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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1/12(월) 50대에 신춘문예 시부문 등단한 박미산 씨
2009.01.12
조회 475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생애 첫 시집을 낸 시인 한 분을 만나보려고 하는데요. 그냥 평범한 시인은 아니고요. 가난 때문에 미뤘던 대학을 마흔이 훌쩍 넘어서 들어갔고, 내친김에 대학원까지 갑니다. 대학원에서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게 작년에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면서 화려하게 등단을 했습니다. 50대에 말이죠. 그리고 이번에 첫 시집까지 내게 된 대충 들어도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을까 짐작이 되시죠. 그런 시인입니다. 문학계에서 상당히 화제를 뿌리고 있는 분인데요. 첫 시집 ‘루낭의 지도’를 낸 늦깍이 시인 박미산씨 연결해 보죠.
◇ 김현정 / 진행
축하드립니다.
◆ 박미산
감사합니다.
◇ 김현정 / 진행
첫 시집 이름이 ‘루낭의 지도’에요. 이게 무슨 뜻이죠?
◆ 박미산
‘루낭의 지도’는 그냥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누낭이라는 말은 원래 눈물 주머니 라는 건데요. 눈물 주머니라는 지도라는 뜻도 되고, 그리고 누란이라는 환상의 도시 지명도 됩니다. 그래서 그 누란은 6세기 이후에 멸망한 나라인데요. 이게 이제 실크로드에 있는 그런 아주 번영했던 오아시스에요. 그래서 이제 그런데 여러 세력이 이제 오아시스니까 여러 세력의 침입과 자연의 변화로 사라진 나라죠. 그래서 그런 거로 지었는데 결국 누낭의 지도는 저의 살아온 인생을 이제 되짚는 지도인면서 여태까지 살아온 과거를 지우려는 생각해서 지은 시입니다. 그래서 물론 이제 지워지진 않겠지만 그런 여러 가지 뜻으로 그렇게 누낭의 지도로 했습니다.
◇ 김현정 / 진행
얼마나 눈물 바람 많이 흘리셨어요. 마흔이 넘어서 방송통신대에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마흔 여덟에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에 들어가고. 그러면 교수들 웬만한 교수들은 박 선생님보다 어렸겠어요?
◆ 박미산
네. 그러니까 저보다 나이 많은 분은 손에 꼽을 정도죠.
◇ 김현정 / 진행
그렇죠. 조금 박미산씨를 부담스러워 한다거나 교수님들이 그러진 않으셨어요?
◆ 박미산
네. 그런데 첫 강의 시간에만 교수님들이 이상하게 바라봤어요.
◇ 김현정 / 진행
어디 어머니가 오셨다 이렇게...
◆ 박미산
그런데 사실은 그 다음 시간부터 다 괜찮아졌어요. 다른 학생들하고 똑같이 그래서 학생들하고 똑같이 공부하니까 오히려 강의 지나가면서 훨씬 더 교수님들하고 오히려 친하게 지내게 됐죠.
◇ 김현정 / 진행
오히려... 더 관심 가져주실 거고. 어떻게 늦게 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셨어요?
◆ 박미산
요새 애들 이렇게 얘기 들어보면 좀 제가 구질구질한 얘기인 것 같아서.
◇ 김현정 / 진행
어린 시절에 공부를 하기가 어려운 여건이셨던 거군요?
◆ 박미산
그렇죠. 저희 부모님 고향이 황해도에요. 황해도에서 가장 가까운 인천으로 피난을 오셨는데 남한에 기반이 전혀 없고 그리고 저희는 저희 부모님이 자식 욕심이 많으셔서 8남매나 낳으셨어요. 그래서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웠죠. 그런데 그 당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아버지는 좀 정치를 한다고 이제 정치판으로 돌아다니시고 그래서 집안을 돌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버지의 경제적인 몫을 어머니가 그대로 하셨죠. 제 시집에서 나오는 왕관의 당근은 쑥쑥 자랐어요 그런 시, 그리고 진가의 돌멩이 같은 거는 그냥 너무 배가 고파서 포도밭에서 서리하는 그런 시입니다. 그래서 먹고 사는 일이 힘든데 어떻게 대학을 갈 수 있겠어요.
◇ 김현정 / 진행
고등학교도 간신히 가신 거라면서요? 다른 형제들이 양보해 줘서?
◆ 박미산
네. 그래서 오빠가 양보해 주고 그래서 겨우 겨우 졸업을 한 거죠.
◇ 김현정 / 진행
그래서 결혼까지 하셨는데 그런데 또 남편분이 사업 실패해서 가정을 책임지는 그런 상황이 되셨다고요?
◆ 박미산
네. 참 고등학교 졸업하고 이제 좀 편안하게 살겠거니 했더니 또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뭐 남편 사업 실패도 됐고 또 시아버님이 중풍을 맞으셨어요. 제가 4년 동안 병간호를 했죠. 그러다 보니까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거예요. 4년 동안 아버님 뒷수발, 병수발을 하다가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서 그때 다시 글을 쓰게. 우울증이 왔죠.
◇ 김현정 / 진행
우울증 극복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하신 거군요?
◆ 박미산
네. 그래서 그때는 시는 특별한 사람만 쓸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하고 시를 쓸 엄두를 못 냈죠. 그때부터 수필을 쓰기 시작했죠. 수필은 93년도에 등단을 이미 했었고요. 그러다가 하여튼 자꾸만 글을 쓰면서 제 글에 대해서 확신이 서지 않아서 방통대 국문과를 다시 들어갔죠.
◇ 김현정 / 진행
참 우여곡절이 많은 시인입니다. 시인은 사실 시로 말하는 건데요. 오늘 아침에 시 한 편 부탁드려도 될까요?
◆ 박미산
저의 얘깁니다. 그래서 ‘늦게 피는 꽃’이라는 것을 제가 할 텐데요. 2연만 할게요. 1연, 2연이 있는데 2연만 하겠습니다.
늦게 피는 꽃
박미산
아침과 저녁 생년월일이 없는 나를 살게 한건 무관심이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도 돌아갔다.
구름 한쪽이 목 잘려 떨어졌는데도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견고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구름이 잘려나간 한 방향을 고집스럽게 바라보았다.
기울어 가는 빛이 보였다.
나는 이미 늙은 아이였다.
◇ 김현정 / 진행
아... 들으면서 저는 제가 시는 잘 모르지만 들으면서 들은 느낌이 가족을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많은 걸 그저 내주기만 하는 희생하는 우리 내 어머님들 생각이 나는 그런 시가 아닌가 싶어요. 우리 어머님들 위해서 힘이 되는 한 마디 해 주시는 것 어떨까요? 끝으로?
◆ 박미산
네. 저는 그냥 희생이라는 단어를 참 싫어해요. 그냥 누가 누구를 위해서 희생한다기 보다는 그냥 그들이 그들의 세계로 나아갈 때 길을 함께 걷는 거죠. 그래서 그와 마찬가지로 내 세계를 찾아가려고 할 때 이제 가족이 함께 그 길을 걷는 겁니다. 아무리 사람이 잘났다고 하더라도 결코 혼자의 힘으로는 자기의 세계를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자기 세계를 찾으라는 거죠.
◇ 김현정 / 진행
알겠습니다. 오늘 아침 짧은 인터뷰였지만 감동적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