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후에 세안을 하려구 비누를 쥐었습니다. 문득 느껴지는 딱딱함.
아니나 다를까 한쪽면에 누군가 맥주병 뚜껑을 두어개 박아놓은겁니다. 엄마께 여쭤보니 아빠가 그래놓으셨다는군요. 아빠가 말입니다.
제가 아는 아빠는 무척이나 깔끔하시구 자그마한 비누하나에 그런 신경을 쓰시는 분이 아니시거든요. 넥타이 와이셔츠 바지 한치의 오차두 없이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으시고 저희 사내같은 딸년들의 옷 매무새를 타박주시던 멋쟁이시죠. 하지만 아빠가 왜 이래 놓으셨을까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엄마는 아무렇지두 않게 아껴 쓰시려고 그러시겠지. 그걸 같구 뭘그러냐 하셨지만 비누의 한쪽 면이 닳을새라 병마개를 구하러 이리저리 다니셨을 아빠의 모습과 함께 놓인 비누의 모습이 왠지 서글펐습니다.
뭐든지 오래되면 닳기 마련이죠. 옷도 오래입으면 헤지구 양말도 오래신으면 구멍이 나구. . . . . 그 함께한 과정보다는 끝끝내 덩그러니 닳아빠져 버려지고말 오랜것들을 보고 있노라니 아빠도 갑자기 허전해지신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로 환갑을 넘기시고 지금은 호스피스활동에 여념이 없으신 아빠의 마음에 오늘은 꽃이라두 한다발사서 안겨드릴까봐요. 내손안의 세상-피노키오
비록 닳아서 없어지는 한이 있어도. . .사랑합니다.
문여정
200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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