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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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진영 (<하와이 연가> 감독)
한인 이민사 120주년…최초의 이민, 1902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서 중노동…매달 독립운동 자금 보태
이민자 후손, 대법원장, 경찰청장…지역사회 요직도
화제의 인터뷰 시간입니다. 지금 전 세계에 재외동포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740만 명 정도가 됩니다. 그중에 263만 명은 미국에 거주하는데요. 상당히 많은 한인이 살고 있죠. 그럼 그 이민의 시작이 언제였는지 아십니까? 바로 일제강점기 직전의 대한제국 시절. 102명의 이민자가 배를 타고 하와이로 간 것, 그게 바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이민이었습니다. 올해로 하와이 이민 120주년을 맞아서요. 곧 하와이 이민사를 다룬 다큐 영화 한 편이 나온다고 해요. 이름하야 하와이 연가. 오늘 화제의 인터뷰 이 하와이 연가의 감독 이진영 감독 만나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감독님.
◆ 이진영>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현정> 하와이 연가. 일단 하와이 하면 그냥 이름부터 낭만적이에요.
◆ 이진영> 맞아요.
◇ 김현정> 그러면 감독님은 역시 하와이 이민자신 건가요?
◆ 이진영> 저는 한국에서 쭉 태어나서 자랐어요.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 미국에 가서 하와이에 가서 지금 한 20년째 살고 있습니다.
◇ 김현정> 아니, 그런데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큰 불이 나서 한국에 계시면서도 마음이 불편하시겠어요.
◆ 이진영> 하와이 연가 3편에 출연해 주신 하와이 기타리스트가 있으신데 그분이 라하이나에 살고 계세요. 그분은 안전하시지만 그래도 주변분들도 그렇고 너무 마음이 아파요. 굉장히 아름다운 곳인데.
◇ 김현정> 하와이도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다큐 영화 하와이 연가 어떤 영화입니까?
◆ 이진영> 하와이 연가는 총 3편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그 미주 이민사를 좀 아름답게 음악으로 풀어보자는 기획 의도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총 3편 중에 1편은 하와이 이민사 총 120년을 망원경으로 보듯이 저희가 사진과 음악으로 조망을 했고요. 1편은 이미 완성이 돼서 미국과 한국에서 뮤지엄에서 박물관에서 여러분들을 좀 뵙고요. 2편과 3편은 이번 주에 드디어 마감이 돼요. 그런데 그 1903년에서 5년, 2년 동안 한국에서 하와이로 오신 분들이 좀 7000여 명 정도가 됐는데 이분들을 초기 이민자로 봤을 때 그중에 두 분 정도의 삶을 이번에는 돋보기로 보듯이 2편에서는 한 여성분, 한편에서는 한 남성의 삶을 음악을 통해서 또.
◇ 김현정> 어떻게 하와이의 이야기, 이민사를 담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하신 거예요?
◆ 이진영> 낭만적이잖아요. 하와이 하면.
◇ 김현정> 이름만 들어도.
◆ 이진영> 사실 저도 그 낭만적인 하와이의 풍광에 반해서 이민을 가게 됐어요. 그런데 막상 이민 가서 살아보니까 그렇게 너무너무 가고 싶어서 갔는데도 이민자의 삶이라는 건 여행할 때와는 또 다르더라고요.
◇ 김현정> 현실이죠.
◆ 이진영> 현실인 거예요. 물론 좋은 점도 너무 많지만 일단 그 고국, 모국어와 먼 곳에서 살아간다는 거에 대한 어려움이 누구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저도 그런 고민들을 가지고 몇 년 정도를 살았어요. 그런데 그 하와이에서 제가 한 인물을 만나게 돼요. 이분이 저에게는 정말 어떤 삶의 변곡점 같은 걸 마련해 준 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 김현정> 누구세요?
◆ 이진영> 성함이 해리 킴.
◇ 김현정> 해리 킴?
◆ 이진영> 맞아요. 해리 킴이 어떤 분이시냐면 이분이 미주 한인 이민 역사상 최초로 시장직에 오른 분이에요. 이분의 어머니가 사진 신부로 하와이에 오셨다는 거예요.
◇ 김현정> 잠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만 2편의 주제가 되는 사진 신부로.
◆ 이진영> 대부분의 싱글 남자들, 그러니까 미혼 남자들이 사탕수수밭에서 일을 하기 위해 하와이에 갔죠. 그러다 보니까 결혼하기가 힘든 거예요.
◇ 김현정> 주로 남성들, 젊은 남성들이 이민을 갔는데. 그러네요. 거기서 미국인 여성을 만나 결혼하기 쉽지 않으니까.
◆ 이진영> 어려움이 많았고 그분들이 많은 경우에 농장에서 일할 때도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게 아니다 보니까 도박에 손을 댄다거나 이런 일들이 많으니까 그 농장주 차원에서 공개 구혼을 한국에 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성들을 데리고 와서 이 사람들한테 가정을 꾸려주기 위해서.
◇ 김현정> 그때 이용됐던 게 사진이에요?
◆ 이진영> 사진이에요, 그래서 사진결혼 또 사진 신부, 이렇게 얘기가 나오는 거예요.
◇ 김현정> 아니, 그러면 이 남성들한테는 한국에서 찍어서 보낸 사진이 제공될 테고 한국에 있는 여성들한테는 그럼 미국에서 찍어서 보낸 남성들 사진이 제공되고.
◆ 이진영> 사진 신부의 후손인 거예요. 제가 존경하는 해리 김 시장님이. 그리고 그 사진 신부 이분의 삶을 보니까 정말로 억척스럽게 엄청난 모성을 보여주면서 살아내신 거죠. 그런데 그분의 삶을 제가 해리 김 시장님 통해서 들으면서 이렇게 새삼 제가 살고 있는 하와이에서의 제 삶을 돌아보게 되는 거예요. 이게 120년의 이민 역사의 뭐라 그럴까요, 시간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들의 삶을 보면 나도 정말 잘할 수 있겠구나, 잘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이런 이야기들을 좀 다른 분들과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제작하게 됐습니다.
◇ 김현정> 저는 하와이에 한인들이 많이 살고 계신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시작이 대한제국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줄은 잘 몰랐어요. 1902년, 3년 그 무렵이 첫 이민자가 떠난 때라고요?
◆ 이진영> 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정부 차원의 공식 이민은 1902년이 처음이었던 거죠.
◇ 김현정> 1902년 12월 그 눈발 날리는 추운 겨울에 102명?
◆ 이진영> 그러니까 떠난 사람은 또 120명이었는데 그 안에서 눈병 나고 이런 걸로 배에서 내리지도 못한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첫 발을 디딘 사람은 그다음 해인 1903년 102명이에요.
◇ 김현정> 배가 또 가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 이진영> 시간이 걸리니까 해가 바뀌는 거예요.
◇ 김현정> 해가 바뀌었어요.
◆ 이진영> 그래서 하와이 이민사를 이야기했을 때 하와이 기준으로 하면 1903년이고 한국 기준 1902년이죠.
◇ 김현정> 그런데 이제 어떻게 대규모 이민 사업의 대상지가 미국에서도 하와이가 됐어요?
◆ 이진영> 이제 세계 설탕 수요가 폭증하면서 하와이에 사탕수수 농업이 호황이다 보니까 노동자들을 전 세계에서 특히 아시아 국가, 그러니까 중국, 일본, 포르투갈, 유럽에서는 그런데 그런 광고를 냈는데 1903년 대한제국의 힘든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그 광고가 닿은 거죠. 그래서 정말 큰 꿈을 안고 이 사람들이 하와이에 가서 돈도 벌어서 많은 경우는 고국으로 돌아와야겠다 하신 분들도 있었다고 해요.
◇ 김현정> 그렇게 마음먹고 떠났어요. 그런데 문화적인 차이죠. 또 경제력 차이 있죠. 언어 안 통하죠. 거의 쇼크 수준이었을 것 같은데 그 시절에는 어떻게 이분들이 초기에 정착을 하셨어요?
◆ 이진영> 그분들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갔던 분들이 대부분인데 하루 11시간 정도를 그 뙤약볕 아래서 일을 했대요. 점심시간 30분 정도 제외하고는. 그럼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뙤약볕에서.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일하면서 그때 당시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었으니까 그런 독립운동 성금도 마련하고 이러면서 살아내신 거죠.
◇ 김현정> 버텨내신.
◆ 이진영> 버텨내셨다고 생각해요.
◇ 김현정> 그 과정에서 사진 신부로 신부도 얻고 제2편에 담긴 이야기가 그 사진 신부 한 할머님 이옥순 할머님이신가요? 그 할머님의 생생한 실화가 증언으로 담겨 있는데 그 부분을 한번 좀 직접 감상하고 올까요? 잠깐 듣겠습니다.
★ 게리야, 할머니 어릴 때 어땠냐고 물어봤지? 기억이 별로 없어. 4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들었어. 부모님 생각이 잘 안나. 두 분 돌아가시고 난 고아원에 보내졌어. 그리고 몇 년 후엔 어머니 친구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고 주인댁은 내가 좀 나이가 들었을 때 부모님 얘길 해주셨는데 두 분 다 선생님이셨고 일본인한테 처형당했대. 그 댁에서 몇 년째 일하던 어느 날 주인댁이 나한테 포와에 가서 한국인 노동자 아내가 되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어.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느냐. 어릴 적 고아원에서 알게 된 언니가 말했어. 옥순아, 절호의 기회야.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 가기로 마음먹었어. 모르는 남자하고 사진을 교환했다. 그 사람은 내 남편이 될 참이었지. 남편이 사진처럼 잘생겼을까? 남편은 그냥 남편일 뿐 그런 걸 바라면 안 되지. 난 남편을 잘 따르는 좋은 아내가 될 거야. 아주 좋은 아내. 날 짓누르는 무거운 지옥도 없을 거야.
◇ 김현정> 이 목소리가 배우 예수정 선생님 목소리.
◆ 이진영> 네, 목소리 연기를 예수정 배우님이 해주셨어요.
◇ 김현정> 밑에 잔잔하게 끌리는, 깔리는 이 음악은?
◆ 이진영> 리처드 용재오닐.
◇ 김현정> 용재오닐 씨.
◆ 이진영> 하와이에서 저희 실제 임옥순 여사가 그 손자인 게리와 자주 갔던 그 공원을 찾아서 그쪽에 거기서 연주를 저희가 촬영을 했죠.
◇ 김현정> 아까 그 한국인 시장, 하와이 3선하신 그 시장님도 그렇고 지금 말씀하신 박사님도 그렇고 아니, 하와이 지역에서 한인들이 너무나 다 잘 됐더라고요. 경찰청장.
◆ 이진영> 맞아요.
◇ 김현정> 대법원장.
◆ 이진영> 맞습니다.
◇ 김현정> 어떻게 그렇게 잘 뿌리를 내리고 후손들을 잘 키워낸 거예요?
◆ 이진영> 지금 말씀하신 그 한인 최초의 대법원장, 한인 최초의 미주 시장, 한인 최초의 경찰국장 이분들이 다 그 사진신부 후손이거나 그러니까 처음 어쨌든 초기에 온 이민자의 후손인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저도 그런 지점에서 이 이민사의 이야기가 너무 흥미롭고 계속 공부하고 찾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 김현정> 이제 2세, 3세 계속 이렇게 되는 분들이잖아요. 거기서 아예 낳고 자란. 그런데 그분들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그 뿌리에 대한 개념이 있어요?
◆ 이진영> 좀 전에 언급하셨던 한인 최초의 주 대법원장이 문대양이라는 분인데 이분의 외할아버지, 친할아버지 두 분 다 캘리코에 타고 계셨어요. 처음 하와이에 갔던.
◇ 김현정> 그 배 이름이 캘리코.
◆ 이진영> 캘리코예요. 이민선. 1903년 11월에 도착했잖아요. 양쪽 할아버지가 거기 타고 계셨던 거예요. 서로 모르는 채로. 그런데 그분의 손자가 그 주 대법원장이 됐는데 그분이 어떤 얘기를 하냐면 그러니까 자기가 살던 와히아와라는 마을이 있어요. 하와이 오하우의 작은 마을에 한인들이 지금 모여 살았었대요. 그런데 어느 날 자기 최초의 기억이 5살 때래요. 그런데 그때 어떤 기억이냐면 동네 한국인들이 다 모였대요. 교회에. 그래서 교회에서 떡을 돌리고 잔치를 하면서 막 너무너무 신나했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기억난대요.
◇ 김현정> 대한독립 만세.
◆ 이진영> 그때가 1945년 8월 15일이에요. 그러니까 이분들은 갈 수도 없는 나라지만 나라의 그런 너무 기쁜 소식에 모여서 만세를 외친 거예요. 그때 대법원장님이 어떤 주 행사에서 하와이 주 행사에서 그 치얼즈를 만세로 하자고 이렇게 제안을 하시면서 그 얘기를 하시더라거요.
◇ 김현정> 건배사를. 그 이야기는 그러면은 일제 강점기 35년 동안 하와이에서도 이민자들의 독립운동이 있었다는 얘기로도 들리네요.
◆ 이진영> 그렇죠. 실질적으로 이렇게 항일 운동을 정말 이렇게 몸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흔히 아시는 상하이 임시정부, 이봉창 의사의 의거, 이런 백범 김구 선생님이 그쪽에서 그런 항일 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미주 한인, 특히 하와에 있는 사탕수수 노동자들이 정말 십일조 걷듯이 매달 이렇게 모았던 돈이 너무나 큰 역할을 했고 힘이 됐다고 합니다.
◇ 김현정> 경제적으로 지원을 하는군요.
◆ 이진영> 경제적으로 어마어마하게 큰 액수였어요.
◇ 김현정> 새벽 4시부터 이 노동을 해서 번 그 사탕수수 노동해서 번 그 돈을 십일조처럼 10분의 1을 떼서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을 했어요.
◆ 이진영>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돈을 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상상할 수 없어요.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특히 여성들은 그 특히 사진 신부들 아까 말씀하셨던. 그분들이 자식만 이렇게 훌륭하게 키우신 게 아니라 그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힘을 모아서 대한부인구제회라는 여성 최대의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을 해요. 하와이에서. 그래서 그분들이 그때 당시 여성들에게 누가 믿고 후원금을 주겠어요. 김치를 만들어서 팔고 자기들끼리 춘향전 이런 연극을 해서 티켓을 판 기금을 모아가지고 이런 김구 선생한테도 보내고 만주 이런 데서 독립운동을 진행하던 독립군들에게도 보낸 그 자료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그리고 이분들은 독립 후에도 한국전쟁 그때에 고국을 도와주는 이런 그런 펀드레이징을 계속 하셨다는 게 기록에 남아 있어요. 정말 우리를 사랑하셨던 분들인 것 같아요.
◇ 김현정> 하와이 이민사를 듣다 보니까 저는 하와이뿐만 아니라 지금 전 세계에 나가 있는 동포들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는데 오늘 광복절이어서 더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고요. 아니, 이 영화가 그럼 언제 개봉이 되는 겁니까?
◆ 이진영> 지금 저희 1, 2, 3편을 모아서 옴니버스 형태로 연말에 할 생각이고요. 그전에도 사실 소소하게 저희 프라이빗 상영은 계속하고 있어요. 그래서 9월에도 LA에서 상영하고요. 10월에도 워싱턴에서 상영 예정이고.
◇ 김현정> 오늘 감독님 보내드리면서요. 영화에 삽입된 음악 한 곡을 들으면서 인사 나누면 어떨까 싶어요. 어떤 곡 추천하시겠어요?
◆ 이진영> 소록도 있잖아요. 한국에.
◇ 김현정> 한센병 환자들이 살았던.
◆ 이진영> 한센병 환자들이 격리됐던 곳이죠. 그런 곳이 하와이에도 있습니다. 칼라우파파라는 곳이 몰로카이라는 아주 작은 섬의 한 구석에 있는데 그게 130년 정도 사람들이 격리돼서 그쪽으로 추방돼서 살았었어요. 나병에 걸리면 놀랍게도 그중에 한국인들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사탕수수 농장에서 돈을 벌어서 잘 살아보겠다고 갔는데 나병에 걸리거나 나병에 의심돼서 거기로 끌려가서 죽은 사람이 50명 있어요. 우리 이민 선조들이.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고 우리가 거기에 가서 좀 고향으로 음악을 통해서나마 한 번 돌아갈 수 있게 해드리자 하는 마음으로 저희가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씨 또 바이올리니스트 이기장, 하와이 키올라 비머라는 기타리스트가 가서 촬영을 했고요. 거기서 나온 곡 한 곡 전해드릴게요. <저 구름 따라 집으로>라는 곡으로 우리 가곡과 드보르작의 곡을 같이 편곡했습니다.
◇ 김현정> <저 구름 따라 집으로> 들으면서 하와이 연가의 감독 이진영 감독과도 인사 나누겠습니다. 감독님 오늘 하와이 이야기 고맙습니다.
◆ 이진영> 감사합니다.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8/15(화) 120년 전 하와이로 간 '사진신부'를 아세요?
20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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