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 미용실
이선희
2021.11.10
조회 143
‘그 미장원’


아파트 단지에 연산홍, 철쭉이 만개하던 봄날의 어느 날..
무거운 겨울 옷장을 비워내듯, 두꺼운 이불을 털어내고 봄 이불을 준비하듯..
내 몸에도 산뜻한 변화를 주고 싶어졌다.
일산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딱히 정해놓고 다니는 미용실이 없었다.
당시 신혼이라 신랑이 일찍 퇴근하거나 쉬는 날이면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미용실이 있었으니...
남자분이 머리를 해주시는데 작은 동네 미용실임에도 항상 손님이 있었기에 ‘음.. 꽤나 잘하나보군~’ 생각했고 머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그 미용실을 떠올렸다.
미용실 앞에 도착하니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다.
결혼은 했지만 아가씨 티를 막 벗은 나는 인테리어, 분위기도 미용실을 선택함에 한 몫 했기에 어두침침한 동네 미용실이 그리 맘에 들지 않았지만 늘 사람들이 있었고 궁금했던 터라 입구 앞에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엄청난 내적 갈등을 하고 있었다.

전혀 멋져 보이지 않지만 나름 미용실 외관에 신경쓴 듯 했다.
커피색의 진한 페인트를 바른 나무로 외관을 꾸몄고 그 위에 금색으로 미용실 이름이 적혀 있었다. (흘려 쓴 글씨체였는데 검색해 보니 ‘한컴 쿨재즈체’이다.)

‘카리스마 미용실’ (와우! 미용실 이름이 카리스마라니~~)
카리스마 있는 미용실 남자 원장님과 눈이 마주쳤고 반신반의하며 들어갔다.

‘봄이니까... 산뜻하게 알아서 잘라주세요~’

알아서......
이 단어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카리스마 원장님은 눈에 힘을 잔뜩 실어 이리저리 살펴보며 몇 가지 질문을 하시더니 허리춤에 찬 가위와 빗을 꺼내어 정성스레 컷트를 시작했다.
당시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머리였는데...
흰색 가운 위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기 시작했고 ‘아~ 여기서 멈춰야 하나? 그만 잘라달라고 할까? 아냐~ 알아서 잘 해 주시겠지~’하며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당시 샤기컷 이런 스타일이 유행했는데, 미용실 안 거울과 벽에는 ‘샤기컷 전문’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설마.. 나도?? 에이~~ 설마~~ 그럴 리가~~~
보통 컷트는 금방하는데 그 원장님은 한시간 가량 머리카락 한올 한올에 정성을 다해주셨다. 1mm정도 자르는데 가위질을 엄청나게 해대셨다.
눈을 감고 앞머리까지 마무리하고 눈을 들어 거울을 보니..

맙. 소. 사!!!!!
이. 럴. 수. 가!!!

봄이니까 산뜻하게 해주세요 했는데..
이건 산뜻하다 못해 군대에 입대할 판이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다리가 후덜후덜 떨렸다.
아냐... 이건 현실이 아냐~~~

‘카리스마 미용실’이 괜히 카리스마가 아니었다.
거울 속 내 머리카락에는 카리스마가 충만해 있었다.
젤까지 발라야 마무리라며 손가락으로 듬뿍 젤을 떠내려고 할 때..
아뇨~ 원장님 전 괜찮아요~ 안 발라주셔도 됩니다~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떨리는 다리를 질질 끌고 겨우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야~ 니~!!! 니!!! 니!!!! 니~ 머리 왜 글노~!!!!’
‘니 머리 그거 뭐고..~ 아이고야~ 니 왜 글노~~!!!’

나보다 더 놀란 신랑은 한동안 말없이 한숨을 쉬며 내 머리를 쳐다보았고..
딱 한 마디 했다.

‘니~ 이제부터 내한테~ 형이라 불러라~ 알았나~~
'네....... 형.......'


잊지 못할 미용실..
없던 카리스마도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그 곳...
카리스마 미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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