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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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금) 이산가족 양석봉 “찔레꽃, 우리는 잊었지만 北 형님은 기억하고 있었다”
2009.10.02
조회 257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북한 형님 량의봉 만난 양석봉 씨

‘찔레꽃 피는 남쪽나라 내고향’ 이번 이산가족상봉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노래입니다. 지금은 북에 살지만, 고향이 제주도인 여든 살, 양희봉 씨가 부른 노래 ‘찔레꽃’입니다. 지금부터 만날 분은 이 노래를 부른 양희봉 씨의 남쪽동생 양석봉 씨입니다. 이번 상봉으로 60년 맺힌 한을 풀긴 했지만, 정작 이 한가위 추석에는 형님을 뵐 수 없는 이 기구한 사항 참 애틋할 것 같은데요. 연결을 해보죠.

◇ 김현정 앵커> 어제 오후에 남으로 돌아오셨죠?

◆ 양석봉> 네, 네.

◇ 김현정 앵커> 발걸음이 잘 안 떨어졌을 것 같은데요.

◆ 양석봉> 네,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앵커> 마지막에 형님하고는 무슨 얘기 나누셨습니까? 인사.

◆ 양석봉> “헤어질 시간이 다 됐습니다. 잠깐 만났지만 얼굴로 만났으니까 반갑습니다. 올해도 건강하십시오.” 그런 이야기죠.

◇ 김현정 앵커> 눈물도 흘리셨습니까?

◆ 양석봉> 눈물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죠.

◇ 김현정 앵커> 그렇죠. 지금도 눈감고 있으면 형님이 찔레꽃 부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실 것 같아요.

◆ 양석봉> 네, 맞습니다.

◇ 김현정 앵커> 그런데 그 찔레꽃이라는 노래에 얽힌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건가요?

◆ 양석봉> 네, 네. 저 어릴 적에 ..에 좀 다녔습니다. 찔레꽃이라든가 아니면 목포의 눈물, 이렇게 해가지고 저는 노래에 뭐가 감정이 없어가지고 곡조를 잘 몰라요. 다 잊어버리고... 그래서 찔레꽃이라든가 목포의 눈물을 합창해서 다 부르려고 했는데, 동생들이 노래를 잘 몰라가지고 형님이 “내가 한번 하면은 예전에 사연이 있는가 없는가 고향이 얼마나 그리워 있는가, 내 이것을 불러주마.” 해가지고 그때 찔레꽃을 선택을 한 겁니다. 형님이 직접.

◇ 김현정 앵커> 아니, 그러니까 남쪽에 사는 아우들은 찔레꽃 노래 다 잊어버렸는데, 예전에 합창하던 거... 정작 북쪽에 계신 형님은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부르신 거예요?

◆ 양석봉> 네, 네. 그렇죠. 얼마나 형님이 어쨌든 뭐해가지고 북쪽에 살아계시지만은 항상 자기 고향 땅은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그러면 내가 하나의 증명을 하겠다고 한 거예요. 그 노래를...

◇ 김현정 앵커> 그러면서 일어나서 찔레꽃을 부르시는데... 눈시울이 촉촉해지시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울음을 참으면서... 형님은 그런데 어쩌다가 제주도에서 북으로 가게 되신 거예요?

◆ 양석봉> 그것은 어릴적부터 공부는 하고 싶고, 가정은 가난해가지고 공부할 형편이 못 됐습니다. 상급학교에 지원을 못하게 됐는데... 이게 어떻게 하다가 육지에 가서 공부를 중학교는 아마 졸업을 한 것으로 지금 알고 있습니다.

◇ 김현정 앵커> 육지로 공부하러 가신 거군요?

◆ 양석봉> 네, 한양중학교를 다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 단계는 다니지 못한 걸로 알고 있고요. 그래서 1950년도, 그때는 지금은 국회의원이지만 그때는 민의원이라고 있었을 겁니다. 5월30일 날, 제주도에 이미출신 오건일이라는 하는 분이 그 분이 민의원 출마했는데, 같이 해가지고 선거사무장으로 나왔습니다. 아마 그렇게 나왔다가 낙선되고 했는데, 혼자만 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아버지도 부상당했고, 어머니도 역시 부상당했고, 저는 같이 있었습니다만, 저는 용케 아무런 사고가 없어가지고... 그래도 혼자 보낼 수는 없다 해가지고 눈물을 머금고 갔는데, 이번에 들어보니까 둘이가 거기 가서, 서울에 가가지고 3일 만에 6.25동란을 당했지요.

◇ 김현정 앵커>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 사연이 한 시간이면 되겠습니까? 두 시간이면 되겠습니까? 참 기가 막힌 사연들이죠. 그래서 제주에서 북까지 가게 되신, 그래서 영영 생이별을 하게 되신 건데요. 언제쯤 다 모여서 송편 드실 수 있을까요. 추석날.

◆ 양석봉> 우리 가족 몇 안 됩니다.

◇ 김현정 앵커> 북에 계신 형님까지 말입니다.

◆ 양석봉> 아이고, 그러면 대가족이죠. 한 80몇 명 될 겁니다.

◇ 김현정 앵커> 그날이 빨리 와야 될 텐데요. 북까지 이 방송이 들린다, 생각하시고 형님한테, 우리 량희봉 형님께 한말씀 하시죠.

◆ 양석봉> 형님, 어제 마지막으로 헤어졌는데 잘 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몸이나 건강하시고 다음 기회에 정말... 내일은 추석입니다. 가족들과 같이 산소 가서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서 내가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많이 찍어서 보냈는데, 그것도 가족들 잘 만나서 보여주시고요. 저도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가서 이런 사진을 갖다가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말로라도 대신하겠습니다.

◇ 김현정 앵커> 네, 양 선생님, 못다한 말씀 많으시네요. (웃음) 정말 북쪽의 형님, 그 80명 대가족이 얼른 모여서 추석도 새고, 설도 샐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