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구성수 앵커
■ 대담 : 한승헌 변호사
얼마 전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가 임명 전에 사퇴하는 초유의 사퇴가 벌어졌는데요. 몇 달 전 신영철 대법관은 특정 재판 판사 배당에 압력을 가한 것 아니냐는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바로 어제가 제헌절이었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사법권 독립은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뉴스쇼가 마련한 기획 인터뷰 <키워드로 읽는 한국 현대사>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입니다. 1971년에 일어난 1차 사법 파동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사법권 독립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우리나라 인권 변호사의 원조 격으로 지난 참여정부 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한승헌 변호사 만나보겠습니다.
◇ 구성수 앵커> 요사이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 한승헌> 요즘은 연내 자서전 한 권 내려고 원고를 보충하고 있습니다.
◇ 구성수 앵커> 법정에도 가끔 서시나요?
◆ 한승헌> 99년 감사원장 퇴임 이후에 법정에 나가는 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 구성수 앵커> 사법권 독립을 둘러싼 논란의 기원은 71년에 일어난 1차 사법 파동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1차 사법 파동의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 한승헌> 그때는 박정희 대통령 치하입니다. 사법부가 집권자의 비위를 거스르는, 가령 시국사건 무죄 판결이라든가 국가자산법 위헌 판결을 내고 하니까 검찰이 거기에 대한 보복으로 보이는 어떤 조치, 즉 현직 법관 두 사람에 대해서 뇌물죄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죠. 이것을 법원이 기각하니까 재청구를 했어요. 여기에 분개한 서울형사지법의 판사 수십 명이 집단 사표를 내면서 사법권 침해의 실례를 전부 열거해서 폭로했죠. 그리고 전국으로 번져서 많은 법관들이 집단 사표를 내고 항거를 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나 전 국민적인 뜨거운 관심사로 번져서 사상 유례 없는 파동을 일으켰죠.
◇ 구성수 앵커> 판사들이 대규모로 항명한 것은 처음이었죠?
◆ 한승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개별적인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렇게 결집된 행동과 의지를 보인 것은 처음이죠.
◇ 구성수 앵커> 이 이후 사법권 독립은 이뤄졌습니까?
◆ 한승헌> 그것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 무렵 시국사건 법정에 많이 드나든 저로서는 여전히 집권 측은 사법부에 대해서 여러 형태로 간섭을 하고 권리 침해를 하고 독립을 흔들고 사법부가 이것을 막아내지 못하고 후퇴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87년 6월항쟁 다음에 88년에 두 번째 사법파동, 그 다음 93년 김영삼 문민정부 들어선 후에 세 번째 사법파동으로 이어져서 계속 사법권 독립 침해한 것을 비판하고. 그것을 바로잡겠다고 반성도 하고 다짐도 하는 그런 의사가 국민한테 밝혀지는데 그런데 그 후에 변화를 보면요, 그렇게 자랑할 만한 성과는 확인이 안됐습니다.
◇ 구성수 앵커> 상당히 아쉬운 점이 있지만 1차 사법파동의 역사적 의미를 찾는다면 어떤 게 있겠습니까?
◆ 한승헌> 굳이 효과를 가지고 모든 걸 판단할 건 아니죠. 그러나 사법파동은 1, 2, 3차 파동을 보더라도 우선 현직 법관의 신분으로 그렇게 집단적인 행동을 보였다는 것, 그리고 집권자의 사법권 침해 행위에 대해서 정면으로 맞섰다는 의지가 대견스러운 거죠. 그리고 그때마다 반성하는 자세, 내부 개혁을 촉구하는 그런 의지 표명도 그 자체로서는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저로서 안타까운 것은 그렇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사법부 스스로 노력에 의해서 이뤄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 구성수 앵커> 그게 이뤄지지 않으니까 2차 3차 4차 계속 간 게 아니겠습니까. 결국은 최근 신영철 대법관 사건까지 발생하기도 했는데, 신영철 사건은 5차 사법 파동으로 규정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 한승헌> 그것을 몇 차라고 붙이는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 구성수 앵커> 이 사건은 어떻게 보시고 계십니까?
◆ 한승헌> 신영철 대법관 사건은 종래 사법파동과는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종례는 외부로부터의 사법권 침해가 요인이 되고 거기에 대한 항거였는데, 이것은 사법권 내에서 사법 관료 시스템의 남용으로, 말하자면 내부의 내부적인 간섭이 이뤄진 것입니다. 말하자면 종래의 사법권 독립하면 외풍만 생각하는데 이것은 하나의 내풍이죠. 내부에서 이루어진 재판권 간섭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더 심각하고 위험하다고 볼 수 있고, 아직은 그 사태가 완결됐다고는 보기 어려운데, 신대법관 본인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구성수 앵커> 한 변호사님께서는 참여정부 시절에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을 맡으셨죠.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는 어떤 일을 다루는 기관이었나요?
◆ 한승헌>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해방 후 사법 60년 낡은 흐트러진 모든 제도를 리모델링한 겁니다. 그래서 국민을 진실로 위하는 사법, 나아가서 국민이 사법의 객체에서 주체로까지 격상하는 사법, 예컨대 배심 재판이라든가, 그리고 올바른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적인 구조개혁, 이런 걸 주로 말씀드릴 수 있겠죠.
◇ 구성수 앵커> 개혁의 핵심은 뭐였습니까?
◆ 한승헌> 국민에게 내세울 수 있는 건 크게 세 가지라고 봅니다. 첫째가 소위 공판중심주의로 요약될 수 있는 법정 심리에서 종래 수사기관의 조서 위주의 재판이 아니라 법정에 나타난 진술과 증거를 중심으로 판단을 하도록, 국민의 확고하게 보장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하나고요. 두 번째는 배심재판, 국민이 재판의 대상으로만 멈춰있는데 국민이 배심원 자격으로서 재판에 참여하는 이런 배심 재판 시스템을 신설한 것. 그리고 로스쿨 제도, 이 세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고요. 그밖에 많은 것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뤄지지 않은 군사법의 개혁 등은 뜻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 구성수 앵커> 상당한 큰 개혁성과를 일궈냈네요. 천성관 후보자 임명 전에 사퇴를 하는 일이 있었고, 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서도 논란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맡으셨던 입장에서 검찰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한승헌> 글쎄요. 검찰이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면을 스스로 고쳐나가지 못한다면 검찰을 위한 검찰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검찰이니까 검찰 내에 특별 기구를 두고 외부 인사를 참여하도록 한다든가, 아니면 그것이 효과가 없다면 아예 검찰 밖에 위원회나 특별 기루를 둬서 거기서 제도적인, 또는 현실 개혁을 가능케 하는 어떤 안을 창출하는 그런 것도 생각해볼 수 있죠.
◇ 구성수 앵커> 어제가 제헌절이었죠. 서두에 우리나라 인권 변호사의 원조라고 소개해 드렸는데, 한평생 법조인으로서 정의와 인권을 위해서 살아오신 입장에서 우리 사회에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다면 한 말씀 해 주시죠.
◆ 한승헌> 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지만 근자에 들어서 법치주의, 법치주의 하는 것에 대해서 오해와 왜곡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법치주의는 통치권자나 지배자가 국민에 대해서 준법을 훈계를 하는 건 법치주의와 별개입니다. 오히려 국민의 입장에서 통치자인 정권에 대해서 당신네들도 법에 입각해서 통치를 해라, 하고 요구하는 상향적인 명제입니다. 만약에 국민보고 법 지키라고 하는 것이 법치주의라고 한다면 나치 히틀러라든가 일제 때 법치주의가 가장 잘 됐죠. 반대죠.
아래에서 위를 향해서 법을 지키라고 외칠 수 있고 하는 것이 법치주의인데 지금 그 방향이 정반대로 되어 있는 것을 바로잡아야 하고. 최근에 이런저런 현실적인 병폐를 이유로 해서 개헌 얘기가 나오는데 저는 그래요. 헌법에다 탓을 돌리지 말고 작금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헌법 탓이 아니라, 우리나라 권력자들의 체질, 정치풍토를 바로잡는 데서 올바른 헌정을 실현할 수 있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구성수 앵커> 귀담아 들을 말씀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7/18(토) 한승헌 변호사 "법치주의는 권력이 법을 지키는 것"
200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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