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경이가 미경이를 만났을 때
이미경
2000.10.07
조회 60
제 이름은 미경입니다. 직장에 들어가서 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친구 이름도 미경입니다. 우린 서로의 이름도 같을 뿐 아니라 엄마 성함도 같고, 종교도 같고 무엇보다도 성향도 같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둘은 죽이 아주 잘 맞습니다.

일하다 눈 한번 마주치면 밖으로 나와 천하장사 소시지를 한웅큼 사서 벤치에 앉아 까 먹습니다. 때론 소시지 대신 복숭아 통조림을 먹지요.
둘 중 누군가 화나는 일이 있으면 단골 술집으로가 레몬 소주를 마시며 위로를 합니다.
12월 31일밤 일이 끝나고 집으로 가려다 문득 제야의 종소리가 듣고 싶어져 차를 몰고 종로를 갑니다. 너무 늦은 탓에 마지막 33번째 타종 소리만을 들었지만요.
마감이 끝나고 마음이 허전해지면 한강엘 갑니다. 강가에 앉아 커피한잔 마시다 보면 그냥 다 잊고 피식 웃게 되지요.
금요일 밤이 되면 어디론가 떠납니다.
일출이 보고 싶어지면 동해로 갑니다. 바닷가에 앉아서 해 뜨길 기다리다 잠 들어버리기도 하면서 말이죠.
이번엔 서해로 갑니다. 만리포에서 안으로 들어가니 백리포, 백리포에서 더 안으로 들어가니 십리포가 나오더군요. 말 그대로 작은 해안가에서 굴도 따고 조개도 줍습니다.
7박 8일의 긴 여름휴가. 방바닥에서 딩굴다 전화를 합니다. 이번엔 남해어때? 당장 짐을 꾸려 떠납니다. 부산으로, 거제도로, 여수로, 익산으로...
우리가 툭하면 가던 강화도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아침에 출근해 책상서랍안에 놓여진 그애의 편지를 발견하는 것도 큰 기쁨입니다. 우린 경쟁이라도 하듯이 서로를 놀래켜 줍니다.

이렇듯 많은 공간과 시간을 함께한 미경이가 결혼을 하더니, 며칠전 아이 엄마가 되었습니다. 미경이가 결혼을 할때는 누가 그앨 뺏아가는 것처럼 서글프더니, 지금 아가에게 온 신경을 빼앗긴 미경일 보니 사는게 다 그런거지 뭐 피식 웃음이 납니다.
그렇죠? 사는게 다 그런거 아니겠어요?
LOVE II LOVE-스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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