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저는 수필강좌를 듣기 위해 동네아줌마들을 꼬셔 모문화센터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멋진 선생님의 강좌를 듣는 맛에 홀짝 빠져 강의실에서도 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지요.
그날도 아침 일찍부터 수선을 떨고 나와 문화센터로 막 들어가던 차였습니다.
"어머, 이게 누구야? 너 문정이 아니니?"
누군가가 제 어깨를 치며 아는 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야, 나..... 명혜언니! "
"어? 언니!"
그 언니는 제가 어릴 적에 이웃에 살던 언니였습니다. 고생을 많이 했는지 젊은 나이인데도 얼굴이 많이 상해보였습니다. 결혼하자 마자 남편이 사고로 죽고, 지금은 문화센터 근처에서 다방을 운영하고 있다며 제게 명함을 주었습니다. 저는 어니와 긴 얘기도 못하고 헐레벌떡 강의실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벌써 선생님의 강의는 시작되었고, 저는 창피해서 얼굴이 벌개졌습니다.
"죄....죄송합니다."
"김문정씨, 웬일로 오늘은 늦으셨네요. 그럴땐 커피라도 한잔 들고 오셔야 되는거 아닙니까?"
선생님의 말씀에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저는 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는데 도무지 죄송하고 창피해서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하겠더군요.
그 순간 갑자기 강의를 끝내시면 늘 복도에서 자동판매기커피를 꺼내드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더불어 조금 아까 만났던 그 언니의 명함이 제 주머니 속에 있다는 것도 떠오르더군요. 저는 가방에서 몰래 제 핸드폰을 꺼내 소리를 죽이고 그 언니의 핸드폰번호로 문자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언니, 나 문정이야! 여기 바로 옆 문화센더 503호인데 11시 30분까지 커피 넷만 갖다줘. 늦으면 안돼!"
저는 같이 다니는 동네아줌마들 몫까지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강의는 11시 30분에 정확히 끝나니까 그때 커피가 오면 선생님께 드릴 목적이었지요. 그 언니의 장사도 돕고요.
강의는 한참 동안 진행되었고, 드디어 끝나갈 시간을 10여분 남겨 놓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똑똑!"
누군가가 강의실 문을 힘차게 두들겼고, 선생님께선 다소 놀란 표정으로 누구냐고 물으셨지요.
"저, 커피 배달 왔는데요?"
이게 웬일입니까? 문이 열리고 짧은 치마를 입은 젊디 젊은 아가씨가 보자기에 싼 보온병과 커피잔을 들고 들어오는게 아닙니까? 강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이 되어 그 다방종업원과 선생님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제일 많이 놀란건 당연히 저겠지요. 저는 강의 끝나는 시간에 맞춰 그 언니가 커피를 들고들어올 줄만 알았지, 그렇게 섹시한 모습의 젊은 여자가 들어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 커피 시킨 사람 있나요?"
선생님의 물음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차마 저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이건 또 웬일입니까?
"김문정씨라고.... 커피 네잔 여기로 갖다달라고 했는데요?"
그 섹시한 여자의 입에선 제 이름이 튀어나왔고, 순간 강의실 안의 모든 시선들이 저에게로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저 맞아요. 제가 선생님께 하도 죄송해서 커피라도 대접하려고....."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의실 안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고, 저는 그날 부터 그렇게도 열심히 나가던 문화센터를 그만 나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다방을 하던 그 언니가 그러더군요.
"그날 너무 배달도 많아서 내가 그 앨 보냈어.네가 늦으면 안된다고 그래서 일부러 일찍 보냈지 뭐~"
그때 그일로 저는 이제 커피만 봐도 온몸이 떨리고, 돈만 내고 문화센터는 다니다 말았다고 제 남편의 구박도 심하게 받으며 살고 있답니다.
탁재훈 : 나의 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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