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사....그리고 가을을 마감하며....
김수진
2000.11.27
조회 48
엄마.....
결혼을 한 후에는 왠지 이 단어만 부르면 목이 메이고 눈이 시려옵니다.
맘 속으로 그저 조용히 부르기만 하여도 제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드는 단어....엄마...

얼마전 저희 부부는 이사를 했습니다.
''사람은 똑똑하고 착하지만 집안의 경제사정이 넉넉치 못하여 마음에 걸린다''라고 사윗감 후보에 대한 첫 소감을 말씀 하셨던 저희 엄마는, 그러나 딸의 마음이 다칠새라 정작 한마디의 반대 의사도 비치지 못하시고 그렇게 당신 속만 끓이셨습니다.
결국 그 소리없는 갈등을 저의 신랑의 "시작은 보잘것 없지만 끝은 창대할 것입니다~"로 마무리 되는 진심어린 편지 한통으로 끝내시고 오히려 저에게 결혼에 대한 확신을 주신 분이셨습니다.

넉넉치 못한 사람에게 시집가는 것이 죄송스러워서 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결혼준비를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고 결국, 신혼집에는 제가 처녀때 쓰던 살림살이들이 그대로 들어갔고, 다른 많은 절차들도 간소화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식에게 주어도 모자라다고 생각하시는 우리 엄마...." 그러면 안된다. 그러면 내가 섭섭하다"고 자꾸만 무언가를 더 주시려 하셨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혼을 하는 것만 같은 저의 자격지심 때문에 차마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의 엄마 가슴에 멍을 하나 더 만든 셈이 되었다는 것을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식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당신의 인생에 몇개 되지않는 "후회"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저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번 저희 이사를 앞두고 "내가 니 고집을 꺽고서라도 제대로 해주어서 시집을 보냈어야 하는것이었는데....어리석어서 너를 그렇게 엉터리로 결혼 시킨것 같아 후회스럽다....그때 못해준 것, 이번 이사하면서 좋은 것으로 다 장만해줄터이니 암말 말아라.."하고 미리 엄포를 놓으신 것입니다.
정말 아니라고, 그런게 아니라고, 엄마 딸은 그런것 아무렇지도 않다고, 우리만 화목하게 잘 살면 되는거라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이번만은 고집을 꺽지 않을 기세이셨습니다.
결국, 2년간 맞벌이에도 불구하고 2배로 뛰어오른 전세값을 충당하지 못해 끙끙거리는 저희에게 노후 연금 들어놓은 셈 치겠다시며, 당신의 돈을 빌려주셨고, 그것으로 조금은 엄마의 마음의 짐을 덜어놓으신 듯 합니다.
물론 지금도 신랑의 연봉보다도 많은 그 돈을 " 너희 잘사는게 갚는것이다"고 하시며 돌려받지 않겠다고 우기시고, 티브이며 세탁기, 오디오, 가구....좋은 것 사주마 매일같이 전화를 하시고, 절대 사지 못하게 하는 저 때문에 미리 사서 지방에서부터 서울까지 들고 오시곤 합니다.
엄마 덕분에 작은 집이지만 결혼 2년만에 내집을 마련해 이사하던 날....엄마는 잠이 잘 안오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새집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며칠을 두고 고민하시는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이 가을.....엄마의 사랑과 그리고 새집으로의 이사로 그 어느때보다 행복하게 마감합니다.
세상 어느 엄마가 그렇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저에게 있어 저희 엄마는 너무나 특별한 분입니다.
잘해드리려 마음을 써도 엄마가 저에게 해주시는 것의 십분의 일도 못해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하기만 하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라고 기도를 해도 엄마가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의 만분의 일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C.C.-유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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