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배철식
2000.10.14
조회 48
오늘 저는 저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 사연을 올립니다
저때문에 저의 아내가 많이많이 지쳐 있었어요. 왜냐구요. 저는 작년 4월에 행정공무원(더 정확히 표현하면 학예연구사, 영어로는 큐레이터)을 포기하고 대학원 선택을 했거든요. 제가 직장포기의 기로에서 헤맬때, 보다 못한 아내는 저의 편을 들어주었고 저에게 용기를 참 많이 주었어요. 제가 교통사고로 6개월간 병원에 입원하며 큰 수술을 세번씩이나 했었을 때도 아내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제 옆에서 간호를 지극히 해 주었어요. 무릎이 많이 파열되어 수술 경과 후에 장애 4급이라는 멍에를 짊어졌지만 아내의 사랑때문에 제가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잊고 살곤 하죠.
그리고 제가 대전 을지병원에서 재수술 스케쥴을 잡고 있는 동안에 우리 큰딸이 선천성 심장병이라는 청천병력과 같은 소식을 아내는 또 들어야 했죠. 그 무거운 짐을 아내는 혼자 짊어졌어야 했어요. 내가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큰 딸의 수술...아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참 많이 울었을 거에요. 그런데 정말 저에게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죠.
정말 아내가 저에게 눈물을 보인 것은 제가 직장에 사표를 내고 시골 부모님을 찾아 뵈었을 때에요. 처음에 저에게 날아오던 질책의 말씀이 아내를 향하여 날카로운 비수로 날아갔어요.(어머니께서는 네가 시집와서 우리집에 잘되는 일 하나 없다고, 그렇지 않아도 지쳐있는 아내의 가슴에 깊은 상채기를 주었죠) 제 어머님이 아내에게 차마 못하실 말씀을 하신 거에요. 아내는 아무 말 못 하고 그냥 죄송하다고만 했어요. 태어나서 처음 어머님이 미웠어요.그 날 아내의 소리없는 눈물을 지켜보면서 저도 참 많이 울었어요. 그 후로 한참동안 아내는 깊은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구요.
지금은 제가 충남대교육대학원을 다니고 있구요(2년 뒤에 국어선생님이 꼭 될 거에요) 또 밤에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어요. 학원강의도 7월달부터 시작했으니, 아내의 살림살이는 참으로 어려웠겠죠. 아이들(3살 승렬이 6살 소현이)이 아직 어리니 특별히 부업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큰 딸 소현이의 수술은 가슴중앙부분에 10센티미터 정도의 큰 흉으로 남아서 지금도 가슴이 패인 옷을 못입혀요. 그것을 볼 때 더욱 마음이 아프지만, 소현이가 비교적 건강하게 자라서 위안을 삼고 있죠.
손숙 아줌마 배기환 아저씨.
지금 저의 아내는 시골 부모님(시부모님)께 최선을 다 하는 아내로 다시 자리매김했어요. 부모님도 저의 아내에게 정말 잘 대해 주셔서 저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저도 사실 부모님을 무척 사랑하거든요. 정말 저희 5형제를 위해 온 세월을 인내하며 업보같은 인생을 사신 분들이시거든요.
제가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빨라야 11시가 넘어야 되거든요.
아내는 그 시간에 늦은 저녁식사를 늘 준비하며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가요속으로''를 통해 아내에게 사랑을 전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까지 변변한 선물 하나 제대로 못했어요. 아내는 늘 제가 건강만 지킨다면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전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만약 방송이 된다면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겠죠.
비록 저는 경급 장애인이긴 하지만 많은 장애인 여러분에게도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열린 마음으로 세상에 나서 보라는 것이에요. 처음엔 많이많이 힘드시겠지만 장애인이 떳떳하게 세상에 설 때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더욱 사라질 수 있어요.
그럼 이 방송을 시청하는, 아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저의 부족한 글을 맺을께요.
너무 예쁜 하늘이, 큰 딸 소현이에게 빨리 보여 주어야 겠어요 아내에게 바칩니다.


Flying Love(天上飛愛)-젝스키스3집
아내가 무지무지 좋아하는 곡입니다
꼭꼭꼭꼭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배철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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