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사진작가 이상벽
1935년 코닥에서 ‘코닥크롬’ 이라는 필름을 만들었을 때.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였습니다. 얼마나 인기가 좋았던지 가수 폴 사이먼이 ‘코닥크롬’ 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고요. 1985년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표지사진으로 필름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필름의 대명사, 코닥크롬이 7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그러죠. 디지털카메라가 널리 쓰이면서 아예 필름 생산을 중단한다는 것인데요.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필름 사진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볼까 합니다. 필름사진 예찬론자세요. 방송인에서 전문사진작가로 변신한 이상벽 씨 만나보겠습니다.
◇ 김현정 앵커> 안녕하세요? 이 선생님.
◆ 이상벽> 안녕하세요?
◇ 김현정 앵커> 우리에게는 아직도 푸근한 방송진행자로 익숙한데 아예 전문사진작가로 전업하신 거예요?
◆ 이상벽> 네, 사람들이 그럽니다. ‘이상벽이가 방송이 시들해지니까 하다못해 사진이라도 하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원래 저는 미술대학에서 사진을 저 나름대로 전공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원래하고 싶었던 것을 유턴을 한 거였는데, 어쨌거나 저는 끝까지 디지털시대라고 그러지만 필름 들고 아날로그에 빠져있습니다.
◇ 김현정 앵커> 오늘도 어디 사진 찍으러 가셨다면서요?
◆ 이상벽> 네, 당진에 있는 ‘도미도’라는 곳인데.
◇ 김현정 앵커> 섬에 계시는군요?
◆ 이상벽> 네, 이 근처에 요즘 이른 아침에 안개가 많이 끼는 철이라서 이런 저런 것들을 저 나름대로 만들어보려고 나와있습니다.
◇ 김현정 앵커> 그럼 지금도 손에 들고 있는 사진기는 수동필름카메라?
◆ 이상벽> 그렇습니다. (웃음)
◇ 김현정 앵커> (웃음) 요즘 디지털 카메라도 화소가 굉장히 좋아서 전문가들도 많이 쓴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왜 이상벽 씨는 필름카메라만 고집을 하시는 건가요?
◆ 이상벽> 저는 신문기자 때도 FM2라고 해서 지금 단종이 됐지만, 그런 카메라를 늘상 들고 다녔던, 취재기자였지만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그런 습관 때문에, 그냥 저한테 익숙해서 쓰고 있는 중인데, 실제 써 보니까, 사진하시는 분들 잘 아시겠지만 언젠가는 디지털로 가겠죠. 그러나 지금 2,000만 화소, 화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진이 가지는 진지함, 그러니까 디지털이라는 것은 그때그때 속보성, 기록이라든가 이런 것들에서는 대단히 많이 진화된 카메라로 인식이 되어있어요. 그러나 예술성 차원에서 생각을 해보면, 진지함이라할지 사진을 만드는 나름의 즐거움이라할지 이런 것들이 아직은 별로 못 따라 와요.
◇ 김현정 앵커> 인화하는 과정에서의 설레임, 내가 찍었는데 이게 잘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를 바로 확인이 안 되니까 그동안의 긴장.
◆ 이상벽> 사진을 찍고 돌아와서 이게 다시 현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머릿 속에서 수없는 셔터를 누르거든요. 그러면서 결과물을 놓고 내가 생각했던 것 하고 얼마나 차이가 있고, 이런 것에 관한 계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데, 디지털은 그때 찍고 아니면 찍고 지우고, 이런 식이다보니까 뭔가 사진을 만드는 사람 나름의, 그러니까 '사진은 순간을 훔치는 작업이다' 이게 아니고, '과정도 즐기는 작업'이거든요. 그런데 그 과정 자체가 생략이 되어있어서 참 싱겁기도 하고, ‘이게 내가 지금 만든 게 만들어진 건가?’ 이런... 좀 생경해요. 늘 필름을 쓰던 사람으로서는... 부담스럽기는 합니다. 지난번에 기름값 오를 때 벌써 필름이 한 롤에 36 정도 나오는 게 8,000원대까지 올라와있거든요.
◇ 김현정 앵커> 필름 생산 중단하면 가격이 더 오를텐데.
◆ 이상벽> 그렇죠. 필름이 현상소를 다녀서 제 손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롤에 한 만원 들어가요. 그러면 일반적으로 사진 작업하는 사람들은 하루 10롤 정도는 쓰거든요. 한 10만원이 휙휙 날라가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부담이 크지요. 작업을 해서 전시를 하면 전시해서 매니어들한테 사진이 팔려나가고, 그것이 작업비로 또 회수가 되고,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될 사람이 상위 소수점 미만에 해당하는 사람들이거든요.
◇ 김현정 앵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에 대한 진지함, 그 과정의 즐거움을 위해서 사실은 지금까지도 필름을 쓰고 계신분인데, 디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동네목욕탕 사라지는 것이 아쉽고, 공중전화박스 사라지는 것이 아쉬운 것처럼 필름사진의 추억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이렇게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진 한 장의 애틋함 같은 게 있었잖아요. 요즘은 사진으로 뽑지도 않아요. 종이로... 그냥 파일로 가지고 있는데 그런 게 있었죠. 종이 한 장의 애틋함.
◆ 이상벽> '사진인심'이라는 게 있었거든요. 사진을 찍으면 그냥 머릿수대로 인하를 해서 사진 안에 등장한 사람들한테 나누어 주고, 그 다음에 요즘은 '달력사진'이라고 하면 우습게 보이지만, 멋진 풍경사진이 하나 나오면 집에다가 그럴 듯하게 액자를 해서 걸어두기도 하고, 그랬던 추억.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서 포토샵이라고 해서 이리저리 만지고 떼어내고 덧붙이고 이런 식이 되어있는 것도 사진의 진실한 존재가 자꾸 소멸되는 것 같은, 사진(寫眞)이어야 되는데, 그 진(眞)이 괴멸되는 것 같은 아쉬움이 느껴져요. 사진은 사진 나름의 회화하고 또한 그 나름의 존재이유가 있어야 되는데 요즘 막 만들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안 그래도 해외부수매체, 장르처럼 자꾸 인식이 되고 있는 게 가슴 아픈데, 스스로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그래서 사진 공모전 같은 데에서 우스꽝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나잖아요? 실제와는 다른 만들어내는 그런 사진들을 보면, 저는 '이것은 사진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그래서 더더욱 필름이 사진하고는 아주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해나가야 한다는 필름 한 토막에 대한 추억, 이전에 본질적인 측면에서 ‘이건 사수되어야 한다’ 저는 아직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저도 이제 백기를 들어야 할 모양입니다. (웃음)
◇ 김현정 앵커> 필름 값이 너무 비싸서... (웃음) 알겠습니다. 이상벽 선생님. 지금 청취자들이 ‘오랜만에 목소리, 너무 반갑습니다. 맛깔 나는 말씀 아직도 여전하시네요.' 이런 문자들 보내주고 계시는데요. 사진 얘기하시니까 방송할 때 보다 더 흥분하세요. (웃음) 오늘 아침에 아주 반가운 목소리였습니다. 당진에서 사진 잘 찍으시고요.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 이상벽> 네, 고맙습니다.
◇ 김현정 앵커> 사진작가 이상벽 씨 만나봤습니다.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6/24(수) 사진작가 이상벽 "필름 사라지면,사진을 만드는 진지함도 사라져"
200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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