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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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6/6(목) [인터뷰] "인육 배급에 집단학살까지… 밀리환초 사건을 아십니까?"
20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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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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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1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출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日, 태평양 전쟁 당시 섬들을 항공모함으로
전라남도 등 1000여 명의 조선인 강제동원
미국 봉쇄로 고립…풀, 지나가는 쥐로 연명
일본군 건넨 고래고기…사라진 조선인 인육
저항·탈출 시도했지만 日, 55명 집단학살
섬에서 3년간 218명 사망…이름·주소 공개

오늘 마지막 인터뷰는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를 좀 돌아보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위해서 조선인들을 강제로 전쟁 자원으로 동원했죠. 사도광산이니 군함도니 이런 거 너무나 여러분 잘 아실 텐데 오늘은 잘 알려지지 않은 한 곳을 조명해보려고 합니다. 태평양 한가운데 반지 모양의 산호초 군집이 있어요. 밀리환초, 이렇게 불리는 곳인데 이름도 생소한 이곳에서 일본군이 조선인들을 집단 학살했다는 겁니다. 더 충격적인 건 인육을 먹게 했다는 이런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건데요. 이 같은 내용을 연구한 일본인 학자의 기자회견이 곧 열립니다. 이 기자회견을 준비한 곳, 강제동원 시민 모임의 이국언 이사장 지금부터 연결해서 자세한 얘기 좀 들어보죠. 이사장님 나와 계십니까? 

◆ 이국언> 예,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밀리환초, 이게 이름이 좀 낯선데 어떤 곳인가요? 

◆ 이국언> 태평양 마셜제도. 그러니까 중부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동부 쪽에 있는 작은 섬들의 무리로 되어진 그쪽에 있는 섬입니다. 

◇ 김현정> 네. 마셜제도에, 원래 환초 이러면 산호초들이 동그랗게 모여 있는 걸 환초라고 하잖아요. 

◆ 이국언>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밀리환초라는 지역에 또 작은 섬들이 있는데 그 섬들에서 벌어진 일이군요. 

◆ 이국언>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 먼 곳까지 조선인들을 끌고 가서 어떤 일을 시켰던 겁니까? 

◆ 이국언> 1941년 12월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이 드디어 발발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전쟁 초반에는 일본군이 승승장구를 했고 또 일본의 구상은 태평양이나 이쪽에 작은 섬들을 지형을 활용해서 일종의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쓰려고 했던 것이죠. 

◇ 김현정> 섬을 항공모함처럼. 

◆ 이국언> 그러니까 이런 섬들을 활용해서 미군을 제압할 수 있는 해상권이나 제공권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이곳은 대규모의 군사시설들을 확충하고 만들게 되는데 여기에 투입될 인력을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했던 것입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겁니까? 

◆ 이국언> 그렇습니다. 초반에는 연전연승하고 했지만 전세가 천천히 이렇게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서 각 섬들을 처음에는 무효 협상을 일본이 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군이 이 해상의 봉쇄를 하면서 보급로를 차단하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일본군이 고립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식량도 조달이 안 되고 또 무기도 조달이 안 되는 상황이 악화된 상황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죠. 

◇ 김현정> 그렇게 미군이 그 섬을 봉쇄하면서, 봉쇄작전을 펴면서 그러면 그 밀리환초 지역의 섬들은 고립무원 상태가 된 거군요.

◆ 이국언> 그렇습니다. 밀리환초 이쪽 지역의 강제동원 당시에 지금 증언에 따르면 42년 3월경에 전라남도에서 800명, 그리고 다른 도에서 각각 800명씩 2400여 명 정도가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각 섬에 투입이 됐던 것 같습니다. 배치가 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밀리환초 이 지역에는 전라남도에서 동원된 800여 명의 그 앞서 있었던 일부 인원까지 해서 약 1000여 명 정도의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서 노동에 투입되고 있었던 것으로 그렇게 추정이 됩니다. 

◇ 김현정> 아니, 그러면 미군이 봉쇄 작전 폈다는 이야기는 보급로도 다 차단되고 했다는 얘기인데 그럼 거기 동원됐던 조선인들은 어떻게 살았어요? 

◆ 이국언> 그러니까 이 섬이 사실은 그다지 크지 않은 섬이었고 원래 원주민은 500여 명 정도, 그러니까 원주민이 500여 명이다라고 하는 것은 그 섬의 크기를 대략 짐작할 수 있는 것인데 여기 이게 전쟁터가 되면서 일본군이 44년 1월경에는 해군, 육군 해서 한 3600여 명 정도 그리고 조선에서 동원된 피해자들이 약 1000여 명 정도 해서 이 섬 인구가 애초 원주민의 10배가 넘는 5300여 명 정도의 인원까지 확대가 된 상황에서 보급로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아주 열악한 환경에 내몰렸던 것이고 이러한 상황에 처하자 일본군이 이대로는 버티기 어려우니까 각각 몇 명씩 나눠가지고 각자 도생해라, 자력갱생해서 버텨라, 이렇게 지시를 했던 것입니다. 

◇ 김현정> 그럼 섬이니까 물고기 잡아먹고 이런 식으로 버텼던 건가요? 

◆ 이국언> 아니, 그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냐면 미군이 해상을 봉쇄했다고 하는 것은 바다에 상륙은 하지 않았지만 사방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다로 나가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여건도 아니고 폭탄을 쓸 수도 없고 그다음에 노출되는 상황이 미군에 의해서 공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고기를 잡는다고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섬이었지만, 사방이 바다였지만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여건도 안 됐던 것입니다. 

◇ 김현정> 그래서 거의 기아 상태에 빠진 조선인들에게 일본군이 고래 고기라고 하면서 먹을거리를 줬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 연구 결과.

◆ 이국언>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풀 뜯어 먹고 콩잎 따서 먹고 지나가는 쥐를 잡아서 닥치는 대로 뭐라도 연명해야 했던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고래 고기라고 주어졌던 것이니까 허기진 이 사람들한테는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이 모처럼 육식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을 했었겠죠. 

◇ 김현정> 그게 진짜 고래 고기였으면 지금 아무 문제가 없는 건데 그게 고래고기가 아니었다는 건가요? 

◆ 이국언> 그렇습니다. 왜 그러냐면 어느 날 동료 중에 한 사람이 어느 날 일본군하고 같이 갔는데 사라지는 그런 상황이 있었고 그래서 일본군은 눈을 피해서 섬 주변을 계속 조선인들이 동료들을 찾기 위해서 수색하는 과정에 옆에 있는 조그마한 무인도까지 가게 됐었는데 거기에서 끔찍한 상황을 보게 된 것입니다. 

◇ 김현정> 어떤 상황이었죠?

◆ 이국언> 그게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고 사라진 조선인이었고 그다음에 허벅지 살이 마치 포를 뜨듯이 살점이 모두 도려내져 있었던 상황을 목격을 하고 얼마 전에 고래고기라고 먹었던 그 고래고기가 사실 생각해 보면 정상적인 어로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동료의…

◇ 김현정> 동료의 시신이 아닌가.

◆ 이국언> 살점이었다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 김현정> 이렇게 알게 된 조선인들이 그때부터 순응하지 않고 이 부분에 대해 항의하고 이랬다는 기록까지 지금 나온 건가요? 

◆ 이국언> 그렇습니다. 거기 생존했던 분들은 또 수기나 증언, 인터뷰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면서 어차피 여기 있다가 잡혀서 먹이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밖에 대기하고 있는 미군에게 탈출하는 이걸 모의를 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군 감시병을 몇 명을 제거를 하고 탈출하는 계획을 45년 3월경에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또 목숨을 내놔야 할 상황이었는데 결국 주둔하고 있던 11명 중에서 7명을 제거를 하게 되는데 나머지 몇 명을 놓쳤고 그 도주한 일본군이 옆에 섬에 있던 일본군 지휘소에 이 같은 상황을 말을 하게 됐고 거기에 중무장한 일본 군인이 그다음 날 섬에 물이 빠지자 상륙을 해서 그야말로 초토화시켜서 현장에서 55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 김현정> 조선인 55명, 원주민 15명이 목숨을 잃었고 어쨌든 우리 조선인들이 그 상황에서 그대로 순응하고 포기한 것이 아니라 탈출을 시도했다는, 지금 배의 모습을 봤거든요. 저것도 엄청난 용기 아닌가요? 

◆ 이국언> 그렇습니다. 저 배에 한 사람,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 해맑고 환한 그 모습 속에서 이 사람들이 처했던 그 열악한 환경이 얼마나 끔찍했던 것인지 그리고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한, 새까맣게 탄.

◇ 김현정> 뼈밖에 없어요. 

◆ 이국언> 그리고 이 섬의 또 하나 끔찍한 것은 단순히 그날 55명이 학살당한 것뿐만 아니라 그 섬에 그날 당일 사망한 것을 포함해서 3년여 기간에 무려 218명이 사망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과 1000여 명, 많아야 1000여 명 중에서 218명이 어떤 식으로든지 사망한 끔찍한 상황이 그 섬에서 벌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사실은 이 밀리환초의 상황이라는 것은 우리가 좀 생소합니다. 생소한데 이것들을, 이 기록을 발굴하고 연구한 학자가 한국에 와서 기자회견을 곧 한다고요?

◆ 이국언> 그렇습니다. 내일 광주광역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오전 10시 30분에 다케우치 야스토 선생님이라고 일본의 사학자이고 한 30여 년 넘게 강제노동자의 연구를 해 오신 분이신데 사실 그전에 이 사건이 처음 알려진 것은 아니거든요. 우리 정부 기구를 통해서 2010년 직권 조사했던 결과 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만 내일은 55명뿐만 아니라 218명의 이름과 자세한 주소가…

◇ 김현정> 그 기록까지 남아 있습니까? 거기 끌려갔던 사람들의.

◆ 이국언> 이 다케우치 야스토 선생님이 그동안 이것을 계속 추적해 오신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끌려갔던 그 사람들의 주소와 이름까지 지금 기록을 찾아낸 상황. 기자회견 주목해 보겠고요. 참 우리가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렇게 새로운 이런 과거의 역사들, 만행들이 드러나고 있다는 거 우리가 잊지 말아야겠고 다시 한 번 그 과거를 생각하게 됩니다. 기자회견 잘 치르시고요. 오늘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 이국언> 고맙습니다. 

◇ 김현정> 강제동원시민모임의 이국언 이사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