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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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월) 올해의 장애인상! 이상재 시각장애 클라리넷 연주자(하트-하트 오케스트라)
2009.04.20
조회 242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시각장애 클라리넷 연주자 이상재

‘장애인을 구경거리로 삼으면서 돕지 않는 우리 사회는 아직 멀었다’ 오늘 장애인의 날인데요. 우리 사회를 향해서 이렇게 쓴 소리를 한 장애인 한 분이 있습니다. 시각장애1급이지만 클라리넷 연주자로 또 대학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는 이상재 교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상재 교수는 시각장애음악인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데요. 오늘 올해의 장애인상을 받는 영광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화재의 인터뷰에서 이상재 교수 직접 만나보도록 하죠. 하트하트체인보우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나사렛대학의 이상재 교수입니다.

◇ 김현정 / 진행
우선 축하드립니다.

◆ 이상재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 진행
오늘 올해의 장애인상을 조금 있다가 수상하게 되시는데 소감부터 한 말씀해주시죠.

◆ 이상재
우선 너무 기쁘고요. 가슴 벅차게 참 정말 기쁘고. 그동안 포기할까 말까 이렇게 좌절하고 힘들었던 생각들도 많이 나고요. 그동안 지금까지 수고했다고 격려해 주시는 거 같고, 잘해왔다고 또 인정해 주시는 거 같아서 큰 힘이 되고 위안이 되고 그렇습니다.

◇ 김현정 / 진행
이상재 교수가 어떤 분이신가 제가 조금 더 소개를 해 드린다면 7살 때 교통사고로 시각을 잃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3대 음악대학인 피바디음대에서 클라리넷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 오셨구요. 지금은 나사렛대학 교수면서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서 활동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감독으로.

◆ 이상재
그런데 저희 오케스트라는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이기도 하지만 또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그런 화합과 나눔의 오케스트라다’ 제가 이렇게 늘 얘기를 하고 다니는데 그렇게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 진행
사실 이상재 교수님은 이 오케스트라 활동뿐만 아니라 국내 악보를 점자로 옮기는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이 거의 다 이상재 교수 제자들이라면서요?

◆ 이상재
네. 그건 음악점자, 악보점역이라고 하는데요, 저희는.

◇ 김현정 / 진행
점역사 라는 게 따로 있는 거군요?

◆ 이상재
네네. 점역교정사는 직업이 있고요. 그런데 제가 98년부터 점역에 관심이 있고 점역을 직업으로 하는 분들을 가르쳐서 그 분들이 시험을 치르고 자격증을 받을 수 있도록. 지금까지 10여명 배출이 돼서 지금 복지관이나 학교에서 점자 악보를 만드는 그런 귀한 활동을 하고 계세요.

◇ 김현정 / 진행
이 얘기를 거꾸로 하자면 이 교수께서 처음 음악할 때는 국내에서 점자악보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잖아요?

◆ 이상재
네네. 처음에 제가 중고등학교 할 때는요 비장애인 선생님께서 악보를 그냥 불러주시면 ‘레, 파, 솔’ 불러주시면서 다 받아 적어서, 점자로. 제가 직접 들리는 대로 받아 적어서 그것을 따로 집에서 외워서 그 다음 주에 레슨을 받거나 교습을 받거나 이렇게 했고요. 지금은 제작을 다 해주시죠.

◇ 김현정 / 진행
그렇군요. 그게 보통일이 아니잖아요. 사실은 이게 단순한 멜로디면 상관없지만 전공하시는 분, 박사학위 따고 이런 분들은 보통 복잡한 악보가 아니던데요.

◆ 이상재
네네, 맞습니다.

◇ 김현정 / 진행
그게 참 음악이라는 게요. 자격증 한번 따면 뚝딱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연습하고 새 곡에 도전하고 이래야 되는 건데 좌절의 순간이 적지 않으셨을 거 같아요. 어떻습니까?

◆ 이상재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역시 대학교 입학할 때랑 그 다음에 피바디 음대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가장 힘들었어요.

◇ 김현정 / 진행
어떤 점이?

◆ 이상재
대학입학할 당시에는 장애인 특례입학이 없을 때라서 제가 86년에 대학에 들어갔는데요. 그래서 정말 서류자체를 받아주기를 거부하는 곳이 대여섯 곳이 됐어요. 그래서 원서마감 5분전에 중앙대학교에 원서를 겨우 넣고 다행이 합격이 되어서 학교를 들어가게 됐는데 그 때 참 춥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고요.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자료들이 너무 많고 어렵고 그래서 거의 한 6개월 간 하루에 한 2시간? 2시간 반 정도 밖에 못 자고 논문을 썼더니 나중에는 귀도 안 들리고 몸이 굉장히 이상해지더라고요.

◇ 김현정 / 진행
그게 왜 안 그렇겠습니까?

◆ 이상재
예. 그 때가 너무 어려웠는데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던 과정을 거쳐서 한국에 돌아왔는데도 시간강사 자리 하나 구하기도 너무 어렵고. 그런데 어쨌든 98년부터 11년 동안 쓰러지지 않고 열심히 시간강사 생활을 해 온 것이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 김현정 / 진행
지금 뭐 한 1분 동안 아주 간단하게 말씀하셨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좌절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을까 그 상상이 사실은 잘 안 됩니다. 잘 안 되는데요. 그 순간마다 그 어려웠던 순간마다 우리 이상재 교수님을 일으켜 세웠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요?

◆ 이상재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을 선택을 했기 때문에.

◇ 김현정 / 진행
반대하셨어요? 부모님도?

◆ 이상재
네. 다 반대하셨어요. 부모님, 선생님! 한 분도 음악하는 걸 찬성해 준 분이 없는데, 모두가 반대하는 음악을 스스로 선택해서 시작을 했기 때문에 이 일을 끝까지 해 내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고. 앞으로 인생을 잘 살아낼 수가 없을 거 같다 라는 위기의식을 느꼈어요. 그래서 자신에 대한 애착, 자신이 선택한 꿈에 대한 책임감 이런 것 때문에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 김현정 / 진행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장애인을 구경거리로 삼으면서 돕지는 않는 우리 사회, 아직 멀었다’ 이런 쓴소리할셨더라고요. 사실 우리 사회에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라는 게 좀 나아졌다고 저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렇지만은 않은가 봐요?

◆ 이상재
물론 2-30년 전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보다 상대적으로 생각하면 많이 나아졌어요. 그런데 그 때에 노동환경이나 그 때의 인권문제가 지금과 비교할 때나 그때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지금을 비교할 때는 장애인 부분이 훨씬 발전을 못한 거 같고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다른 부분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거 같아요.

◇ 김현정 / 진행
그냥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것도 아직도 따갑습니까?

◆ 이상재
가장 큰 문제는 장애를 그 부분의 일부의 장애로만 생각하는 불편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전체적인 능력, 한 사람의 어떤 그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에 대한 평가의 장애가 늘 포함된다 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 김현정 / 진행
‘이 사람은 저 부분이 저런데 이걸 뭐 할 수 있겠어?’ 사실 그 불편한 것과 상관이 없는 분야인데 일단은 꺼려하는 것!

◆ 이상재
네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 진행
그러네요. 교수님! 사실은 이게 뭐 잠깐 10분 인터뷰로 들을 수 있는 인생이야기는 아닌 거 같아요. 오늘 장애인 날을 맞아서 상을 받게 돼셨는데 다시 한 번 축하를 드리면서 다시 한 번 나중에 긴 시간에 모셔서 말씀을 좀 듣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이상재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 진행
오늘 장애인의 날 ‘올해 장애인 상’을 수상하게 돼신 분입니다. 나사렛 대학의 이상재 교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