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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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토) 정세현 "6.15 선언, 10.4 선언은 7.4남북공동성명에서 출발 "
2009.07.04
조회 240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구성수 앵커
■ 대담 :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오늘 기획 인터뷰 첫시간을 시작합니다. 주말 뉴스쇼가 새로 준비한 키워드로 읽는 한국 현대사. 오늘 함께 생각할 첫 키워드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입니다. 오늘은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37년이 되는 날이죠. 당시 배경과 의미, 이후 남북 관계의 변화 과정, 그리고 오늘날의 남북 관계까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전화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께서 나와 계십니다.

◇ 구성수 앵커> 주말 뉴스쇼가 마련한 기획인터뷰, 키워드로 읽은 한국 현대사 첫 시간에 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세현> 감사합니다. 첫 시간에 출현해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구성수 앵커> 7.4남북공동성명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건가요?

◆ 정세현> 37년 전에 남북 당국간의, 당국 실권자들이 만나서 합의한 7.4공동성명은 7개항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7개항을 다 말씀드릴 필요는 없고, 중요한 것은 소위 조국통일 3대 원칙이라는 데 합의했다는 겁니다. 자주 평화 통일 민족 대단결, 그 다음에 서로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상호 비방 중상 중지를 위해서 노력하고,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서 노력하자 이런 얘기를 했고 교류 협력을 활성화시키자, 한 7,8개월 동안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던 적십자 회담을 빨리 촉진시켜서 이산가족 상봉 사업이 이루어지도록 양쪽의 정부 당국이 밀어주자 하는 얘기를 했었고 중요한 것이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해서 상설 직통 전화를 개설한다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거기에 상당히 큰 의미가 있었고 그것은 그 이후에 살아있죠. 가끔 저쪽에서 받지 않아서 문제지만 그때 설치된 직통 전화는 그 이후에도 계속 활용이 됐었습니다. 나머지 남북 조절 위원회를 만든다 이런 것은 나중에 이론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이 필요해서 오늘은 생략하겠지만 어쨌든 남북 당국이 분단 27,8년 만에 상호 협력을 통해서 긴장을 완화시키고 통일 쪽으로 보조를 맞춰나가자고 합의를 했던 것은 그 당시엔 굉장히 충격적이었죠.

◇ 구성수 앵커> 그렇군요. 이런 합의에 이를 수 있었던 당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당시 국내 사정은 어땠습니까?

◆ 정세현> 국내 사정를 얘기하기 전에 먼저 국제 사정부터 설명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당시에 닉슨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입니다. 69년에 당선돼서 취임하자마자 닉슨 대통령은 월남 전쟁에서 발을 빼는 조치를 시작했고 기타 동맹국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이제 앞으로 미국의 해외 개입은 여러 가지 예산상의 이유 등으로 해서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각자 알아서 해라, 그것이 닉슨 독트린이라고 합니다만 그러면서 동시에 중국과 미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굉장히 노력했습니다. 미중 관계가 급작스럽게 개선되는 조짐을 보였기 때문에 북한도 굉장히 불안해했었습니다. 중국이 북한의 강력한 후원 세력이고 동맹 국가 아니었겠습니까. 이런 중국이 북한과 적대 관계에 있는 미국과 손을 잡으려 하니까 북한도 불안해 했었고 우리도 불안했죠.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과 손을 잡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해외 개입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안보 개입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도 불안해 했었고, 그래서 당사자들끼리 서로 침략, 내지는 공격 의지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게다가 국내 정치적으로 북한 정치적으로 66년쯤 되면 개인 우상화가 굉장히 완성 단계에 이릅니다, 김일성에 대한. 한 5,6년 동안 개인 우상화가 심화되면서 사실은 후기 체제까지 준비하고 있었다고 봐야죠. 나중에 보니까 그랬으니까. 우리 내부적으로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516 군사 쿠테타로 해서 집권한 지 10여년 됐는데 저항도 있었지만 권력이 점점 강화되고 있었고 그 권력을 강화해서 집권을 연장할 필요가 있었던 국내 사정이 맞아 떨어져 가지고 남북간의 통일 문제를 국내 정치의 수단으로 쓰는 필요가 맞아떨어져서 이런 합의가 나온 측면도 있습니다.

◇ 구성수 앵커> 당시 비화 같은 게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 정세현> 그때 위험 지역에 들어갔다고 봐야하는데요.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정보부장이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 수상을 만나서 합의를 한 것이 7.4남북공동성명인데 그 후에 나중에 어떻게 될 지 몰라서 청산가리를 가지고 갔었다, 여차 하면 그 자리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더 이상 비밀을 털어놓지 않기 위해서..그런 얘기가 있었죠.

◇ 구성수 앵커> 7.4공동성명에는 당시 박정희 정권의 정략적 의도가 숨어있어서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었던 거 아닌가 이런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7.4남북공동성명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 정세현> 그렇죠. 첫째, 남북이 조국 통일 3대 원칙에 합의를 했다는 게 굉장히 큽니다. 나중에 92년에 발효된 기본 합의서. 또는 기본 합의서를 당시 사정에 맞게 발전시킨 615공동선언, 10.4선언 전부 이어지는 기본 출발점이 됩니다. 그러니까 7.4공동성명에서의 몇 가지 원칙은 92년에 기본 합의서, 2005년의 615공동선언, 2007년의 10.4선언의 정신에 반영이 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고, 대체로 긴장 완화를 위해서 당국이 노력한다,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쓸 수 있는 대책이랄까 방법은 다 쓴다는 그런 합의들이 7.4선언 이후에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역사적 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7.4공동성명이 갖는 의미가 있죠.

◇ 구성수 앵커> 오늘의 문제를 생각해보겠습니다. 7.4공동성명에서 오늘의 우리가 배워야 될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라고 보십니까?

◆ 정세현> 7.4성명이 나온 배경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만은 정세 변화를 감안해서 남북 당국이 긴장을 완화시키고 교류 협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약속한 것이 7.4성명 아닙니까? 7.4성명이 오늘에 갖는 의미는 정세를 충분히 감안해서 국가의 민족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는 것이 결국 실용적인 외교가 될 수 있고 또 통일의 시간을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에 대해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 구성수 앵커> 7.4성명에서 그런 것을 배운다면 앞으로 남북 관계를 어떻게 자리매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 정세현> 지금 우리 이명박 정부는 실용적인 접근을 한다, 실용주의에 의해서 남북 관계를 풀어간다고 얘기를 하는데 실용주의라고 하면서도 북한의 선 변화, 북한의 자세 변화를 먼저 촉구하는 그런 70년대 접근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7.4공동성명이 70년대 나왔지만 여러 가지 좋은 약속을 해 놓고도 언제든지 상대방의 정책 변화, 태도 변화를 전제 조건으로 하면서 북한이 만약 이렇게 한다면 우리가 이렇게 한다는 조건부였었는데 그렇게 해서 70년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 구성수 앵커> 말씀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