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잘을 추억하면서
이경순
2021.09.16
조회 141
애지의 만남은 삼십년 만에 친구 엄마 회갑잔치에서 소설같이 만났다.
처음엔 매우 낯익은데 어디선가 분명 보았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애지 역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에게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나와 애지를 불러 막 소개를 시켜주려 할 때 동시에
“혹, 고향이..어디야?” 그랬다.
분명히 애지였다.
우리 집에서 비포장도로 징검다리를 건너 싸리꽃 향내로 가득 찬 곳에 애지의 집이 그림같이 항상 놓여 있었다.
애지를 안 것은 국민학교 5학년 따뜻한 어느 봄날 특별활동시간에 작문반에서였다.
작문반 선생님께서
“얘는 4학년이며 아빠가 면사무소 옆에 한약방을 차리게 되어 시내에서 전학 왔다“ 라고 말씀하시고는 그 아이를 내 옆자리에 앉히셨다.
전학 온 애들이 으례껏 신고식을 하는 것처럼 그 아이도 통과의례처럼 노래를 불렀다.
다른 아이들이 몸을 뒤틀거나 손톱을 물어뜯음으로 해서 시간을 축내다가 마지못해 주눅이 든 목소리로 아끼듯 부르다가 흐지부지하는 반면에 그 아이는 냉큼 일어나 가슴 가까이 두 손을 모아 쥐고는 발성이 잘 된 성악가처럼 잘도 불렀다.

그 애는 부끄러워 여자애와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하는 다른 남자애들과는 달랐다.
기존의 애들이 먼저 애지의 눈에 들고싶어 했으며 그 아이와 짝꿍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몹시 부러워하는 애들도 생겨났다.
심술이 보통이 아닌 인철이가 그 애에게 말을 붙여보고 싶었던지 아니면 나와 짝꿍이 된 게 배가 아팠던지 불쑥
"아까 선생님이 너 이름을 뭐라고 불렀더라? 송아지 할 때 아지..라 했던가? "
그러자 그 아이는 영순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난 사랑愛에 알智를 쓰는데 오빠는?."
영순인 밑천이 들통날까봐서인지 그 아이의 한문풀이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아이는 우리들과 다른 점이 많았다.
나는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마치 호롱불을 쓰다가 새마을 운동으로 알전구 전등을 켰을 때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잘해야 몇 가지 문구밖에 쓸 줄 모르던 나에게 있어서
"지구를 밀어 올리며" 올라온다는 그 아이의 강낭콩이란 시는 참으로 놀라웠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느날 애지가 특별활동 시간이 끝나고 자기집에 나를 초대했다.
"이건 형 공부방, 여기가 내 공부방.. "
나는 처음 듣는 공부방이라는 낯선 어휘에 어리둥절해하다가 책장 가득 꽂혀있는 책 앞에서 우리와는 달라보였던 모든 것의 해답이 그 책 속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이거 다 너의 책이냐?"
" 그으럼." " 나 봐도 돼?" 하니까
" 얼마든지.." 하는게 아니겠어요..
그날부터 나는 그 애의 숙제를 도와주며 책을 같이 보았으며 나중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애지의 하아모니커 부는 모습에 반해 자주 찾게 되었다.
그 때문에 그 아이의 가족들이 나로 인하여 심기가 불편해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어느 날 노을이 질 무렵이었다.
빼꼼히 열려진 철대문안으로 들어 가다가 나는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 예부터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했거늘 느이들은 창피한줄 모르고 그렇게 붙어 있느냐, 앞으로 엄마 말 안 들으면 혼날 줄 알아, 알았어?"
그러자 애지가 울먹이며 대꾸했다.
"엄마,같이 공부하고 책 보는데 뭐가 나빠?."
그 아이의 엄마가 무슨 말인가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빌려갔던 ‘폴타크 영웅전’을 가만히 현관 앞에 내려놓고 애지의 집을 빠져 나왔다.
늦은 가을이라 온 몸으로 찬 바람이 스며들었다.
긴 제방을 걷는 동안, 이제 어두워서 잘 분간이 안되는 징검다리를 더듬어서 다 건너는 동안 눈물이 하염없이 줄줄 흘렀다.
얼마 되지 않아 아빠가
“얘야, 널 찾아 왔는가 아까부터 담장을 기웃거리는 남자애가 있다."
그 소릴 듣자마자 달려 나가보니 애지는 벌써 냇가를 건너고 있었으며 사립문에 곱게 포장하여 꽂아둔 책만 있었다.
불란서 시집과 알프스 소녀란 두 권의 책과 노란 은행잎에 깨알 같은 글을 써서 책갈피에 끼워진 편지였다.

“ 우리 서울로 이사 가게 됐어, 서울에 몫이 좋은 한약방이 나왔다나 봐, 서울에 가면 너 생각 많이 날거야, 널 좋아해, - 애지가 -“
한동안 책은 보지 않고 그 은행잎만 뚫어져라 응시를 하곤 했었다.
같이 건너던 징검다리만 가면 애지의 하하하대는 웃음소리와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여 많이도 걸어 갔었다.
그런 애지를 삼십년이 지난 후에 소설처럼 만나 시처럼 얘기를 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때부터 모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고 내 삶의 변화가 시작 될 것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날 한강 둔치에 어깨를 기대고 앉아 하룻밤을 보낸 뒤 연락이 되질 않아 이 선생님에게 알아보니
"암과의 투병중이며 나한테 혹시 연락 오면 이민 갔다고 해라 했다며 알리지 않고 가게 되어 미안해하더라.." 전해주랬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가슴이 미어지는지 몰랐다.
애지를 마지막으로 보고 또 십년이 지났건만 나는 늘.. 찢어진 청바지에 하아모니커를 불던 그 머슴아가 그립고 그립다.
사랑이 어떻게 싹트고 자라는가를 일러준 어린 날의 애지를 생각할 때마다 어린애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신청곡:이용복의 어린시절,이찬원의 시절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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