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얼마전 일이 생각나서 글을 올립니다. 누구에게든 이 답답한 심정을 얘기하고 싶었거든요.
친구들과 병문안을 갔다가 아픈 친구에 대해 걱정을 하며 무심히 걷고 있는데 느닷없이 왼쪽 어깨에 맨 가방이 뭔가에 걸려 딸려 가고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순간, 엄청난 힘에 의해 가방은 내 어깨에서 벗어났고 나는 아무 저항도 못하고 땅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말았습니다. 옆에서 나란히 걷던 친구 둘이 깜짝 놀라 나를 부축했고 그제서야 가방이 날치기의 손에 의해 도난을 당했다는걸 알아채고는 입속으로 우물거리듯 " 가방, 가방을 가져갔어." 하며 손을 들어 그들이 달아난 쪽을 가르켰습니다. 오토바이를 탄 그 날치기들은 이미 인도에서 차도로 들어가 버스앞으로 사라지더군요. 우리보다 한걸음 뒤에 체격이 건장하게 생긴 중년 신사 한분이 따라오고 있었던지 우리를 보며" 저 오토바이가 가방 날치기 했죠"하더군요. 우리는 그 신사분이 뭔가를 도와 줄 것을 기대하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사분의 대답은 간단 했습니다.
" 이미 남의 물건 된 거죠 뭐."
그 신사분의 어조는 필요 없는 짓 하나마나라는 투였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그 가방안에 들어 있던 카드나 은행통장의 거래를 중지시켰습니다, 연락을 받은 경찰이 득달같이 달려와 당시의 상황에 대해 물었지만, 나나 나의 친구들이 기억하고 있는건 별로 없었다. 버스 뒤로 사라지던 장면과 두 친구들이 보았다는 남방셔츠 뿐인데 그것도 체크 무늬였는지 줄무늬였는지, 밤색이었는지 회색이었는지 도무지 명확한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중언부언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장면을 목격했던 신사분이 은행 로비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게 보이더라구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 잡는 그런 심정이었지요.
그러나, 신사분은 "날치기요? 누가요? 난 몰라요."하데요.
자기 쪽에서 먼저'' 날치기 당했죠?" 했던 사람이 ...순간 얼굴이 화끈했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눈 뜨고도 코베어 멕힌다는 서울의 생리를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던게 아닌가. 예있소 하듯 차도쪽 어깨에 가방을 건성으로 걸어놓고 하느작 걸음을 걸었던 것이며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동지나 되는 것처럼 믿음을 갖고 기대를 한 것이 창피하기조차 했다. 어깨에서 가방이 빠져 나가던 그 순간보다 더한 낭패감이 들었습니다.
경찰의 끈기있는 질문에도 끝내 그 신사분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노라고 시치미를 뎄습니다. 경찰이 파출소에서 온 전화를 받기 위해 한쪽으로 갔을 때였다.
"어차피 찾지도 못할 것 왜 여러 사람 귀찮게 허슈? 더 큰 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만하면 운수 좋은 날이지."
날치기를 당했는데 운수가 좋은 날이라고?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가서 눈흘긴다고 날치기해간 사람보다 그 방관자가 더욱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수더분하게 생긴 아주머니 한분이 그 장면을 목격했노라며 증언을 자청하는게 아니겠습니까?
" 내가 봤어요 오토바이 색깔이며 범인들의 인상착의를요. 내 전화번호를 적어 줄테니 필요하면 연락하세요. 이런 일에 개입하면 경찰에서 오라 가라 귀찮게 한다며 꽁무니들을 사리는데 그러면 안된다는걸 내 스스로 체험했으니까."
사실인즉 그 아주머니 또한 나와 같은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 분이었다. 대로변에서 오토바이 날치기를 당했는데 나와는 달리 그 분은 그 범인의 모든 걸 똑똑히 볼 수 있었답니다. 오토바이 색깔은 물론 나꿔 챈 가방을 오토바이 뒷좌석의 바구니에 넣는 동작이며 골목으로 꺾어들기 직전에 희죽 웃으며 돌아보던 그 얼굴까지도. 그러나 막상 경찰이 달려와 질문을 할 때 그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노라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데요.
"그래놓고 집에 와서 경찰을 욕했지 뭐유.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먹고 사는 경찰은 뭐하는 거냐,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근데 곰곰 생각해 보니까 범인이 대로를 활개치게 만든건 바로 나 자신이었더라구. 저녁에 경찰에서 용의자를 잡았다고 전화가 왔는데 귀찮기도 하고 이미 증거물은 사라졌을 텐데 어설프게 건드려봤자 득될 것 없다는 얄팍한 계산이 앞서서 아무것도 아는게 없다고 뚝 잡아 뗐거든. 근데 자꾸 예수를 모른다고 거짓 증언한 베드로가 생각나는 게야. 내가 거짓증언을 했기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할까 싶기도 하고..."
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가방을 날치기 당했을 때보다 신사분으로부터 증언거부를 당했을 때보다 더 무렴하고 더 부끄러웠습니다. 사실 나 역시 ''없던 일로 해주세요. 액 땜했다 치지요 뭐'' 라고 말하려던 참이었으니까요.
지금도 오토바이 소리만 나면 아직 가시지 않은 타박상 자리에 통증이 더하며 나도 모르게 몸이 오그라들곤 합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과연 내가 목격자라면 그 아주머니처럼 할 수 있을까? 하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아주너미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뿐이군요.
고개를 돌렸던 그 아저씨 말마따나 잃은 물건이 되돌아 오지는 않았지만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증언을 해준 그 아주머니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이돌-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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