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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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1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https://sunf.cbs.co.kr/news/nocut/image/2025/02/07/202502070838540447_0.jpg)
과거엔 양심 이야기 많이 했는데…
필요 없다고 생각해 사라지는 듯…용도 폐기
포유류만 가진 공감…살면서 무뎌지는 듯
DJ '동강댐' 당시…대통령의 양심에 호소
서양은 법적 양심…동양의 양심은 그 이상
'상호허겁' 필요…서로 조금씩 두려워해야
언어는 사회와 함께 진화합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떤 단어는 더 강한 의미를 갖게 되고요. 어떤 단어는 조용히 사라지기도 하는데요. 요즘 양심이라는 말 여러분 얼마나 자주 쓰고 들으세요?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양심이라는 단어가 2067번 등장한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요즘 이 단어를 이렇게 잘 쓰지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점점 양심이 사라진 세상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특히 요즘 정치권 보면 더 그렇다, 이런 분들 많은데요. 오늘 화제의 인터뷰, 양심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꺼낸 생태학자가 있습니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 만나보죠. 최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 최재천> 안녕하세요.
◇ 김현정> 제가 교수님하고 인터뷰를 여러 번 했는데 양심이라는 주제로 얘기하는 날이 올지는 몰랐습니다.
◆ 최재천> 저도 몰랐습니다.
◇ 김현정> 우리 코로나 이런 얘기하고 진화, 동물, 이런 얘기하느라고 만났었는데. 아니, 도대체 동물, 진화, 생태하고 양심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 최재천> 글쎄요. 상관없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자연계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머리 좋고 탁월한 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우리,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뭔가 크게 이렇게 차이 나는 게 있다. 그러면 아무래도 우리는 그냥 본능대로 막 움직이는 게 아니라 머리로 생각하고 상황 파악하고 이러고 살 텐데 말씀하신 대로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서 이상하게 비양심적으로 살아도 괜찮고 비양심적으로 사는 분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 잘 사는 것 같고 그거 불편하더라고요. 그거를 지켜보는 게. 그러니까 그게 기분이 안 좋아서 약 올라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런 게 허용되는 사회 분위기, 사회가 계속 이어지면 점점 우리 삶이 피폐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이 시점에 옛날에는 우리 양심 얘기 많이 했는데 왜 안 해요? 그런 얘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옛날에는 되게 많이 썼던 말이 양심에 털 났냐? 그거 되게 많이 써요.
◆ 최재천> 그것만큼은 제가 밝히지 못했습니다. 생물학자로서 양심에 왜 털이 나나.
◇ 김현정> 그거 한번 연구해 보세요. 양심의 털이 왜 나나. 그런 말을 진짜 많이 썼어요. 저희 학창시절에도.
◆ 최재천> 양심이 밥 먹여주냐.
◇ 김현정> 양심이란 단어 자체를 정말 안 쓰게 됐다. 진화로 따지자면 양심이라는 단어가 도태된 거네요.
◆ 최재천> 그렇죠.
◇ 김현정> 도태된 거네요. 그런데 그럼 진화론적으로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럼 도태된다는 얘기는 별로 필요가 없으면 도태…
◆ 최재천> 그렇죠. 그래서 언어학자들의 글을 좀 읽어보니까 두 가지가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단어가 사라지는 데는 다른 단어로 순화되거나 왜 우리는 옛날에 쓰레기 청소부 이러다가 환경미화원 이런 식으로 말을 바꾸잖아요. 그런 경우 아니면 용도 폐기, 그러니까 그냥 필요 없으니까 사라지는. 양심이 용도 폐기되는 것 같아요.
◇ 김현정> 용도 폐기 쪽이다. 하기는 양심 쪽을 대변할 단어가 별로 없죠.
◆ 최재천> 염치가 있었죠.
◇ 김현정> 염치는 더 안 쓰는 말 같아요, 요새.
◆ 최재천> 글쎄요. 좀 그런 면도 있고 제가 그래서 억지로 찾아봤어요. 그랬더니 쪽팔리다.
◇ 김현정> 이거 방송에서 써도 되는 말인가요.
◆ 최재천> 아니, 그런데 요즘 방송에서 점잖은 분들이 그냥 쪽팔리다라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 김현정> 일상에서는 하긴 그 말은 꽤 쓰네요. 그 정도로 대체된 정도지 사실 그런데 정확히 양심은 아니잖아요. 정확히 양심은 아니에요.
◆ 최재천> 그래서 제가 억지로 찾은 게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 김현정> 갑자기 여기서 궁금한데 양심은 인간만 가지고 있는 겁니까? 다른 동물들, 개나 고양이나 얘네들도 양심이라는 게 있긴 있어요?
◆ 최재천> 굳이 양심이라고 하지 않고 만약에 공감 정도로 이렇게 양심하고 공감하고 왠지 좀 비슷한 느낌의 단어잖아요. 공감이라 그러면 작년에 돌아가신 침팬지 연구하시던 프란스 드 발 교수님의 책, 공감의 시대라는 책을 제가 번역을 했는데 그 책을 번역하면서 배운 게 그분의 연구에 의하면 공감은 포유류에서 나타나는 심성이다, 이렇게 관찰을 하셨더라고요. 우리가 왜 뱀의 공감, 이런 얘기는 못 들어봤잖아요.
◇ 김현정> 못 들어봤어요.
◆ 최재천> 독수리의 공감 이런 얘기는 못 들어보셨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실험실에서 우리가 실험할 때 쓰는 작은 생쥐, 흰쥐. 그 흰쥐를 가지고 재미있는 실험을 한 분이 있어요. 5마리를 한 통에다 넣고 먹이를 주고 키우다가 한 마리씩 한 통씩에 넣고 그중에 한 마리에게만 먹이를 주면 한동안 먹다가 옆에 자기 친구들이 배고파서 신음 소리를 내는 걸 들으면 안 먹어요. 얘도. 그러니까 그런 공감 능력이.
◇ 김현정> 그래도 양심이 있네.
◆ 최재천> 이만한. 그러니까 아마도 프란스 드 발 교수의 주장으로는 아마도 포유류가 진화하면서 생겨난 심성이 아니겠느냐.
◇ 김현정> 그러네요.
◆ 최재천> 그 얘기는 우리는 모두 타고났다는 거죠. 그런데 살면서 자꾸 무뎌지는 거죠.
◇ 김현정> 그렇게 되는 거군요. 그렇게 되는 거군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더라고요. 나는 솔직히 비겁한 사람이다. 신혼 시절에 아내한테 비겁하다는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 왜 그런가 보니까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가지고 사과하기를 내가 꺼리게 된 것 같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되게 용감하게 양심적인 일을 하게 됐다 하면서.
◆ 최재천> 저도 깜짝 놀라요. 내가 왜 했지?
◇ 김현정> 어떤 사례들이 기억나시는 거예요?
◆ 최재천> 그러니까 저 호주제 폐지하는 데 끼어들어가서 그래서 큰일을 한 것처럼 올해의 여성운동상도 받아보고 4대강 반대하다가 MB 대통령님한테 많이 혼나고. 하여간 저 제돌이 돌고래 풀어주는 일 하면서 제가 온갖 비난도 받고 그런 게 생각하면 저 같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거든요. 저는 피하고 싶고 보통 숨어요. 안 하려고. 돌이켜 보니까 제가 몇 번 용감한 짓을 했더라고요.
◇ 김현정> 그 용감한 짓. 그러니까 양심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야 되는 순간들이 특히 사회에서는 있기 마련인데 그렇게 했을 때 그게 다른 양심과 통해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고 좌절되는 경우도 있단 말이죠. 일단 받아들여진 경우들도 있었어요?
◆ 최재천> 예를 들어서 제돌이 풀어준 그 일은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리 역사에서 우리가 잡은 야생동물을 우리 돈을 들여서 그분의 고향으로 정중히 다시 모셔드린 최초의 케이스였거든요.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 동물에 대한 이런 관심, 관점, 이런 게 저는 획기적으로 이렇게 달라지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잘해서 이런 것보다도 그 사건 자체가 그런 의미를 갖게 된 거죠.
◇ 김현정> 환경 운동도 많이 하셨잖아요. 지금까지 제돌이 얘기도 그렇습니다만 그런 걸 하면서도 부딪힐 일이 많은데 결국 그럴 때는 어떤 지도자, 리더의 결단, 리더의 양심,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굉장히 안 좋은 이야기만 우리가 많이 했는데 우리 사회의 양심에 대해, 좋은 사례들은 없었습니까?
◆ 최재천> 김대중 대통령님이 동강댐 만드는 걸 허용하셨어요. 그런데 그 하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저한테는. 건교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을 두 분을 데려다 놓고 양자 대담을 시켜놓고 지켜보시고 건교부 손을 들어주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 신문에 글을 썼어요. 참 저 바람직한 일을 하셨다. 그런데 선수 기용이 좀 잘못되셨다. 건교부 장관님은 대개의 경우 건교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장관이 되시는데 환경부 장관은 거의 늘 낙하산이다. 그래서 사실은 환경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인데 저를 부르셨어야지 왜 환경부 장관을 내세워서 그랬냐. 그리고 제가 그 뒷부분에는 동강에 가보셨느냐. 아마 안 가보셨을 것 같은데 한번 가서 그 아름다운 강을 보시고 다시 마음을 정해 주시면 안 되냐. 그리고 제가 가실 때 손주들하고 같이 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썼어요. 손주들은 보나마나 내려다보면서 얼마나 아름다워요. 한반도처럼 생긴 그 굽이치는 그 강물을 보면서. 너무 예뻐요. 할아버지, 여기 너무 좋아요. 이럴 텐데. 야, 그런데 미안하다. 할아버지가 여기 댐을 만들어 가지고 니네는 앞으로 이 강 못 볼 거야.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으신지, 그런 식으로 제가 편지 형태의 시론을 썼는데 며칠 후에 그게 그냥 삽질하기 직전이었거든요. 그런데 백지화 시켜 주셨어요. 그러니까 그때 참 이게 그것도 어떻게 보면 큰 의미의 양심, 그러니까 대통령님의 양심에 제가 호소를 한 거죠.
◇ 김현정> 그러니까 우리 사회지도층, 특히 권력자들 양심이 살아 있으면 그 사회가 건강하게 가는 거고 그것이 무너지면 상당히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큰, 리더들의 사회 지도층의 양심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는 참 양심 없다. TV 보면서, 뉴스 보면서 이런 말이 많이 나와요. 요즘 세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 최재천> 양심이 한자로 쓰면 어질 양 자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동양에서 생각하는 양심은 어진 마음이에요. 그런데 서양 사람들의 양심은 영어로 conscience라고 그러는데 그 conscience가 그리스어에서 온 건데 컨시오라는 단어에서 온 거거든요. 그러니까 conscience는 con컨하고 science가 붙은 단어잖아요. science만 떼보면 그게 사이언스(science)예요. 정확하게 스펠링이 똑같은.
◇ 김현정> 그래요?
◆ 최재천> 그러니까 과학, 지식, 탐구, 이런 거죠. 그런데 con은 함께라는 뜻이니까 함께 하는 지식, 함께 공유하는 어떤 기준 이런 거예요. 서양의 양심의 그거는 약간은 법적인 양심. 그러니까 서양 사람들은 법을 잘 지키는 걸로 우리가 대충 이해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법만 지키면 난 양심적으로 산 거야. 거기까지죠. 그런데 우리 동양의 양심은 제가 판단하기에는 그 이상이에요. 법을 지키고도 내 마음이 불편하면 참 이게 좀 그렇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인이나 사회적으로 이렇게 힘 있는 분들의 양심은 너무 그 법 언저리에서만 그냥 노는 것 같아요.
◇ 김현정> 법 언저리에서만 노는 것 같다.
◆ 최재천> 그러니까 법적으로 안 걸릴 정도에서 했으면 본인이 했다고 생각하면 내가 뭐 잘못했는데 거의 그런 수준인 것 같아서. 그런데 정확하게 법을 지켜주셨으면 사실 그 정도만 했으면 다행인데 사실은 안 지키시면서도 마치 그 정도는 내가 하는 것처럼 얘기하시는 걸 참 많이 들으면서 이게 양심이라는 단어가 우리 일상에서 사라지면서 저분들의 심성이 황폐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죠.
◇ 김현정> 지금 법꾸라지들한테 일침 가하신 거군요. 정치권의 법꾸라지들, 맞죠?
◆ 최재천> 다 그래요. 꼭 그런 분들만 그런 게 아니라 너무 많은 분들이 지금.
◇ 김현정> 계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사실 12월 3일 이후에 우리 사회는 큰 혼란, 사상 초유의 일을 겪으면서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거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좀 받으신 거예요?
◆ 최재천> 안 그렇다고 얘기할 수는 없네요. 그런데 그 덕에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게 느끼시는지 모르지만 최근에는 정치인들 입에서 양심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자주 튀어나오는 걸 제가 듣습니다. 그분들이 정말 솔직히 제가 판단할 때 그분, 당신이 양심적으로 지금 하고 계신지 여쭙고 싶은 분들도 많은데 그런 분들의 입에서도 지금 양심 얘기가 툭툭 튀어나오는 거는 저는 제 관점에서는 바람직해요. 이게 단어가 돌아오고 있구나 하는 거를 약간 느낍니다. 그동안은 전혀 그 단어가 들리지 않았는데 이런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인해서 어쩌면 급작스럽게 양심이라는 단어가 되돌아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김현정> 오히려.
◆ 최재천> 이게 되먹임 작용을 할 거 아니에요? 양심이라고 얘기하면서 한강 선생님이 소년이 온다에서 양심을 내 마음, 내 안에 깨끗한 무엇, 이렇게 표현했거든요. 저는 꺼지지 않는 촛불 이렇게 표현을 해 봤는데 불편하잖아요. 이 안에 깨끗한 게 있어요. 아니면 이 안에 불꽃이 하나 있어요. 그게 자꾸 나를 불편하게 만들면 언젠가는 양심적으로 행동을 하게 되겠죠.
◇ 김현정> 이야기 조금만 더 듣고 싶은데 교수님 5분 정도 괜찮으세요?
◆ 최재천> 네.
◇ 김현정> 그러면 여러분 본방송 라디오 청취자들과 인사드리고 유튜브로 5분만 더 양심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어서)
라디오 청취자들과 인사 나누고요. 유튜브로만 조금 더 이어가겠습니다. 양심이란 말이 되게 쉬운 것 같으면서도 되게 어려운 말이거든요.
◆ 최재천> 참 어려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게 내 안에 있는 거잖아요.
◇ 김현정> 맞아요.
◆ 최재천> 그렇게 그러다 보니까 내 기준에 맞춰서 내 양심이 표현이 되는 건데 그게 다른 사람의 기준하고 다를 거 아니에요. 게다가 속일 수도 있잖아요. 나는 지극히 속마음으로는 여러 가지를 했으면서도 겉으로만 내가 잘 포장을 하면 영원히 내 주변에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죠.
◇ 김현정> 맞아요.
◆ 최재천> 그런데 한 사람 못 속이는 사람이 있거든요. 자기를 못 속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끊임없이 불편해하다가 어느 순간에 내가 그럴 수는 없지. 그러고 나서는 게 저는 양심의 발로라고 생각해요.
◇ 김현정> 쓰신 책에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쇼펜 하우어는 명예는 밖으로 나타난 양심이며 양심은 안에 깃든 명예다, 바로 그런 부분 아니에요?
◆ 최재천> 그렇죠.
◇ 김현정> 나 스스로. 누가 이거를 이렇게 막 지적을 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거리끼는 그 양심, 염치. 나 스스로 나를 관리하는 게 그게 얼마나 힘들어요. 나만 눈 감으면 되는데 내 짓을.
◆ 최재천> 그렇죠. 어떤 분들은 그걸 참 잘하는 분들이 계신 거예요. 죽을 때까지 그거 별로 불편하지 않게 느끼셔서 그냥 그러고 돌아가시는 분도 우리 주변에 많겠죠.
◇ 김현정> 많죠.
◆ 최재천> 그런데 우리들 중에 대부분은 그게 불편하잖아요.
◇ 김현정> 불편하죠.
◆ 최재천> 그러니까 하여간 어떤 형태로든 올바른 일을 하게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해요.
◇ 김현정> 아까 그 신혼 시절 얘기, 아까 시간이 없어 갖고 제가 다 못 읽었는데 잠깐만 다시 읽어보면 되게 솔직하시단 느낌이 들었거든요. 나는 솔직히 비겁한 사람이다. 신혼 시절 아내에게 비겁하다는 꾸지람을 참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일단 여기서 신혼시절에 당신 정말 너무 비겁해,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많이 비겁하셨나 봐요(웃음).
◆ 최재천> 많이 비겁했습니다(웃음).
◇ 김현정> 최 교수님이 그러실 리가 없는데 많이 비겁하셨나 봐. 그래서 그 뒤를 읽어보니까 주변을 둘러보면 어려서 엄한 아버지 아래서 큰 아들들이 대체로 비겁한 편이다. 무엇보다 사과하기를 꺼린다. 엄한 아버지한테 잘못을 자백하면, 사과하면 너그러이 감싸주기보다는 비슷한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그 자백이 빌미가 돼서 벌의 강도가 점점 세진다는 걸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깔끔하게 사과하면 쉽게 끝날 일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여기서 아니, 엄한 아버지 밑에서 크면 더 양심적이 되는 거 아닌가? 더 사과 잘하는 거 아닌가? 왜냐하면 따끔하게 혼냈으니까. 그런데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들이 비겁하고 그 용기를 내서 사과하고 양심적이 되기 어렵다는 얘기는 무슨 어떻게 그게 그렇게 흘러가요?
◆ 최재천> 엄한 부모야 많죠. 그런데 엄하면서도 이렇게 감싸주는, 이렇게 보듬어주는 그런 부모가 있는가 하면 그냥 계속 엄한 부모가 있는 거죠. 그런데 계속 엄하기만 하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회피해야 되는 거니까 그때부터는 살 궁리를 찾아야 되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큰 사람들의 특징이 그냥 그 순간만 모면하는 거짓말을 계속하는 거죠. 어떻게든 지금 상황만 모면하면 되는데 그런데 이 머리가 정말 비상하지 않으면 그 거짓말에 자기가 자꾸 말려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 김현정> 그렇죠.
◆ 최재천> 그런 게 참 불행한 거예요. 그러니까 자식을 키우면서 엄하게 키우는 건 저도 나름대로 엄한 아빠였지만 그냥 마냥 엄한 거는 저는 그거는 아주 치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아주 치명적이에요?
◆ 최재천> 그러면 비겁한 아이를 키우게 되죠.
◇ 김현정> 사과할 줄 모르고.
◆ 최재천> 그렇죠.
◇ 김현정>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할 줄 아는 거. 우리 정치인들도 그렇잖아요.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면 되는데 막 거짓말을 해, 뻔뻔해지고.
◆ 최재천> 그런데 그 사과를 하면 그게 빌미가 돼서 언론에서 또 재생산되고 막 이러면서 표를 갉아먹으니까 이분들이 안 하시는 거죠. 그거는 너무 우리 시민이 너무 엄한 아버지 역할만 지금 하고 있는 거라서 사실은 저 나랏일을 맡고 있는 분들도 다 사람인데 그분들 다 실수하고 그렇게 사는 건데 우리가 좀 용서해 주면 좋겠지 하는데 사실 우리는 용서할 마음은 사실 없잖아요. 그러니까 일반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그분들은 우리가 믿고 맡겨드렸는데 용서하기 싫잖아요.
◇ 김현정> 그렇죠. 그렇죠.
◆ 최재천> 그러니까 그분들은 또 그분들대로 이 엄한 유권자들한테 당할까 봐 계속 아니라고 부인하고 그러시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이렇게 그걸 보고 있으면 유권자들이 너무 엄한 아버지구나, 그런 생각이 들죠.
◇ 김현정>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고 동시에 또 그 정치인도 되게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나, 이 생각도 드네요. 말씀 듣다 보니까.
◆ 최재천> 가끔은 저는 빙그레 웃습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거짓말에 거짓말을.
◇ 김현정> 막 보이는 거짓말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 최재천> 뻔히 보이는데도.
◇ 김현정> 뻔히 보이는 거짓말.
◆ 최재천> 굳세게 하시는 분을 이렇게 보면 저분도 아마 나처럼 굉장히 엄한 아버지 밑에서 컸나 보다.
◇ 김현정> 너무 엄한 부모들, 그게 오히려 아이를 사과 안 하는 아이, 거짓말하는 아이, 비겁한 아이로 만들 수 있다.
◆ 최재천> 저희 부친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요. 그분은 폭력적인, 이렇게 신체적인 폭력을 가하는 거는 그렇게 안 하셨어요. 가끔은 종아리를 치셨지만. 그것보다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을 제가 했다 그러면 무릎을 꿇리고 3시간, 4시간 정신교육을 하셨어요. 정말 끔찍했어요. 그러니까 그거를 당하지 않으려면 그냥 어떻게든 도망가야 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거죠. 그러니까 끊임없이 핑계를 구상하고 그런데 참 고마운 건 제 아내한테 그런 야단을, 결혼을 했는데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옆에 나타난 거잖아요. 그런데 살면서 저에게 어떻게 보면 저를 품어주기도 하고 그리고 미국에서 제가 살았던 게 굉장히 도움이 된 것 같아요.
◇ 김현정> 유학생활.
◆ 최재천> 아마 이 나라에서 계속 살았으면 그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미국에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그야말로 제 과거를 아무도 모르는 그런 데서 점점 제가 하는 일이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하니까 당당해지더라고요. 그래서 귀국해서 대학 교수가 돼서 돌아와 갖고 살면서 어느 날 문득 저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많이 씻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굉장히 뿌듯했어요. 지금도 비겁하죠. 그런데 옛날에 비하면.
◇ 김현정> 제가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뭐냐면 지금 부모님들 되게 많이 듣고 계시거든요. 자녀 키우는 부모들이 많이 듣고 계시는데 물론 다 잘 되라고 하는 얘기인데 잘 되라고 엄한 거고 잘 되라고 때리는 거고 채찍 드는 건데 호스 들고. 너무 엄하게만 하면 그것이 오히려 아이를 사과 못하는, 사과할 용기 없는 나약한 아이로 키울 수 있다.
◆ 최재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때로는 출구를 모르는 척 조금 열어주시고 그 출구 바깥에서 모르는 척 만나서 끌어안아주시고 그러셔야 될 거예요.
◇ 김현정> 그리고 그것이 바로 양심의 문제와도 또 비겁하면 양심적이기 어려우니까 용기 있어야 양심이 있는 거니까 이렇게 되는 거다라는 그런 설명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 얘기는 마지막으로 해야 될 수밖에 없는 게 그럼 우리 사회가, 지금 양심이 이렇게 사라져 가고 있고 양심이라는 것이 진화론적으로 도태돼 가고 있는 사회에서 다시 양심을 회복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되나. 개인은 어떻게 해야 되고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돼요?
◆ 최재천> 그게 어디 뭐.
◇ 김현정> 일단 고무 호스를 들면 안 되고 대걸레 드시면 안 되는 것부터.
◆ 최재천> 그게 어디 똑부러지는 언어, 그냥 비결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저는 지난 우리가 코로나를 겪으면서 상당히 우리 사회가 그걸 양심적이라고 표현해야 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사회가 굉장히 성숙해 가는 걸 우리 모두가 다 느꼈었잖아요. 그래서 우리들 중 상당수가 저를 포함해서 국뽕이 돼 가지고.
◇ 김현정> K방역.
◆ 최재천> 우리가 이런 사람들이었어? 서로 배려하고 서로 아껴주고 이런 것들이 생겼었거든요. 제가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제가 무슨 방역 전문가도 아니고 그런데 그게 일상 회복을 지원하는 위원회니까 제가 여기도 나와서 그런 얘기를 했잖아요. 제 판단에 의하면 언제쯤 끝날 거다 하는 걸 그걸 맞혔다고 저를 체스트라다무스라고 하죠.
◇ 김현정> 맞아요.
◆ 최재천> 그게 끝나는 무렵쯤에서 정말 일상으로 돌아갈 때 이 새롭게 발견한 우리 스스로의 그런 뿌듯함, 이런 걸 잘 표현하면 우리 사회가 굉장히 다른 사회, 훌륭한 선진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 일을 맡았었는데 그게 그냥 정권이 딱 그 무렵에 교체가 되면서 그냥 속수무책으로 저는 손을 털어야 했던 그게 많이 아쉬웠어요. 그런 것들이 이어지면서 사회는 하루아침에 이렇게 확 변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기들이 하는 일을 스스로 돌아보면서 우리 괜찮네, 이러면서 기분이 좋으니까 그런 일을 더 하게 되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이러면서 사회가 변하는 걸 거 아니에요.
◇ 김현정> 맞아요.
◆ 최재천> 그런데 그런 계기를 우리가 놓쳤다는 게 굉장히 좀 아쉽고요. 그다음에는 그런 거를 만들어내는 게 이게 한두 가지 해서 될 일은 분명히 아니겠지만 적어도 제가 이런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단어라도 한번 되돌려 볼까. 그러니까 양심이라는 단어를 많은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그게 화두가 되고 뭔가 양심적으로 살아야만 될 것 같은 그 마음속의 불편함 같은 걸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하면 그러면 혹시 이게 시대를 관통하는 어떤 화두, 정신, 이런 게 될 수는 없을까. 그건 제가 장담할 수는 없는 거죠. 그런데 거기서부터 한번 출발해 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 김현정> 이런 말을 하나 제가 읽어드릴게요. 쓰신 책 여기 되게 멋있게 사진 찍으셨네요. 서로 상대를 적당히 두려워하는 상태가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며 평화를 유지하게 만든다. 우리 인간은 무슨 까닭인지 자꾸만 이러한 힘의 균형을 깨고 홀로 거머쥐려는 속내를 내보인다. 그러나 내가 그동안 관찰해 온 자연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자연에서 제일 먼저 배울 게 있다면 이 약간의 비겁함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다. 모두 수시로 제 발 저리는 세상을 꿈꾼다. 양심과 명예가 살아 숨 쉬는 그런 세상. 도둑이 제 발 저리는, 제 발이 안 저려. 나쁜 짓을 하는데도. 비양심적인 일을 하는데도 제 발 저리지 않은 그런 세상이 아닌 조금씩은 제 발 저리고 뭔가 거리낀 걸 하면 불편함을 느끼는 세상이 되자. 이거 되게 좋은 말씀이에요.
◆ 최재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거를 사자성어로 하나 만들었거든요. 상호허겁이다. 서로 조금씩 두려워하자는 뜻으로 요즘 여러분들이 그걸 가져다 쓰시더라고요. 상호허겁, 제가 만든 사자성어인데.
◇ 김현정> 그렇군요. 상호허겁한 세상을 꿈꾸며 최재천 교수님, 오늘도 또 좋은 이야기. 우리가 한 번쯤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진짜 나는 어때. 남 욕할 거 없고 나부터, 난 어땠나.
◆ 최재천> 저 양심적이지 못 합니다.
◇ 김현정> 저도 양심적이지 못한. 했던 적은 없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오늘 좋은 말씀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면서 저도 교수님과 함께 물러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