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이라 서둘러 출근길에 나섰다. 그런데 정류장에 도착해 보니 지갑에 잔돈은 없고
만 원 짜리 한 장만 달랑 들어있는 것이었다.둘러보니 가게도 문을 안 열었고 집으로 다시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이른 시간이라 정류장엔 사람들도 별로 없는데 마침 젊은 여자 한 명이 내가 서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침부터 민망한 일이긴 하지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저...만 원 짜리라서 그러는데 바꿀 잔 돈 좀 있으세요?""…없는데요."
"…죄송합니다…."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저어대는 바람에 머쓱해진 나는그냥 택시를 타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저...이걸로 타세요." 하며 좀 전의 그 여자가 300원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쑥스럽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에 나는 얼른 동전을 받아들었다.
잠시 후 마을 버스 한 대가 우리 앞에 와서 섰다.공교롭게도 같은 버스에 탈 모양이었다.
겸언쩍은 우리는 어색한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조용히 버스에 올랐다.앞 뒤 자리에 앉아 가게 되었고, 그 여자는 나보다 한 정류장 먼저 내렸다.
다음 정류장에 도착할 쯤 되어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이런! 의자 위에 갈색 지갑이 올려져 있는게 아닌가!
좀 전의 그 여자가 지갑을 놓고 내린 것이다. 나에게 동전을 주려고 핸드백에서 다시 꺼냈다가 흘린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생각이 스치자 나는 지갑을 얼른 주워 가지고 내렸다.다행히 지갑 안에는 연락처가 들어 있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 수 있었다.
"아. 좀 전에 마을버스 같이 탄 사람인데요…지갑이…."뒤늑게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걸 확인했는지 전화기 너머로 그 여자는 다행이라는 듯
안심하는 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나는 아침에 받은 은혜도 갚고, 지갑도 찾아줄 겸 점심 약속을 했다.
일하는 곳도 정류장 하나 거리밖에 되지 않으니 우리 둘이 만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점심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나는 왠지 다음에 또 만나야할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그렇게 우리는 매일 점심 시간마다 중간쯤에서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친분을 쌓아갔고, 6개월 후 결혼에 골인했다.가끔 그 일이 생각나면 아내에게 짓궂게 묻곤 한다.
"혹시 그 때 일부러 지갑 흘린 거 아니야?" 그러면 아내는,"그 때 동전을 주는 게 아니었는데…."하며 밉지 않은 눈을 흘긴다.
본전도 못 찾을 말이었지만 아내는 여전히 착하고 사랑스럽다. 사랑이 때론 이렇게 얘기치 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나도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몰랐었는데….나는 요즘 아직도 장가 못간 친구 녀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단 정류장에서 맘에 드는 아가씨한테 잔돈 좀 바꿔 달라고 해봐. 혹시 알아? 나처럼 천사표 아내를 만날지?"
좋은노래 임재범-그대앞에 난 촛불이어라
300원의 사랑!!
김정완
200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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