,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지배인이 오더니 생일을 축하한다며 열심히 샴페인이 몇년된건지를 설명하면서 터뜨릴려고 열심히 흔드는데, 눈치가 무쟈게 비쌀것같으니깐, 안할래요 하고 거절했지요..
어라?....... 근데 왜 메뉴를 안갖다주는거지?.....
머가 있는지 알아야 시킬것 아닌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던 우리들은 결국 웨이터를 불렀습니다.
"여기염...왜 메뉴판 안주나염?....."
무척이나 귀여운척, 눈을 깜박거리면 말이죠...
그러나, 당황하는 웨이터의 표정에 이게 먼가 아니다 싶은 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더군요.....
잠시후 그대로 갓던 그 웨이터가 지배인을 델구 왔습니다.
"메..메뉴판을 찾으셨다구요?..."
그리고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다소 시끄러운 분위기와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눈치빠른 한 친구 입에서 나온 말..
"메뉴판이 없다면..... 그렇다면 여기는 뷔페?...."
우리나 거기 있던 지배인이나, 웨이터나 그 상황을 알수가 없었습니다.
기껏 배부르게 먹고 커피 한잔 마시러 왔는데, 뷔페라니....
모두들 짐을 챙기며 일어서려는데, 지배인이 붙잡더군요.
예약이 잘못됐다는걸 알았는지, 잠시만 기다려달라더군요.
순진한 우리들은 그대로 있었고 지배인은 우리에게 조용히 안을 하나 제시하더군요..한사람분을 제해줄테니 먹고 가라...
당연히 거절했죠..우린 배 띵띵하게 부르다, 에이, 이럴줄 알았으면 진작 나이트나 갈걸...꿍얼꿍얼..
지배인 다시 제안하더군요..2인분 값만 내달라...
반값이나 제해준다는데 귀가 솔깃해지더군요.
어차피 이렇게 됐는데, 시간도 늦었고하니, 그냥 여기서 먹고 놀다갈까?....
결국 2인분을 내고 먹기로 하고 우린 그 상태에서 뷔페를 또 돌았죠..
일부러 비싼 회니, 연어알이니, 케비어알이니....
하지만, 난 입이 촌스러워서인지 케비어를 왜 먹나 싶더군요.
그날 돈은 생일인 친구가 내기로 한거라, 나이트 갈 만큼 여유도 충분했기에 걱정 없이 먹고 나왔습니다.
계산하려는데 그 지배인이 다가오더니 직접 계싼서를 주는데, 알고보니 지배인이 팁을 제했더군요....팁까지였어도 부담스럽진 않았지만, 그래도 챙겨주는 지배인이 고맙더군요..
그리고 호텔에서 걸어나오는 길에 우리는 웃느라 배가 아파 죽는줄 알았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그렇게 웃으면서 서너 정거장을 걸었거든요.
몇년뒤 친구 하나가 그 호텔 뷔페에 갈일이 있었는데 여전히 그 지배인이 있다더군요..여전히 친절하게 한다더군요..그 친구 지배인에게 인사를 했는데 잘 모르는 눈치더라고...
예약이 잘못된 배경을 추측해보면... 카페를 예약한다는 것도 사실 잘못된 발상이었고, 그에 따라 예약을 받는 분이 잘못 오인했을수도 있었을것 같고, 게다가 뷔페의 이름도 카페 비슷한거였던거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친구들도 너무 순진했던것 같아요.
만일 지금 그런일이 생긴다면, 어머 기분나빠 머 이런데가 다 있어 이러고 나올것 같군요.
480801-김국환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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