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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월) 조정래 소설가 "다들 한걸음씩 뒤로 물러서는 여유가 필요.."
2009.03.02
조회 252
1989년 전10권을 완간한 이후 곧 200쇄 돌파를 앞둔 책이 있습니다. 등장인물만 400여 명, 해방정국 이념 갈등과 분단의 아픔을 그려낸 작가는 국가보완법 위반으로 고발됐다가 11년 만에 무혐의 처리를 받는 아픔도 겪었죠. 무슨 책인지 아시겠습니까? 조정래씨의 <태백산맥> 이야기입니다.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태백산맥> 200쇄 돌파를 앞두고 있는 문인 조정래 선생님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 민경중 / 진행
<태백산맥>을 모두 읽었을 때 가슴이 벅차오르던 그 학창시절의 모습이 갑자기기 기억이 떠오르는데 말이죠. 먼저 축하드립니다. 벌써 200쇄 돌파를 앞두고 있군요. 오늘 특별판도 출간할 예정이고 기념식도 갖는다면서요?
◆ 조정래
오늘 12시에 기자간담회를 하도록 했습니다.
◇ 민경중 / 진행
그렇군요. 어떻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지난 2007년에 <아리랑> 100쇄, 이번에는 <태백산맥> 200쇄라는 진기록을 갖게 되셨는데 200쇄라는 것이 말이 200쇄지 하나의 책을 200번이나 인쇄했다는 거잖아요? 그 의미가 클 것 같아요? 어떻게 보시는 겁니까?
◆ 조정래
지금 저로서는 이제 작가로서는 정말 누리기 어려운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데요. 이것은 오로지 독자 여러분들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 민경중 / 진행
여러 가지로 <태백산맥>이 1983년 연재를 시작해서 1989년에 완간이 됐었는데 그렇다면 20년 동안 연간 10만부씩이 팔렸다는 거고 이렇게 긴 대하소설이 이념 분단을 다루는 소설이었었는데 여전이 이 시대에도 통하는 이유 어떻게 보시는 겁니까?
◆ 조정래
이게 통일을 염원하면서 쓴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분단된 상황이 계속되는 한 이 소설을 읽으면 분단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에 그 생명력이 유지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 민경중 / 진행
작가 개인에게는 아픔도 있으셨잖아요? <태백산맥>으로 국가보완법 위반으로 고발되었다가 11년 만에 무혐의 처분을 받으셨고, 글쓰는 작가로서 문학 작품에 쇠고랑을 채우는 현실 당시 심정이 어떠하셨습니까?
◆ 조정래
작가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고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이 사회적 책무이기도 한데요 그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우리 분단 상황이 반공주의로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인데, 그 죄를 고발한 분들이 625 참전 용사, 월남 참전 용사 해서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입으신 분들입니다. 그 분들에게 문학적인 어떤 지식, 또는 지성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제 스스로가 상처를 받고 아픔을 받으면서도 그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갖지 않도록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 민경중 / 진행
그렇군요. 익명의 사람들에게 공갈이나 협박도 참 많이 받으셨다 이런 뒷 얘기도 들었어요?
◆ 조정래
<태백산맥> 1부가 1986년에 간행이 되어서 87년을 넘어오면서 사회적인 반향이 커지면서 저에게 협박, 공갈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15년을 시달렸죠. 그것이 많이 두렵고 힘들었지만 분단 시대를 사는 작가로서 당연히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려고 애썼습니다.
◇ 민경중 / 진행
요즘은 뉴스를 하다 보면 휴대폰 문자들이 실시간으로 들어오거든요. 지금 이 시간에도 들어오는데 3220님은 이런 의견을 주셨는데요. <아리랑>을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언제나 멋진 소설 부탁드릴게요. 건강하시고요. 이런 독자들의 사랑, 행복하시겠어요?
◆ 조정래
(웃음) 저는 그러니까 한국 문학 100년 사에서 책이 제일 많이 팔린 작가라는데 그만큼 사랑을 많이 받은 거죠. 고맙고 더 열심히 쓰려는 노력 하는 것으로써 보답하는게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 민경중 / 진행
<태백산맥>에 나온 이데올로기가 21세기까지 지긋지긋하게 이어져 오는 현 시대의 아픔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요즘에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 하거나 이렇게 느끼실 때가 있습니까?
◆ 조정래
지금 우리가 이제 한 번 입은 상처, 생명을 좌우하는 상처가 크면 클수록 후유증은 오래 가는 것인데요. 지금 우리가 구소련과 수교했고 중국과 수교했고 배트남과 수교했고 다 수교했습니다. 그러면 성숙해져야 되겠죠. 그런데 왜 같은 민족인 남북한 관계가 이렇게 나빠지는 것인지 저는 상당히 불행하게 느끼고 있고 조금 더 우리가 의식을 어른스럽게 키워 나가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될 것 같습니다.
◇ 민경중 / 진행
요즘 답답하게 남북 관계가 막혀 있고요. 어제는 31절이었고 국회에서는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젊은이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합니다. 우리 사회 뭐라고 한 말씀 해 주시죠?
◆ 조정래
저는 하도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서 한 마디로 하기 어려운데요. 다들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서 여유를 가져야 될 것입니다. 너무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 민경중 / 진행
마음의 여유를 찾자 이런 말씀이시네요. 작품 얘기를 조금 더 하겠습니다. <태백산맥>에 나오는 인물이 400여 명이 넘는데 그 수를 세어봤다는 사람은 있지만 그 수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건지. 혹시 스스로는 세어 보셨습니까?
◆ 조정래
저는 소설을 구성하고 그 구성을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는 인물들을 대충 2/3 정도 만들어 놓고 수정하고 보완해 가면서 키워 가는 것인데 그 숫자를 세어 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필요할 때는 만드는 것이니까. 그런데 끝나고 났는데 대충 300여 명이 넘을 것이다 그랬는데 어떤 분들이 할 일 없이 세어 보셨나 봐요. 숫자를 졸다가 세셨는지 다 맞지 않아 가지고 들쑥 날쑥인데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 끝내야지 꼭 맞힐 필요 없습니다.
◇ 민경중 / 진행
그렇게 대작을 쓰시다 보면 앞의 등장인물 까먹고 뒤에는 잘 처리 안 하고 넘어가는 경우 혹시 그런 경우 있습니까?
◆ 조정래
일본에서 그런 일이 50년 전에 벌어졌습니다. 어느 작가가 신문에 세 가지를 연재하다 보니까 이쪽 신문에 저쪽 사람 쓰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나오고 그래서 이제 그쪽에서는 작가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쓰면 이렇게 혼란이 오느냐고 박수치고 웃고 그러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종이에 꼬박꼬박 메모해 놓고 쓰기 때문에.
◇ 민경중 / 진행
지난번에 벌교에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이 건립됐는데 궁금한 것 하나 있어요. 박태준 전 회장님이 참석하신 것을 두고 왜 참석하셨고 여권애서 이런 저런 얘기가 나왔는데 왜 참석하셨고 어떤 경유로 그렇게 하셨나요?
◆ 조정래
제가 이제 세 번째 대하소설 <한강>을 쓸 때, <한강>이 두 가지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우리 산업화, 경제 발전 한 부분이고 분단 상황의 고착화 두 가지인데 그 경제 발전을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포항 제철을 포스코를 빼 놓을 수 없고 포스코를 쓰다 보니 박태준 의원을 빼 놓을 수가 없고, 취재를 하다 보니까 이 분의 인간성과 사회적 국가적 헌신에 대해서 감동해 가지고 그 후로 친교를 맺게 됐었는데 태백산맥 문학관뿐만 아니라 몇 년 전에 아리랑에 문학관에도 오셔서 축사 하셨습니다. 그런데 특히 <태백산맥>이 이념 문제 있었고 했기 때문에 더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건데 저는 그 분들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사회 원로로서 또 존경하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그걸 이해 못 하는 분들께서 신문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쓴 모양인데 좋은 이야기죠.
◇ 민경중 / 진행
항상 건강하시고요. 언제까지나 좋은 소설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