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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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1/19(월) 고경남 남극 세종기지 의료담당 "남극도 온난화로 빙벽들물러나"
2009.01.19
조회 488

서울로부터 1만 7천 2백 4십 km 떨어진 그 끝에는 남극이 있습니다. 빙산과 펭귄들의 천국이고요. 우리나라 과학 기지죠. 세종 기지도 그곳에 있습니다.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1년 동안 남극에 머물면서 겪은 일을 책으로 펴낸 30대의 젊은 의사 한 분을 만나봅니다. 은퇴한 의사가 아니고요. 현직 의사인데 어떤 일로 남극에 갔는지 또 뭘 느끼고 돌아온 건지 직접 들어보죠.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의 고경남씨입니다.

◇ 김현정 / 진행
지금 진료하실 시간은 아니신가요?

◆ 고경남
9시부터 시작입니다.

◇ 김현정 / 진행
책 이름을 보니까 <서른 셋, 지구의 끝으로 가다> 서른 셋일 때 남극에 가신 거예요?

◆ 고경남
네. 가보니까 서른 셋이었어요.

◇ 김현정 / 진행
그게 몇 년도 얘긴가요?

◆ 고경남
2006년도 1월 달에 떠나서 2007년도에 돌아왔습니다.

◇ 김현정 / 진행
사실 환경 연구하는 과학자도 아니고 현직 의사인데 어쩌다가 남극에 가게 되신 거예요?

◆ 고경남
사실 제가 가기 전에 남극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던 건 아니고요. 그 모집 공고를 보고 나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있다가는 내가 서울을 절대 못 빠져 나가겠구나. 여기 대학로에 원룸에 갇혀 가지고 평생 여기만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일단 저지르지 않으면 제 성격에 못 떠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저질러 봤어요.

◇ 김현정 / 진행
무슨 공고를 보신 거예요?

◆ 고경남
이제 의사가 필요하다고. 세종 기지에 의사가 필요하다고 공고를 보고.

◇ 김현정 / 진행
그렇게 해서 남극으로. 처음에는 그냥 서울을 떠나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가게 되신 거군요?

◆ 고경남
그렇죠. 제가 워낙 여행도 싫어하고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데 딱 저질러놓지 않으면 절대 못 움직일 것 같더라고요.

◇ 김현정 / 진행
그래서 남극에 갔는데 상상하던 남극이란게 있지 않습니까? 그 모습과 직접 가서 본 남극의 모습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 고경남
네. 저도 가기 전에 사진으로 보면 굉장히 거대한 빙산이 있고 완전 신세계일 것 같은데 막상 세종 기지에 도착하면 의외로 싱거워요. 그냥 바닷가고 돌멩이가 있고 이게 뭐야 이랬는데 그런데 좀 걸어가 보니까 갑자기 펭귄이 나오더라고요. 조금 더 걸어가다 보니까 물개가 튀어나오고. 더 걸어가 보니까 정말 그때는 거대한 빙산이 딱 등장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내가 새로운 세상에 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김현정 / 진행
남극하면 떠오르는 게 펭귄이 얼음 위를 아장아장 뒤뚱뒤뚱 걷다가 쪼르르르 미끄러지는 거잖아요?

◆ 고경남
네. 정말 그래요.

◇ 김현정 / 진행
정말로 그렇습니까?

◆ 고경남
정말 뒤뚱뒤뚱 걷다가 미끄러졌다가 폴짝 뛰었다가 넘어졌다가.

◇ 김현정 / 진행
여전히 천연 자연에 묻혀 있는 동물들이 많이 있던가요? 남극에는?

◆ 고경남
네. 거기는 아무래도 개발도 이뤄지지 않고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글쎄 거기 동물들은 사람이 뭐 조금 지나가도 전혀 신경을 안 써요. 저희가 동물들한테 해코지 하는 것도 아니고 나름의 생태계를 굉장히 잘 유지하고 있죠.

◇ 김현정 / 진행
어떤 동물들이 더 있어요?

◆ 고경남
펭귄, 물개, 바다에 고래가 있고요. 그리고 새가 굉장히 여러 종류가 있어요.

◇ 김현정 / 진행
도저희 여기에서는 구경 못 할 희귀한 새들도 많을테고?

◆ 고경남
네.

◇ 김현정 / 진행
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 고경남
네. 사실 여기 있어 보면 동물들이 사람을 슬슬 피하고 그러는데 거기서는 저희가 해를 끼치지 않으면 동물들도 절대 저희를 공격하지 않고 지나가면 멀뚱멀뚱 쳐다보고.

◇ 김현정 / 진행
사진기 갖다 들이대도 피하거나 그러지 않고요?

◆ 고경남
네. 조심스럽게. 사실 동물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애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인데. 몸 낮추고 눈높이 맞춰서 살짝 갔다 대면 처음엔 겁내다가도 곧 얌전해져요.

◇ 김현정 / 진행
그런데 솔직히 심심하지는 않으셨어요?

◆ 고경남
처음에 갔을 때는 1-2달은 굉장히 신기하니까 그러다가 이제 점점 심심해 지더라고요. 서울하고 비슷해요. 거기서도 그냥 기지 안에서 컴퓨터 하고 TV 보고 가끔 저녁 때 동료들과 소주 한 잔 하고 그러다 보니까 서울하고 똑같더라고요. 뭐야 남극까지 왔는데, 그래서 그때 좀 회의가 들었는데 그러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틈 날 때마다 산책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바람이라든가 돌멩이 하나 조차도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 시간을 즐겨야겠다, 더 생각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죠.

◇ 김현정 / 진행
지금도 돌아오고 나서 벌써 한참이 지났는데 눈 감으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풍경이 있습니까? 어떤 장면?

◆ 고경남
사실 일부러 생각을 안 하려고 해요. 너무 가고 싶어서 생각을 하면. 그런데 가끔 떠오르는 건 펭귄들도 그렇고 물개도 그렇지만 가장 많이 떠오르는 건 빙벽이에요. 거기 얼음이 정말 그거는 펭귄은 사진으로 봐도 귀엽구나 느끼지만 얼음과 빙벽은 실제로 보지 않으면 느낌을.

◇ 김현정 / 진행
어떤데요? 빙벽이라는게?

◆ 고경남
하얘요. 빙벽 안쪽에서 푸른빛이 나오는 것 같아요. 앞에 있으면 세상의 빛에 여기 전부 여기 모여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김현정 / 진행
이거는 보지 않은 사람을 정말 못 느낄. 그런데 최근에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가 하나 있어요. ‘북극의 눈물’이라고요. 온난화 때문에 얼음이 녹아 가지고 북극곰들이 먹잇감 없어서 굶어 죽는다 이런 내용인데, 혹시 남극은 그런 일이 없던가요?

◆ 고경남
남극도 사실 제가 1년 동안 있었지만 1년 사이에도 빙벽이 몇 십 m 물러났어요. 지금... 1년 사이에도 그렇게 물러났고 세종 기지도 최근 20년 사이에 보면 기지 앞에까지 와있던 빙벽이 1-2km 뒤로 물려나서 굉장히 많이 얼음이 녹고 있고 펭귄들도 매년 숫자 줄어든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1년만 있어서 못 느꼈지만.

◇ 김현정 / 진행
그쪽도 심각하군요. 온난화 문제가. 사실은 굉장히 남다른 경험을 하고 돌아오신 건데 그렇게 순수의 땅, 지루할 정도로 정지된 시간 속에서 살다가 이제 다시 복작복작한 도시로 돌아왔어요. 이 방송 들으시는 분들은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분들이 복잡한 하루를 살아가는 분들 아니겠습니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고경남
네. 남극에 있을 때 물개가 있었는데 물개들은 틈만 나면 자요. 왜냐하면 워낙 거기 날씨가 안 좋으니까. 사실 서울도 그런 것 같아요. 늘 폭풍이 몰아치잖아요. 일상이라는게. 정말 쉴새 없이 몰아치는데. 중간에 혹시라도 틈이 있으면 그냥 조금 있다가 일 해야 되는데 이런 생각 하지 말고 푹 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단 10분이라도.

◇ 김현정 / 진행
앞으로 달려가는 것에만 치중하지 말고? 조금은 여유를 갖고 살아보자? 이런 말씀이세요?

◆ 고경남
네.

◇ 김현정 / 진행
지금도 당장 탈출하고 싶으시죠? 남극으로?

◆ 고경남
탈출하고 싶은데 이제는 탈출해서 용기를 얻고 왔으니까 이제는 서울에서 한 번 뚫고 지나가 보려고요.

◇ 김현정 / 진행
말씀 듣다 보니까 제가 탈출하고 싶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