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 농장의 꿈
김경순
2000.10.03
조회 61
저는 지금부터 저의 시골 시아버님의 농장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버님은 원래 시골 초등학교의 선생님이셨습니다.
그 작은 읍의 초등학교에서 큰 아주버니를 비롯한
둘째 아주버니, 그리고 우리 신랑, 서방님, 시누이 둘이 다 아버님의 짖굿은 제자들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웁게 장난을
많이 친 사람이 바로 저의 신랑 입니다.
얼굴은 동그라면서도 계란형인데 눈초리가 사뭇 위로
찟어진 것이 예사롭지 않은 개구장이의 전형이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낙엽이 교정에 막 뒹구는 가을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소년이던 내 신랑은 아마 상반된 성격의
소유자 였던듯, 개구장이의 그 장난에서 벗어나 가을을 타는 소년이기도 했던가 봅니다.

기차가 타고 싶었던 신랑은 도고온천역으로 무작정
걸어와서 한나절을 그냥 역구내에 머물며 상행선 열차와 하행선 열차를 빠꼼히 내다 보고만 있었는데...

평상시 그의 소행을 다 알고 있는 아버님은 "또 이녀석이 어디서 말썽을 부리고 있겠구나"하고 생각뿐
찾을 생각을 안하고 있었는데 학교가 다 파하도록 아이가 나타나지 않자 큰일이다 싶었답니다.

그 당시 집에는 전화가 없었고 그 덕분으로 집까지 달려가 확인을 해보아도 아이는 오지 않았다고 하지요.
온 집안식구가 그야말로 없어진 신랑을 찾기위한
거의 필사적인 작전과 몸부림이 시작된 것이지요.

동네 구석 구석 학교 어디에도 아이가 없자
온 가족은 터덜 터덜 낙담하여 신작로 쪽으로
걷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예의 그 쪼그만 녀석이 힘이
하나도 없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고, 아버님은 냅다 신랑쪽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그때 온가족은 "이제 쟤는 죽었다"고, 아마 칼칼한
아버님의 성격상 그렇게 생각하고 달리는 아버지를
말리려 그 뒤에 온 가족은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우리의 아버님...냅다 달려 와서 신랑을 꼭 가슴에 안아 주었다고 합니다.
달려오던 가족들은 그 모습에 오히려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랑은 처음으로 아버님의 넉넉한 등에 기대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곤히 잠들었다고 합니다.

이젠 그런 아버님도 많이 늙으셨습니다.
평생을 교직에만 계셔서 그런지 농사일은 많이 서투르십니다.
지금은 고향 도고온천에서 조그만 농장을 하고 계십니다.

담장은 뭐로 둘러 쌓여 있는지 아세요?
농장을 둘러싼 울타리가 다 탱자나무로 심어져 있습니다.
가을에 보셨나요?
그 노란 탱자 나무를.
가시에 찔릴세라 조심 조심 탱자를 따서 냄새를 맡아보면 와,,,뭐라고 표현 해야 하나요..
새콤 달콤하다고 해야 하나요?

자,,농장 안으로 들어와 보세요.
여기는 정말 큰 호박이 틈실히 무거운 몸을 틀고
앉아 있네요.
둑에는 가을 소국이 ... 흠흠 향기롭다.

그리고 단감이 주렁 주렁 열린 저쪽 좀 보세요.
그저 쓱쓱 옷에 문질러 한입 먹으면 정말 달아요.

그리고 이내 머리위로 타닥탁 떨어지는 밤알들..
내 아이는 호주머니에 볼록하게 떨어진 밤알을 주워 담네요.

그리고 이리로 빨리좀 와 보세요.
저 소나무 좀 보세요.
꼿꼿하게 몸을 세워 늠름하기 그지 없지 않나요.
게다가 적송이군요.

어,,그냥 가시면 안되요.
여기 연못이 있잖아요.
여기 연못에는 아들과 손주들이 잡아다가 풀어준 물고기들이 참 여유롭게 헤염치며 놀고 있어요.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물고기 들을 바라보면 하늘이
어느새 그속에 들어와 있지요.
그리고 연못 주위를 왔다 갔다 하는 거위가 있네요.
살이 통통 오른 닭들과 칠면조도 보이지요.

아, 참 또 토끼풀을 뜯어야겠어요.
토끼가 빨간눈을 비비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네요.

후후...이게 다 우리아버님이 만드시고 키우시는
농장속의 생명들입니다.

꽃나무를 사랑하시고, 사소한 작은 나무에게도
담뿍 애정을 주시며 사시는 우리 아버님..

늘 아버님을 뵈면 신랑을 업어주었던 그때 그 등의
따듯한 기운이 제게도 느껴집니다.
축배-카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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