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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월) 안중근장군동상건립위원회장 "안 의사, 오직 조국만 사랑한분"
200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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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안중근장군동상건립위원회 이진학 회장 (재중사업가)
오늘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역사적인 의거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안 의사의 흔적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는데요. 하얼빈 의거장소에는 4년 전에 안 의사의 동상이 세워졌지만 열하루 만에 철거가 됐고 그동안 방치되다가 이제야 국내로 옮겨졌는데 국내에서도 제자리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4년 전, 하얼빈에 동상을 직접 만들어 세운 분입니다. 안중근 의사 동상 건립 위원회 회장 이진학 씨 만나보죠.
◇ 김현정 앵커> 4년 전에 이 동상은 어떻게 세우시게 된 겁니까?
◆ 이진학> 하얼빈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역사적인 하얼빈시에 안중근 의사 동상을 반드시 세워야겠다는 일념으로 2006년 1월 16일에 세웠습니다.
◇ 김현정 앵커> 개인 돈으로 만드신 겁니까?
◆ 이진학>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앵커> 그런데 왜 11일 만에 철거가 됐습니까?
◆ 이진학> 중국정부에서 외국인 동상을 실외에 세울 수 없다는 방침 때문에 그랬습니다.
◇ 김현정 앵커> 안중근 의사는 외국인인데 실외에는 세울 수 없는 그런 법이 있군요. 그 동상은 어떻게 하셨어요?
◆ 이진학> 그래서 제가 사무실에 4년 동안 보관하고 있으면서 한국의 관광객이라든지 중국에 쇼핑 오신 분들이 참배도 한 2천 분 이상 하셨습니다.
◇ 김현정 앵커> 정식으로 세워놓은 게 아닌데도 많이 찾아오시던가요?
◆ 이진학> 네.
◇ 김현정 앵커> 정식으로 세워놓은 게 아니고 일단은 방치된 채 있다가... 어떻게 국내에 들어오게 된 건가요?
◆ 이진학> 국내에는 지난 9월 1일에 인천항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 김현정 앵커> 과정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해서 누구의 초청으로, 어떤 식의 경로를 통해서 오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네요?
◆ 이진학> 하얼빈 역이 상징적이지 않습니까? 하얼빈 역을 한번 갔다 오고요. 하얼빈의 공원도 가고, 심양, 장춘, 대련을 거쳐서 여순까지 갔습니다. 여순에는 그분이 재판을 받던 곳이어서 14일 동안 머물고 인천항에 들어온 거죠.
◇ 김현정 앵커> 누가 초청을 해서 가져오게 되신 건가요?
◆ 이진학> 아닙니다. 초청은 아니고 그분이 100년 만에 조국에 오신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 김현정 앵커> 역시 이것도 자비로?
◆ 이진학>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앵커> 국내에 들어와서 바로 자리를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들어오고 나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요?
◆ 이진학> 국내에 들어온 후부터는 여기저기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유치하겠다고 한 곳이 10여 군데 있었습니다.
◇ 김현정 앵커> 지자체에서 말씀이시죠?
◆ 이진학> 네. 그런 과정에서 부천시에서 안중근 공원도 설립하고, 앞으로 부천시민들이 안중근 의사를 잘 모시겠다는 시장님의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래서 부천으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 김현정 앵커> 들어오고 나서는 비교적 쉽게 자리를 잡은 거네요. 들어오고 나서도 상당히 곤란을 겪었다,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 이진학> 효창공원에 백범광장이라고 있습니다. 그 옆에 의열사사당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하루 이틀 정도 모시고 가기로 구청하고 이야기가 됐는데, 50일 정도 머물다가 자리를 찾으면 가겠다고 했는데 그 쪽에서 불허했습니다. 이 소식을 국회에서 듣고 박계동 사무총장께서 국회 헌정기관에 50일 동안 머물고 장소가 결정되면 옮기도록 조치를 하셨습니다.
◇ 김현정 앵커> 부천시로 빨리 결정이 안됐으면 상당히 오랫동안 방치가 됐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세요.
◆ 이진학> 방치라고 말씀하시면 안 되고, 일단 한국에 머문다고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김현정 앵커> 어쨌든 제자리를 못 잡고 있을 뻔 했는데 잘 됐습니다. 오늘 제막식 갖게 됐죠?
◆ 이진학> 네.
◇ 김현정 앵커> 여러 차례 동상을 옮기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하얼빈에서의 냉대도 있었을 거고, 국내의 관심과 지원이 부족했던 점. 어떤 게 가장 서러우셨어요?
◆ 이진학> 서럽기보다는 안중근 의사의 정신이 남다르지 않습니까? 오직 조국만 사랑했고, 오직 동포만 사랑했던 분입니다. 그 분을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 김현정 앵커> 민간이 만든 동상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동상이 아니다, 얼굴이 실제 얼굴이 안중근 의사와 닮지 않았다, 이런 논란을 제기 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 이진학> 동상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형체는 비슷하지만, 100% 닮은 동상은 없습니다. 민간단체에서 제작하는 동상을 인정해 주는 곳도 없고, 그런 제도는 없습니다. 기관도 없고요. 그래서 얼굴이 닮았다, 무슨 어디에서 인증해야 한다, 이런 제도라든지 그런 것은 없습니다.
◇ 김현정 앵커> 그렇군요. 지금 질문들이 들어오는데요. ‘4년 전, 이 동상을 어떻게 세우게 된 겁니까?’ 하고 제가 질문 드렸을 때 개인사업하면서 그런 마음이 생겼다, 하셨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떤 동기가 있었는가, 하는 질문이 들어오네요?
◆ 이진학> 하얼빈하면 안중근 의사가 우선 떠오르고요. 상해하면 임시정부가 떠오르는 것처럼 하얼빈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니까 안 의사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 김현정 앵커> 하얼빈에는 다른 기념비라든지, 흔적이 남아있는 게 거의 없나요?
◆ 이진학> 조금 있습니다. 5년 전에는 기념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중국 정부에서 공원에 비석도 하나 세웠고요. 역사적인 하얼빈 역에는 삼각 표시로 의거 장소가 표시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표시인지 설명되어있지 않아서 중국시민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혼동도 하고, 알지 못합니다.
◇ 김현정 앵커>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아는 표시군요?
◆ 이진학> 네. 한국 분들은 많이 알죠. 설명을 하기 때문에. 중국정부에서는 설명 같은 것을 아직 허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 김현정 앵커> 하얼빈에 일본기업들이 상당히 많다면서요? 사업하시는 분들도 많고.
◆ 이진학> 한국보다는 일본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혹시 중국정부에서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 김현정 앵커> 저도 그 이야기 듣고 혹시 그랬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던데... 알겠습니다. 올해는 의거 100주년이어서 비교적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만 반짝 관심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꾸준한 장기사업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