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팔로 만난 내 신랑
이윤희
2000.10.11
조회 59
안녕하세요?

눈이 부시게 푸르른 가을입니다.
그리운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게 하는군요.
저는 결혼한지 3년이 된 주부입니다.
그와 만나지 벌써 7년이 되어가는 군요.
우리는 소설처럼 만났어요.
그와는 시월의 마지막날 만났답니다.

"그러니까 1993년 10월12일 화요일"
그날은 직장에서 직원들과 소백산등산을 다녀와서 피곤한 몸으로 저녁에 막 잠이 들었어요.
그때 전화벨이 울렸어요.
고등학교때 펜팔한 남자 친구가 몇 년동안 소식이 없다가 그가 제가 사는 곳으로 직장을 옮긴 것이 계기가 되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연락을 했다는 군요.

그를 알게 된 것은 "FM 모닝쑈"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애청자인 제가 그 프로그램에 엽서를 자주 보냈는데 그가 저의 주소를 적어 두었다가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보낸 것이 시초가 되었어요.
고등학교때 서로 글로써 우정을 나누었죠.
졸업을 앞두고, 그와 만날 약속을 하고 약 30분정도 늦게 약속장소에 나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그 후로는
둘다 서로를 잊은 채로 몇 년을 보냈지요.

그와 만날 약속을 하고 이번에는 더욱 예쁘게 보이려고 또 30분쯤 늦게 나갔어요.
그런데 이게 원일입니까?
약속장소는 "내부수리중"이라는 팻말일 건물 앞에 서 있고, 그 앞에는 키 큰 남자 하나가 추위에 떨며 주위를 살피고 있는게 아니겠어요?

그는 30분 일찍나와서 기다렸으니 1시간은 기다린 거죠.
그날따라 바람이 불고 몹시 추웠어요.
그는 이번에 만나지않으면 다시는 못만날것 같아서 기다렸대요, 글쎄.

그의 첫인상은 키크고 목소리 좋은 남자였어요.

처음엔 그렇게 옛 친구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지요.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친구가 연인으로 바뀌어갔지요.
"오빠가 아빠 된다"는 얘기 있죠!!

결국 우리는 결혼이라는 것을 하기로 했어요.
남들이 하는 것은 모두가 쉽게 보이더니 막상 결혼을
하려니 여러가지로 복잡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무엇보다도 우리 부모님의 반대가 정말 극복하기 힘든 과제였어요.
그가 장남이라는 것과 그가 직업상 이사를 자주 해야한다는 것이었죠.
그는 안동권씨의 장손이고 저는 육남매의 철부지 막내로 자라서 엄마 말씀으로는
"글씨 쓰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철부지"였어요.
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모르는 것이 약, 남들이 다 하는 데 나도 하면
되지워"
하는 자신감만 있었어요.
그와 함께라면 어떤 역경도 극복할 "용기"가 넘쳤거든요.
그때 눈에 원가 큰 것이 끼었나봐요.

부모님의 반대로 한 동안 만나지 않겠다고 하고 작전상 후퇴.
부모님을 한심시킨 다음 몰래 만나서 사랑을 확인하곤 했지요.

그러다가 몇개월뒤
다시 도전하여 매일 그가 부모님을 찾아가 나중에는 부모님이 포기하셔서 승락을 하였지요.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결혼날짜를 잡자
그가 대구로 발령이 난 것이에요.
저는 직장을 계속 다녔기에 신혼시절부터
"주말부부"가 되었어요.
우리는 주말마다 견우와 직녀처럼 만났어요.
저는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그를 만나러 갔지요.
기차가 종착역에 도착하면 두근두근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를 향앴지요.
그는 항상 마중 나와서 대합실에서 기다리고는 손을 꼭 잡아주었지요.
시간은 왜 그리 빨리 가는지...
주말은 그렇게 빨리 가버리구요.
어느 새 헤어져 할 시간..
아쉬운 이별을 하고 또 만남을 기약했지요.

그러다가 아기가 생겨 제가 장거리 여행을 하기가 곤한해서 그가 주말에 제가 있는 곳으로 다녀갔지요,
저는 입덧이 심해서 제가 하는 밥은 잘 먹지 못해서 외식을 주로 했어요.
주말에 그가 올때면 맛있는 과일이랑 제가 좋아하는 것으로 1주일 분량를 가득 사왔지요.

그때는 다행히 같은 직장에 저랑 출산예정일이 비슷한 언니가 있었는데 저랑 처지가 같은 부말부부였어요.
주중에는 언니랑 몸보신 하느라 같이 맛있고 영양가 놋은 먹을거리를 찾아서 다녔어요.
배가 점점 부를 수록 외식은 점점 늘구요.
배불뚝이 아줌마 둘이 나란히 시내를 걸어 갈때면
쏟아지는 시선들이 처음엔 숙스럽고 싫었는데, 나중에는 한가운데로 배를 덕욱 쑥 내밀며 다녔지요.

그러다가 드디어 열달이 되어 분만하게 되었어요.
1998년11월1일 오후 3시 29분!!
천장이 노래지면서 "선생님 수술해주세요!!"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힘을썼죠.
그때 의사선생님 하시는 말씀..
"개똥이 엄다도 낳고 말똥이 엄마도 낳는데 엄마도 낳을 수 있어요. 조금만 더 힘내!!!"

드디어 나의 분신이 머리를 내밀었어요.
그런데 그 아기는 저보다도 신랑보다도 시아버님을 닮은 것이었어요.
첫 대면에서 저를 쳐다보던 그 눈동자를 지금도 잊 을 수가 없어요.
아마 평생못잊을 거에요.

그리고 그때 그언니는 예쁜 공주를 낳았구요.

아기와 신랑 저 우리 가족은 출산휴가 2개월간 같이 지냈어요.
우리 가족이 함께 보낸 가장 긴 사간이었죠.

그 후 출산휴가를 마치고 저는 직장에 다니느라 아가는 안도시댁에, 저는 영주에 신랑은 또 울산으로 발령
이산가족이 되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아가를 만나려 갔지요.
시댁은 안동에서도 시골이라서 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깜감해서야 도착했어요.
추운 겨울 밤1!
하늘엔 달빛이 비추고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이고,
넓은 벌판은 황량할 때
저 멀리서 시아버님이 자전거를 타고 손전등을 비추고 며느리를 마중나오시죠.
(시댁은 차나 오토바이가 없거든요)
포장된 길은 자전거 뒤에타고, 비포장 길은 걸어서 가고 손발이 꽁꽁 어는 추위지만,
며느리를 마중나오시는 시아버님의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지요.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마음은 벌써 저 멀리 가 있지요.
시댁에 도착하면 어린 아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방글방굴 웃고 있구요,
아가를 볼 때면 어린 아들이 사랑스러운 만틈 가슴이 얼마나 미어지는지...
일요일 오후.
집으로 돌아 올때면 언제난 눈물이 나서 아가 얼굴이 뿌옇게 보이고 시부모님께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웁니다.

아들 상우가 한 창 낯설이 하는 시기에.
직장일로 인해 2주일에 한 번 갈때면
엄마도 몰라보고 낯설이를 하느라 저를 보면서
엉엉 울면서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저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요.
그런아들을 보며 "이렇게 살아여 하나" 하며 울기도 많이 했지요.

지금은 23개월
11월 1일이 벌써 24개월 입니다.

차를 좋아해서 붕붕카에 아무 열쇠를 꽂고는 운전을 흉내내며 다닙니다.
아빠 차만 보면 좋아서 "아빠아빠"합니다
아빠차를 타면 핸들 조작. 기어변속. 시동걸기 등
온갖 것은 조작하면서 운전에 여념이 없답니다.

요즘도 이산가족입니다.
상우가 꽤가 나서 이제는 이별을 알아요.
우리가 가려고 나서면 제가 먼저앞장서 나갑니다.
그리고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어요.
그러면 저도 울고,
아기도 울고...

"상우야 조금만 더 기다려줘. 응.
언젠가는 우리 세작족이 행복하게 같이 지낼거야.
엄마. 아빠가 항상 같이 있어주지는 못하지만 상우를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한단다.
마음은 늘 함께 있구말야.
상아야 사랑해
늘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다오"

알까? 일까?-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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