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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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목) 발레리노 김용걸 "남성의 발레, 알고보면 여성보다 더 매력적"
2009.07.09
조회 275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복귀하는 발레리노 김용걸

9년 전 동양인에게는 상당히 보수적이나 곳으로 알려진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동양인 최초로 입단을 해서 큰 화제가 됐던 남자무용수가 있습니다. 발레리노 김용걸 씨를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당시 27살, 발레리노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로 입단을 했습니다. 입단한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었는데, 최고의 발레리노인 ‘쉬제’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이제 파리생활을 접고 엊그제 귀국을 했다고 해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교수로 돌아온 세계적인 발레리노 김용걸 씨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연결해보겠습니다.

◇ 김현정 앵커> 김용걸 씨, 안녕하세요?

◆ 김용걸>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현정 앵커> 이제는 완전히 귀국을 하신 건가요?

◆ 김용걸> 네, 그렇게 됐습니다.

◇ 김현정 앵커> 9년 전에 큰 꿈을 가지고 떠났을 때, 그 기분하고, 이룰 만큼 이루고 금의환향한 그 기분하고 어떻게 다릅니까?

◆ 김용걸> 별 차이가 없네요. (웃음)

◇ 김현정 앵커> (웃음) 차이가 없을까요?

◆ 김용걸> 왜냐하면 다시 돌아오기로 결정한 자체가 전 또 큰 꿈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때 큰 다짐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래서 긴장되는 마음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 김현정 앵커> 지금의 큰 꿈은 어떤 걸까요?

◆ 김용걸> 아무래도 제가 파리에서 보고 느낀 것들, 배운 것들을 발레를 좀 더 해외에 알릴 수 있고, 올릴 수 있는 그러한 큰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 김현정 앵커> 후배들에게 그 세계무대에서 배운 어떤 비법들을 전수해주고, 제2의 김용걸, 제3의 김용걸을 만들겠다는 이런 꿈이 또 있으신 거죠?

◆ 김용걸> 저보다 훨씬 나은 무용수를 만들어내야죠. (웃음)

◇ 김현정 앵커> (웃음) 그렇습니까? 지금은 금의환향해서 웃으면서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만 파리로 떠날 때, 9년 전에 이미 성공이 예정되어 있었던 건 아니었죠?

◆ 김용걸> 그렇죠. 아무래도 한창 왕성하게 할 때였었고, 다른 장소를 옮겨서 하는 것보다 그 위치에서 계속해 나가는 게 나은 나이였었죠.

◇ 김현정 앵커> 뭐가 그렇게 도전을 부추기던가요? (웃음)

◆ 김용걸> 우선 발레가 외국 춤이고요. 제가 한국에서 아무리 잘 하고, 많은 걸 본다하더라도, 그 외국 춤을 추는 그 사람들과 같이 땀을 흘려보고, 같이 작업을 해 보지 않은 이상은 제가 제대로 된 발레를 느낄 수 없다는 걸 느꼈어요. 그러면서 아마 제 마음 한편에 채울 수 없는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 김현정 앵커> 그런데 단원 중에 외국인이 5%, 100명이라면 그 중에 겨우 5명만 외국인인 그 정도로 보수적인 발레단인데, 말도 안 통하고 얼마나 고생 많이 하셨어요? (웃음)

◆ 김용걸> (웃음) 외국이라는 곳이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그 정도 각오는 했었고요.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대학생활 4년을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자치를 했었거든요.

◇ 김현정 앵커> 아, 원래 고향은 어디세요?

◆ 김용걸> 부산이에요. 아마 그런 것도 도움이 굉장히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 김현정 앵커> 말은 어떻게 하셨어요? 프랑스어.

◆ 김용걸> 가서 했죠. (웃음)

◇ 김현정 앵커> 그냥 부딪히면서... (웃음)

◆ 김용걸> 직장생활은 크게 힘들지 않았어요. 어차피 발레는 용어로 다 해 나가니까... 그런데 일반생활, 생계를 위해선 따로 배워야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렸죠.

◇ 김현정 앵커> 가장 기억에 남는 고생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 김용걸> 아무래도 무용수한테는 제일 큰 벽이 부상이거든요. 부상을 당해서 자꾸만 앞으로 나가고, 그런 나가는 모습들을 고국에 계신 분들이나 이런 분들한테 전해드리고 싶은데, 부상으로 인해서 다시 뒷걸음을 쳐야 한다는 그런 압박감, 절망감 때문에... 한번 심하게 다쳐서 4개월 이상을 스톱을 해봤었고,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저한텐 무용할 때 접할 수 없었던 다른 교훈, 파리에서 느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부상이 주는 장점도 많았던 것 같아요.

◇ 김현정 앵커> 너무 긍정적이시네요. 이제 보니까... (웃음) ‘그 성공의 이유가 그런 데서 오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무용수인 여자 친구가 있었잖아요? 떠나실 때...

◆ 김용걸> 네, 한국 전통무용을 하는, 지금은 아내고요.

◇ 김현정 앵커> 긴긴 세월 얼마나 보고 싶으셨어요?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 김용걸> 너무너무 감사하죠. 와이프한테... 저야 어차피 목표를 가지고 떠나는 사람이지만,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고 많이 힘들었는데... 중간에 고비도 있었고, 하지만 제 와이프 덕분에 이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 김현정 앵커> 오늘 부인께서 꼭 들으셔야 될 텐데... (웃음) 사실은 이 발레라는 공연 자체도 아직 좀 낯설고요. 특히 남자 발레리나, 발레리노라고 하면 “그게 뭐야?”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발레리노가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되나요?

◆ 김용걸> 한 30, 40명 되지 않을까요? 왕성하게 컴퍼니에서 활동하는 무용수가 아마 그 정도일 것 같습니다.

◇ 김현정 앵커> 우리나라에서 발레리노로 산다는 거 어떤 걸까요?

◆ 김용걸> 외롭죠.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은 발레리나하면 여자, 토슈즈에서 나오는 그런 모습... 하지만 그 뒤에서 묵묵히 무용수들을 받치고 들고 돌려주는 외로운 남자 무용수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자가 더 매력적이죠? (웃음)

◇ 김현정 앵커> 그래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웃음) 김용걸 씨 같은 스타들이 나서서 발레대중화에 앞장서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발레를 아직도 낯설어하시는 분들에게 ‘이렇게 즐기십시오. ’ 라고 한 가지 팁를 주신다면 ?

◆ 김용걸> 네, 제가 파리에 있었을 때, 오페라 하는 분이 저에게 “왜 오페라를 보지 않느냐? ” 고 말씀하시기에 제가 “모르니까, 가서 이해를 못할까봐”라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나는데, 그래서 한번 보러갔었는데, 정말 마음 비우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니까 굉장히 괜찮은 장르였어요. 오페라가... 아마 똑같은 것 같아요. 저는 발레를 어려운 예술이라고 생각하시고,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앉아있으면 지루할 것 같.’ 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마음 비우시고 공연하기 30분전에 오셔서 프로그램만 읽어보시고 공연을 보셔서 정말 좋은 시간 되실걸 것 같아요.

◇ 김현정 앵커> 갑자기 궁금해지는데요? 발레하는 분들도 디스코니, 트위스트니, 이런 힙합이니, 대중적인 춤도 추세요.?

◆ 김용걸> 젊은 친구들은 공연 끝나면 끝났다고 추곤 하는데, 저는 힘들어서... (웃음)

◇ 김현정 앵커> (웃음) 갑자기 엉뚱한 궁금증이었습니다. 오는 11일, 12일, 오는 11일, 12일에 서울 역삼동에서 첫 복귀무대, 귀국무대도 가지시네요. 그것도 저희가 기대를 할 테고요. 이제는 스승으로서 후배들 많이 좀 길러내 주십시오.

◆ 김용걸> 네, 꼭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현정 앵커>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고맙습니다.
발레리노죠. 귀국한 김용걸 씨 만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