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국적회복 힘쓴 며느리 이덕남 여사
“내가 죽거든 시체가 왜놈들 발길에 채이지 않도록 화장을 해서 재를 바다에 띄워라.” 항일 독립운동의 이념적 지도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유언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100년 만에 호적을 갖게 됐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일제가 만든 호적은 싫다면서 이 분이 거부하다가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이 탄생하면서 그 호적, 일제가 만든 호적을 그대로 받아서 대한민국 국적으로 돌리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전에 돌아가신 신채호 선생 같은 분은 이 명단에서 빠지게 된 겁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독립운동을 하신 분인데도 법적으로는 세상에 존재한 흔적이 없는 그런 사람이 돼 버린 거죠. 이렇게 되니까 그 후손들도 후손임을 입증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동안.. 그런데 이번에 62명의 독립운동가가 호적을 새로 갖게 됐습니다.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세요. 이덕남 여사 연결해 보도록 하죠.
◇ 김현정 / 진행
우선 축하드립니다.
◆ 이덕남
감사합니다.
◇ 김현정 / 진행
호적 하나 얻는데 100년 걸렸네요. 소감이 어떠십니까?
◆ 이덕남
뭐 소감이라는 건 내가 66살인데 내가 죽기 전에 될 것 같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되어 달라고 정말로 소원하던 일이 되었으니까 기쁘기는 하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매우 많이 남습니다.
◇ 김현정 / 진행
어떤 아쉬움이 남으세요?
◆ 이덕남
호적은 본래 한 가정의 계보를 정리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제 순국선열이 되신 이런 어른 분들은 모두가 지금으로부터 시작입니다. 그 어른으로부터. 무슨 얘기냐 하면.
◇ 김현정 / 진행
그 앞은 정리가 안 되는?
◆ 이덕남
네. 그 앞 쪽에 선대는 이제 또 절단이 나고 지금 이제 창설하는 거니까요.
◇ 김현정 / 진행
그렇게 되는 군요.
◆ 이덕남
네.
◇ 김현정 / 진행
그런 면에서 아쉬움도 생기고. 신채호 선생뿐만 아니라 이번에 62분이 이렇게 호적을 얻으셨다고 하던데 어떤 분들이 포함되신 건가요?
◆ 이덕남
62분 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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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 진행
더 계신가요?
◆ 이덕남
그럼요. 전부 하면 제 생각으로는 500분 정도 된다고 생각되는데요.
◇ 김현정 / 진행
그런데 이번에 다 올라가신 건 아니죠? 이번에는 62분만.. 그 중에서?
◆ 이덕남
네. 이제 후손이 없거나 이거는 세수가 한 4-5대로 넘어가 버렸기 때문에 후손이 없는 분들도 많고. 또 있으나 마나 한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지금 그 분들만 되는 것 같고요. 이 분들은 전부 말하자면 일제라는 그 악독한 적들하고 싸우다가 돌아가신 순국선열 분들이시죠.
◇ 김현정 / 진행
그럼요. 그러면 그동안에 신채호 선생의 후손 분들은 어느 호적에 올라 있으셨던 거예요?
◆ 이덕남
제 남편은 그러니까 외가 호적. 1933년에 우리 시어머니가 이제 아들을 학교를 보내려고 외가 호적에 했는데 요새 말로는 미혼모의 아들이었죠.
◇ 김현정 / 진행
아, 그렇게 된 셈이었군요. 그래서 이렇게는 안 되겠다. 아버지 호적을 우리가 찾아와야겠다 결심을 하신 건데, 처음 결심을 하신 게 언제인가요?
◆ 이덕남
처음 결심한 거는.. 저 이전에 애 아버지는 1960년서부터 아마 이걸 소원을 하셨던 것 같고. 살아생전에 거의 한이었습니다.
◇ 김현정 / 진행
그 말씀은 남편 분은 이제 돌아가셨다는 말씀이세요?
◆ 이덕남
네. 91년 5월에 돌아가셨거든요.
◇ 김현정 / 진행
91년에... 참 아쉬움을 남긴 채 결국은 돌아가셨네요.
◆ 이덕남
그리고 이제 돌아가신 이후에 제가 또 다시 이어서 지금 한 15년 해 온 거죠.
◇ 김현정 / 진행
15년째 앞장서서, 말하자면 이제 운동을 해 오신 거예요. 우리 좀 해 달라 호소하고 다니시고. 여기저기. 그런데 잘 이해가 안 되는게요. 선생님. 신채호 선생님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데 그렇게도 호적 하나 만드는 게 어렵던가요?
◆ 이덕남
(웃음) 어려운 정도입니까.
◇ 김현정 / 진행
왜 그렇게 안 된다고 하나요?
◆ 이덕남
제가 너무.. 해 보니까 속상했던 점이 있잖아요. 생존자로 위주로 호적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자면 돌아가신 분이기 때문에 안 된다. 그게 큰 이유였었고요. 그 다음에 어떻게 지금 한글을 읽는 초등학생들서부터 아는데 그런 분을 갔다가 어떻게 호적을 안 해 줄 수 있느냐. 거기에 대해서 제가 엄청 흥분하고 속이 많이 상했었어요.
◇ 김현정 / 진행
왜 안 그러셨겠습니까. 이제 호적이라고 우리가 하지만 사실은 이게 국적을 얻는 것 아니겠습니까. 신채호 선생이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 국적을 돌아가신 후에라도 한 번 얻어보겠다는 건데 그게 그렇게 안 되었던 거예요.
◆ 이덕남
안 되죠. 그리고 지금 말씀하시니까 얘기지. 국적은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조선 사람으로 어머니, 아버지로 태어난 사람은 다 국적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호적은 사망자로 이주해서 했기 때문에 못 해 준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제가 너무 속상한 거는 그러면 신채호 선생 이 분도 조선 사람을 어머니, 아버지로 태어난 분이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국적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국적이 내가 명기돼 있는 기록되어 져있는 국적법이 어디 따로 있느냐. 그것이 바로 호적인데. 그런 식으로 궤변을 떨고 말이죠.
◇ 김현정 / 진행
알겠습니다. 많이 지금 화가 나셨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때 생각하면 화가 나시는 건데, 사실은 히딩크 감독 같은 분들은 시민증도 내 주고. 물론 그분도 그럴만한 일이었지만 그에 비해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법적으로 인정받기가 그렇게 어려운가..그때 보면서 답답하셨겠어요?
◆ 이덕남
울분이 터졌죠. 남의 나라 사람들도 우리나라를 위해서 공헌이 있으면 시민권도 해 주면서 세상에 자기 나라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분들이잖아요. 이런 어른들을 갔다가 호적도 국적도 안 해주면 그런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 김현정 / 진행
네. 그런 생각이 드네요.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일을 하세요? 넉넉하게 어떻게 우리 후손 분들 살고 계시는가 궁금해서요.
◆ 이덕남
넉넉할 턱이 없죠. 사람들은 누구나 남김으로부터 사는 거예요. 선대서부터. 그래야 되는데 우리, 내 남편의 경우에는 뭐 아버지가 호적이 없는 분이니까 태어날 때서부터 홀로서기로 살아야 했으니까.
◇ 김현정 / 진행
미혼모의 자식이다 손가락질도 받고.
◆ 이덕남
애 아버지가 생존 시에 뭐라고 얘기를 했는가 하면 “얻어먹는 거는 똥보다 더 더러운데 아버지 없는 그러니까 홀애미 새끼라고 조롱받을 때는 그거보다 더 더러웠다” 고..
◇ 김현정 / 진행
그런 말씀까지. 지금도 중국, 러시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자손 분들이 많으세요. 이 분들에 대한 예우 우리가 이번 기회에 한 번 다시 생각해야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3/20(금) "히딩크도 시민증 주던데 신채호 국적은 100년 만에..."
200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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