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가습기
고효숙
2000.11.30
조회 48
저는 서른 두살의 결혼5년 된 세아이의 엄마이며 직장인입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하려니 아이들이 언제나 걱정입니다.
다섯살, 두살, 한살의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저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냥 크나요!
어제 백일이 된 막내 아이는 아직도 한밤중에 한번은 일어나 우유를 먹여주어야하고, 세아이 모두 먹는것, 입는것, 싸는것 이 어른의 손길이 필요하지요. 이런
아이들을 데리고 제가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낙천적인 성격과 아이들을
보살펴 주시는 어머님들(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덕분이지요
요즈음 아이들에게 전염성이 강한 수두며 홍역이 돌고 있는것 아시죠
한 아이만 전염되도 우리는 세아이를 치뤄야하기 때문에 미리 예방접종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예방접종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죠
몇일전 우리 막내 아이가 3개월이지나 간염 예방접종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감기 기운이 있는 아이가 예방접종을 하고 나니 몸에 열이 있더라고요
첫날 저녁은 그럭저럭 넘기고 이튼날 아침 저는 출근하고 친정어머니께서 막내
아이를 돌보셨지요. 병원에서 감기에 대한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받아 왔지만 너무 어린아이에게 감기약을 먹이고 싶지 않아 이겨내기를 바라며 놔 두었더니 증세가 점점 더 심해졌나 봅니다. 열이 오르고 코가 마르고 아이는 자꾸보채고....
엄마가 전화를 했더라구요. 아이가 이렇게 열이 많고 아프니 어쩌면 좋겠냐고요.
하는수 없이 병원에서 처방받아온 약을 먹이고 가습기로 습도를 유지해 주자고
엄마가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4년전 구입한 가습기가 고장이나
A/S를 받아 수리를 하고 하루 사용했는데 또, 고장이 난거예요
코드를 전원에 연결해도 소식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써비스썬타에 연락하니 내일 수리에 들어가면 4일후 이상없이 고쳐 주겠다고 하더라구요. 급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필요한 수리라고하니 그말을 믿을 수 밖에 도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급한 김에 살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사는것 보다는 수리해서 서용하는것이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겠더라구요
저녁이 되어 큰아이를 어린이 집에서 데리고 집에 가보니 아이가 열은 있지만
그래도 생기가 있더라구요. 아이옆에는 엄마가 아래층 동서에게서 빌려온 가습기가 증기를 품어 내고 있었고 하루 종일 아이때문에 노심초사하느라 주름이 깊어진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이를 지켜보고 계시더라구요
친정집으로 돌아가셔야 되는 엄마는 괜찮겠냐며 아이가 아프면 집에 가서도 잠이 안온다고 하시며 시간이 되어 급히 집에 가셨죠
얼마 후 동서가 전화를 했더라구요
"형님 종훈이 좀 어때요"
"어, 지금은 좀 괜찮아, 가습기 필요하지!, 내가 내려다 줄께"
우리 동서도 저에게 그 전화하기가 얼머나 어려웠겠어요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조카아이도 요즈음 감기로 고생인데 잠을 잘때 가습기가 필요한 물건이거든요
가습기를 돌려주고 나니 내심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몇일만 잘 버텨주기를 바라며 주방 씽크대에 물을 받아 놓고 방안에 빨래도 널어두고 가습기 대체 효과를 얻기 위해 이런 저런일을 했지요
그런데 또 전화가 왔어요
"애미니 종훈이 좀 어떠니, 가습기는 내려갔니"
"네, 조카도 필요하니까 내려다 주었어요"
"종훈이 가습기 틀어주어야 하는데 어떻하니"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말고 주무세요"
전화를 끊고 있는데 30분후쯤 또 전화가 온거예요
"애미야, 나 전자제품 대리점인데, 가습기를 사려니 가격은 아렇고 제품제조 회사는 저렇고 어떤게 좋겠니"
처음에는 그럴필요 없다고 했지만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해서 그냥 집으로 가실 분이 아님을 알기에 " 그럼 사주세요"했지요
저녁 10시 30분쯤 엄마는 가습기를 들고 숨이 가쁘게 오셨죠.
아이는 그런 할머니의 정성을 아는지 잠을 자다 깨더라구요
엄마가 사오신 가습기를 작동 시키고 뿌연 증기가 나오는 방에서 아이는 금새 다시 잠이 들었고 아이가 잠이 들어도 엄마는 깊은 잠을 못자시더라고요
나에게는 "내일 출근해야 되니 어서 자거라" 하시고요
얼마쯤 자다가 깨어보니 새벽 4시 30분
엄마는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계셨고 그 옆에서 나는 마냥 자고 있었나 봅니다.
엄마는 그러시더라고요
"우리 종훈이가 걱정되서 전화해 보니 가습기를 가져 갔다고 해서 그 길로 가전제품 판매점을 3곳이나 들러 가습기를 샀단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가면 가습기 사는 비용만 들겠니, 그리고 아이는 또 뭐가 되고
돈은 그렇게 써야 되는거야, 꼭 필요한 때에 꼭 필요한 곳에 말이지"
어렵고 힘든 시절에 고생하시며 자식을 기르신 어머님의 지론인 듯 싶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죠.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울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하고요
엄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독백이 그린 미소-지니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