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에 사는 박군이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8년전입니다..
상고를 나온 저는 집안 형편상 진학을 하지않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나의 직업에 애착을 가지며 열심히 생활하던중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걱정이 가기 시작하며,
군대를 먼저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그냥
아무생각없이 해군을 지원해..입대 날짜를 기다리며
뒹굴뒹굴 시간만 보내오다, 드뎌 입대를 했습니다.
물론 어떤이들처럼 방위다 면제란것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사실 전 대한민국 남자는 무조건
군대를 가는줄만 알고있었습니다..
면제,방위가 있는줄은 전혀 몰랐습니다..하하하하
넘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몰랐었죠...
그리곤 8주간의 훈련을 받고, 간판수병이란 직책을
받은후 4주간의 교육을 받고, 제주도에서 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제주도에 가면서 군대 동기인 떡대를 만났습니다.
사실 이친군 나랑 같은 갑판수병인데도
좀 행동이나 말을 느리게 하는 편이라서 그런지
취사병으로 바뀌어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전 장난기가 많은편이라..
이친구를 놀려도 맘좋은 군동기인 떡대는 항상
웃으며 서로 우정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건은 발생되었습니다.
평소 여자친구가 없었던 그친구는 펜팔이나
아님 편하게 지낼수 있는 여자친구가 한명 있으면
좋겠다고 노래부르다시피 했는데 담배 살돈이 없었던 제가 소개 시켜 주겠다고 거짓말을 하고선 시작했습니다.
평소 출항을 하지 않을시.
전 위의 상사들로부터 가끔씩 심부름을 다니는 편이라
시내로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예전부터 전 빵을 좋아하는 편이라.
시내로 나갈때마다 모햄버거 가게에서 나갈때마다 햄버거를 사먹었는데 아르바이트 하는 여자를 한두번
보게 되다 보니 가벼운 인사정도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여자분을 빌미로 전 떡대에게 소개시켜준다고
공갈을 치곤 무작정 아무생각없이 편지를 적어라고
한후, 몇주간의 시간을 흘러보냈습니다.
사실 전 그냥 말만 했을뿐 생각하지도 않았었거든요
그리곤 몇주후 심부름차 위병소를 통화하는데
이친구가 어떻게 알았는지 부랴부랴 뛰어나오지 않겠어요.
그리곤.하얀 봉투를 건네주고서는
내게 "편지 좀 전해줘"란 말과 함께 헤벨레 웃고있는게 아니겠어요
사실 그때서야 전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을 했는데,
이친구에게 거짓말이었다고 얘길 못하겠더라구요
왜냐면 이친구가 마음이 많이 여리거든요.
받을 상처나, 담배 한갑때문에 특히 못하겠더라구요
무작정 편질 받고서는 시내를 나갔는데
평소때처럼 일을 다 보고선 그빵집을 갔는데
빵을 사면서 입안에서 맴돌뿐 차마 말을 못하고
그냥 빵을 먹고선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편지를 전해줬다는 말을 하고선 전 다시 배로
돌와와선 무작정 그친구의 편지를 뜯어보왔습니다.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그친구의 편지는
자기는 고향이 어디고, 지금은 부대에서 무엇을 한다는 그런내용이었는데 차마 찢어버릴려니.
성의가 있곤해서, 아무도 모르는곳에 보관을 하였습니다.
그리곤 삼일정도인가 지나면서 부터
떡대는 날 보면 편지가 왜 안오냐..
그리곤 그여자는 내가 맘에 안드나 보다..
그런식으로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럴게 일주일 정도 계속 들으니 미치겠더라구요.
할수없이 답장을 내가 쓰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선
여자글씨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안녕하세요"란 말로 시작하여
전 무슨학교에 다니며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정말 이렇게 편지로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식으로
답장을 적은후 그친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사실 이정도에서 전 끝냈어야 하는데 흑흑흑
답장을 받은 떡대는 그다음날 답장을 적어 내게
주고 생각치도 않게 전 삼사일에 한번 정도는
편지를 적게 되었습니다.
사실 내게 여자집 주소 좀 가르쳐 달라고 하던말에
"그집 아버지가 억수로 엄하던데"라며 말한후.
전 거듭되는 답장에 답장..을 거듭하며
한달이란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달정도 지나니
내가 편지를 적는다는 말은 입소문으로
부대 전체에 소문이 나있었지만,
희안하게도 보안이 잘되서 그런지
아무도 그친구에게 이사실을 가르쳐 주지않더군요.
그렇게 두달정도 지나갔습니다.
부대에서 여자친구에게 차여서 그충격으로
헤어나지 못한 한사람이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부대가 거의 뒤집히고 높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겁나더라고요... 그리곤 일주일후
이젠 제가 떡대를 상대로 할말이 바닥낳고
도저히 이렇게 계속 지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유학간다는 말과 이쯤에서 끝내자고 답장을 한후
떡대에게 편지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날밤부터 그친구는 말이 없어 지기 시작하더니..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도 그친구의 증상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처럼 돌아오더라구요.
혹시 전 자살이라도 하면 어떠나 걱정에 걱정을 했었거든요...
그렇게 예전처럼 잘지내던 차에...
제가 부산으로 발령이 나서..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며칠뒤 작전상 배가 목포로 가게되는 날이
왔습니다.
떡대에게 다시 갔습니다.
"떡대야, 이번에 가면 다시 못올것 같애"
"왜"
"부산으로 발령을 받았거든"
"그래, 부산에 가더라두 연락하고 지금처럼 지내자"
"그래 떡대야"
이부분에서 말을 했어야 하는데
전 또 말을 못하고 배로 돌아왔습니다.
마중차 부두로 나온 떡대는 간판 함수에 있는 나를
보곤 쓸쓸하게 손을 흔들어 주더군요...
마이크에서 곧
"출항!" 이란 소리와 함께
부두에 걸려 있는 홋줄을 떡대가 풀어주는 동시에
전 한뭉쿰의 편지를 부두로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떡대야! 사실 그 편지 다 내가 적은거야 미안해"
그렇게 배는 출항을 했습니다.
편지묶음을 주워들은 떡대는 상황판단이 안되는지
이게 무슨일인가 하는 황당하고, 떨뜨름한 표정을 지으며 제게 뭐라뭐라 하였지만,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전 떠났습니다.
제대후 포항에 있는 그가 부산에 왔었는데
저랑 소줏잔을 기울며 예전의 그일을 하더군요..
정말 미안하데요...하하
웃으며 추억을 얘기했던 그때가 벌써 3년정도 되었군요 결혼후 연락도 못하고 지냈었는데
어떻게 사는지.....
떡대야 보고싶다...
그리고 편지는 미안해...그것말고 트리오도 미안해..
하하
정말 내가 생각해도 힘들군요...글적기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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