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6/10(금) "처음 밥 먹는데 반찬 올려주던…송해 선생님 그립습니다"
2022.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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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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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오민석 (단국대 교수)



故송해 평전 쓴 오민석 교수 인터뷰
3일 전 마지막 통화, 건강하셨는데…
전쟁통 홀로 월남, B급 연예인 설움
환갑 넘어 노래자랑으로 국민MC돼
한번 만나면 다정다감함에 무장해제
"벌써부터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곁에 오래오래 머물렀던 이웃 같고 친구 같고 때로는 가족 같았던 한 인물과 작별을 하려고 합니다. 바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죠.

★ 故 송해 / 전국! 노래자랑!

◇ 김현정> 참 정겨운 목소리네요. 바로 이 목소리의 주인공. 일요일의 남자, 원조 국민MC, 현역 최고령 MC, 수많은 애칭으로 불리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송해 씨. 세 살 아이부터 백 살 노인까지 어깨춤 들썩이게 만들었던 그분이 8일, 향년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죠. 지금 이 시각 발인이 진행 중인데요. 오늘 화제의 인터뷰 송해 선생과 개인적으로 굉장히 각별하게 지내왔고 인물 평전을 쓰기도 하셨습니다. 단국대학교 오민석 교수와 함께 오늘 고인을 기려봅니다. 오민석 교수님 나와 계십니까?

◆ 오민석>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저는 이 전국~노래자랑, 이 고인의 목소리를 듣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 오민석> 저도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렇죠. 어제 송해 선생님 뵙고 오셨다고요.

◆ 오민석> 네.

◇ 김현정> 어떠셨어요? 가서 현장을 보면서..

◆ 오민석> 하.. 가서 눈물이 쏟아져서 주체를 못 했습니다.

◇ 김현정> 그렇죠.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전화 통화 하셨다고 제가 들었는데. 어떻게 그때도 건강이 조금 안 좋으셨던 겁니까? 왜냐하면 저는 좀 이 소식이 갑작스러웠거든요. 어떠셨던 거예요?

◆ 오민석> 최근에 전체적으로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셨고요. 무엇보다 잠을 잘 못 주무셨고. 그런데 3일 전에 통화할 때 목소리는 아주 건강하실 때랑 다를 바 없이 아주 짱짱하셨어요. 그리고 통화에서 느끼는 건데 뭐라 그럴까요. 아주 정신도 명료하시고. 저는 뭐 안부전화를 드렸던 거죠.

◇ 김현정> 코로나를 한번 앓으신 후에 급격히 좀 쇠약해지셨다 제가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 오민석> 네, 2년 전에 사모님 돌아가셨을 때도 같이 사모님하고 부부가 폐렴에 걸려서 입원하셨을 때도 사모님은 그걸 못 이기셔서 돌아가셨고, 송해 선생님은 그때도 기적적으로 회복되셨고 그리고 이번 코로나도 그렇게 이겨내셨는데.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까 전체적으로 체력이 떨어지셨었어요.

◇ 김현정> 그래도 3일 전만 해도 목소리 괜찮으시고 정신도 또렷하시고 했는데 너무도 갑자기, 사실 우리에게는 너무도 갑자기라는 느낌이 드는 이별이었습니다. 지금 정말 많은 국민들이 애도하고 있는데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도대체 송해라는 인물이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존재였길래 이렇게도 많은 분들이 친구같이 느끼고 깊이 애도하고 있을까. 어떻게 느꼈던 걸까요, 우리는?

◆ 오민석> 글쎄요. 저는 크게 두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그분이 1927년에 태어나셨으니까 일제강점기에 한복판에서 우리 민족이 겪은 모든 애환을 몸소 겪으셨고 또 한국전쟁을 통해서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홀몸으로 남한에 1.4 후퇴 때 오셔서 생활하시면서 또 우리가 개발도상국 시절에 어려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온 국민과 함께 고난의 시절을 헤쳐오신 분이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그분이 워낙 다정다감하신데, 그걸 개인적으로 만나면 아주 다정다감함에 다 쓰러지거든요.

◇ 김현정> 만나보면 그 다정다감함에 와, 우와, 다 놀랄 정도.

◆ 오민석> 네. 그런데 그것이 무대에서 출연자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고 또 상황에 따라 그 인자하고 따뜻함이 아주 충분히 전달이 수십 년 동안 노래자랑 무대를 통해서 되어 왔다고 생각을 해요. 가령 제가 그 분 평전하는 '나는 딴따라다'를 쓰기 위해서 처음 만나서 몇 분 되지 않았을 때 그분 사무실에 있는 낙원동 근처에 있는 백반 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저도 그때는 서먹서먹한 관계였죠 처음이니까.

◇ 김현정> 그렇죠.

◆ 오민석> 그런데 제가 밥을 먹으려고 이렇게 숟가락을 뜨면 거기다가 반찬을 놔주시는 거예요. 반찬을 이렇게.

◇ 김현정> 집에서 부부끼리도 반찬 놔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 오민석> 네, 그러니까 당신 입에 들어갔던 그 젓가락으로 반찬을, 밥을 먹으려고 이렇게 숟가락을 뜨면 거기에다 반찬을 놔주시면서 이거 먹어라, 이거 먹어라, 이런 식으로.

◇ 김현정> 아버지처럼.

◆ 오민석> 네. 그래서 저는 그 다정다감 앞에서 완전히 무장해제 됐죠.

◇ 김현정> 그런 거군요. 그런 다정다감.

◆ 오민석> 그거를 시청자들이 또 관객들이, 출연자들이 안 느꼈을 수 없죠. 그런 인품을.

◇ 김현정> 원래 방송이라는 게 그게 한 번은 속일 수 있는데요. 계속은 못 속여요. 결국 다 드러나요.

◆ 오민석>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 김현정> 정말 그래요. 그런 다정다감.

◆ 오민석> 그분이 겉으로 성공한 모습만 뵈면 사람들이 부러워하기도 하고 칭송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분이 거쳐 온 그 생애를 보면 진짜 힘들었거든요.

◇ 김현정> 고생도 좀 하셨어요?

◆ 오민석> 아까 말씀드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이런 비극들이 이분의 개인사하고 그냥 그대로 다 겹치고 한국전쟁 때문에 어머니, 또 가족들과 헤어지고 평생 그분들을 뵙지 못했잖아요.

◇ 김현정> 그래도 코미디언 되시고 나서는 승승장구하셨던 건 아닙니까? 그 뒤로 좀 힘드셨어요?

◆ 오민석> 아닙니다. 전국노래자랑을 맡기 시작한 게 1988년이니까 만 나이로 61세에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잡으셨는데 그 이전에 물론 굉장히 유명한 코미디언이었죠. 그러나 가령 예를 들면 배삼룡, 구봉서 같은 분들한테 밀려서.. 사실은 노래자랑 마이크를 잡기 전까지는 이런 말씀을 드리기 좀 외람됩니다마는 B급이었고 그런데 요즘만 하더라도 그 정도 지명도면 뭐라 그럴까요. 경제적으로 아주 어렵지 않게 잘 살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 정도로 해서는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고. 그다음에 프로그램이 바뀌고 개편, 방송국에서 어떤 연말에 개편 같은 걸 하면 언제 그 프로그램이 날아갈지 알 수 없는 거고. 그래서 송해 선생님은 그 시절을 회상하시면서 저 보고 3년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 김현정> 3년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정도예요?

◆ 오민석> 네. 그러니까 앞을 내다볼 수 없을, 그래서 그 코미디언 하실 때도 기사식당 같은 거 하시면서 거기에서 서빙하고 사모님은 주방에서 일하시고 이러셨거든요.

◇ 김현정> 그렇군요. 그렇군요.

◆ 오민석> 그런데 61세, 1988년에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잡으시면서 그러니까 남들은 환갑 넘으면 그때 일을 놓을 시기인데 그때 사실은 이분의 진짜 인생이 시작 됐다.

◇ 김현정> 그러네요. 그러네요.

◆ 오민석> 네, 굉장히 독특한 케이스예요.

◇ 김현정> 그러니까 정말로 다양한 삶의 애환들을 다 몸으로 품고 있는 분이기 때문에 그게 드러나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이웃같이 느끼고 친구같이 느끼고 더러는 아버지 같이 느끼고 이러는 거겠죠.

◆ 오민석> 그리고 이분이 참 복스러운 게, 제가 평전을 쓰기 위해서 선생님의 옛날 사진이나 이런 것들도 다 보고 이랬는데, 보면 환갑 지나서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잡기 시작하면서 이분이 풍채도 좋아지셨어요.

◇ 김현정> 그렇습니까?

◆ 오민석> 그러니까 지금의 그 넉넉하고 푸근한, 사실 뭐라 그럴까요. 이미지 같은 거 되게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그 전에 한참 코미디언 하실 때는 삐쩍 마르시고. 마르시니까 뭐라 그럴까, 좀 박복해 보이시고 이런 게 있었어요. 그리고 환갑 이후에 전국노래자랑에 푸근한 할아버지로 나오는 모습에서는 심지어 정말 잘생기셨다, 이런 찬사도 많이 받으셨는데. 그 이전에 코미디언으로 활동 하실 때는 그런 호감 있는 얼굴만은 아니었어요.

◇ 김현정> 교수님, 지금 이제 시간이 한 1분 정도 남았는데. 이제 송해 선생께서 정말로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 지금 발인식이..

◆ 오민석> 오늘 새벽부터 시작됐습니다.

◇ 김현정> 지금 아마 장지로 이동하고 있거나 그런 상황일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송해 선생께 꼭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 오민석> 저는 다른 말씀보다.. 벌써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김현정> 벌써 그립습니다.

◆ 오민석> 사랑합니다.

◇ 김현정> 그분의 그 따뜻한 미소, 그 밥에다가 반찬 얹어주던 그 다정다감함. 많이들 그리울 것 같고요. 그리고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들리던 그 활기찬 목소리. 그 든든한 목소리가 없다 생각하니 그것도 참 허전하고 그러네요.

◆ 오민석> 그러게요. 돌아가시고 하루 하루 지날수록 그 허전함이 더 커지네요.

◇ 김현정> 우리 사회가 넉넉한 그리고 큰 기둥 같은 한 어른을 떠나보내는 순간입니다. 희극인으로서 또 방송인으로서 우리와 함께 울고 웃었던 송해 씨를 보내면서 오늘 잠깐 그분의 일생을 돌아봤습니다. 오민석 교수님 오늘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오민석> 네, 고맙습니다.

◇ 김현정> 송해 씨와 상당히 개인적으로도 각별한 사이시고요. 그리고 송해 평전을 쓰신 분입니다. 단국대학교 오민석 교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