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라고 하면 좀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요. 장애인,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여성, 아동, 청소년, 노인,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장애와 성별, 피부색, 나이, 이런 이유로 차별 받고 고통 받는 약자들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권은 정부나 특정 집단의 권리 남용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한다는 의미도 큰데요. 우리나라의 인권 시계 어디쯤 와 있을까요. 오늘 세계인권선언의 날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안경환 위원장 모셔서 여러 가지 얘기들 나눠보죠.
◇ 김현정 / 진행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이 되는 날이네요. 어떤 의미가 있는 날입니까?
◆ 안경환
아주 큰 의미가 있죠. 우선 세계인권선언이라고 하면요. 이게 60년 전에 UN 총회가 채택한 건데요. 세계 모든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 라는 것을 천명한 것이고요. 그래서 많은 나라에 헌법이 있지 않습니까. 그 헌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국민이 어떤 권리가 있느냐 라는 내용이잖아요. 그 기본권 조항의 뿌리가 되는 것이 바로 인권 선언입니다.
◇ 김현정 / 진행
모든 나라 헌법의 뿌리?
◆ 안경환
네, 그래서 이걸 일러서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고 말하죠.
◇ 김현정 / 진행
인권 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어느 정도 수준이나 될까요?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
◆ 안경환
말하기 어렵죠. 그런데 선진국이란 뭘 의미 하느냐고 그럴 때, 보통 우리가 인권이라고 하면 굉장히 비장한 사건을 떠올리고. 예를 들어 밀실에서 고문을 많이 당했다든지, 아니면 길에서 데모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경찰이나 군대가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든지, 그런 것을 떠올리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닙니다.
그리고 선진국일수록 주로 일상적인 얘기를 하죠. 차별 받지 않을 권리, 장애인이 잘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줄 권리, 이주민 노동자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있나 없나, 이런 게 이제 주로 관심사가 되죠.
◇ 김현정 / 진행
선진국은 이미 그런 민주주의 탄압, 이런 것은 해결이 됐으니까 소소한 일상의 문제로?
◆ 안경환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마 선진국 근처에 와 있다고 볼 수가 있죠.
◇ 김현정 / 진행
근처까지는. 아직은 아니고 근처까지입니까? (웃음)
◆ 안경환
(웃음) 그 다음에 또 하나는 또 다른 기준이 뭔가 하니까요. 얼마만큼 사회적 약자, 경제적 약자가 최소한의 생활을 누릴 수 있느냐는 건데 우리나라가 그 부분 사회권 문제에서는 굉장히 많이 뒤져있어요. 그래서 흔히 말할 때 앞부분을 시민적, 정치적, 또는 자유권이라고 한다면 그건 선진국 근처에 와 있고요. 그런데 사회권은 굉장히 많이 쳐져 있습니다.
◇ 김현정 / 진행
가장 부족한 부분은 어디라고 보십니까?
◆ 안경환
역시 경제적 약자 부분이죠. 예를 들면 우리가 OECD 국가 30개국 중에서 복지 예산이 30등입니다. 복지 예산은 결국 사회적 권리를 보장해 주는데 가거든요. 그런 점에서 굉장히 쳐져 있죠.
◇ 김현정 / 진행
그렇군요. 올 한 해를 우선 좀 돌아보고 싶습니다. 촛불집회 진압 논란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촛불집회 진압 논란 두고서 우리나라 인권 시계 거꾸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 이런 비판도 많았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 안경환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촛불 집회라는 건 굉장히 광범한 내용의, 이슈가 복잡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 동안에 이렇게 집회가 있었고 경찰 대치가 있었는데요. 외국에서 온 저희 엠네스티 보고서에서도 나왔듯이 전반적으로 볼 때는 굉장히 평화로웠고요. 경찰의 대응도 굉장히 자제를 많이 했습니다.
다만 며칠 동안의 특정 사건에서 약간의 불상사가 있었죠.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면서도 한 사람의, 다시 말하면 불행한 사망자도 안 일어난 것은요. 전반적으로 볼 때 한국 사회가 굉장히 성숙했다는 증거로 본다고 합니다.
◇ 김현정 / 진행
전반적으로 볼 때는 성숙했다?
◆ 안경환
네, 그래서 그건 아주 절대로 비관할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 진행
그런데 진압 과정에서 몇몇 불미스러운 일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좀 그런 것들이 논란이 크게 됐어요.
◆ 안경환
사실 자체보다도 촛불집회 전체에 대한 정치적인 성격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그런 쪽에서 정서가 많이 작용해 가지고. 그래서 거기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이나 이런 것이 그 일을 다루는, 사실 관계를 다루는 저희 인권위원회에 제기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 진행
실용정부 출범 이후에 인권위가 정치적인 성향 문제로 마치 교과서가 좌편향 취급받듯이 인권위도 좀 어려운 상황 맞고 있다, 이런 얘기도 들리던데. 실제로 어떤가요?
◆ 안경환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 그 부분은 저희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것이 2001년이기 때문에, 그 이후에 말하자면 이어지는 정부가 지난 정부는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는 그쪽 정부의 연장으로 보는 쪽에 있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 정부가 바뀌었으니까 이데올로기로 이념적으로 평가를 하는데요.
인권이라면 제가 평소에 얘기하듯이 이건 좌도 우도 아니고 그걸 초월한 진보도 보수도 아니고 초월한 공통적인 개념,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인데요. 거기 무슨 좌우가 있습니까? 그런데 보는 쪽 입장에서 자기의 정치적 생각이나 이런 걸 담아서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요. 이 부분은 우리가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과도기적으로 좀 적응하는 시간이 걸릴 겁니다.
◇ 김현정 / 진행
사실 인권하고 이념은 별개의 문제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인권을 부르짖으면 그게 좌로 치우쳤다, 이렇게 되는 좀 역사적인 어떤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 안경환
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좌파라는, 앞에 다른 말을 붙여서 말하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친북 좌파. 그런데 저희 국가인권위는 친북 좌파는 있을 수 없고요. 다만 좌를 뭐를 좌로 보느냐 그럴 때.
소수자 입장에 서서 그 사람들의 문제를 호소하는 쪽의 얘기를 듣느냐, 현실 제도의 문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느냐, 라는 것에 대해 그걸 ‘좌’라고 한다면 당연히 인권위는 ‘좌’입니다. 출발 자체가요. 인권이 원래 소수 입장에서 보는 겁니다.
◇ 김현정 / 진행
네, 위원장님. 북한 인권 얘기가 나오면 참 어렵습니다. 앞에서 잠깐 우리가 한나라당 의원과도 얘기 나누었습니다만. 북한 인권, 주민들 인권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걸 자꾸 우리가 언급하면 남북 관계가 경색되는 참 미묘한 문제, 이거 어떻게 풀어야 된다고 보십니까?[BestNocut_R]
◆ 안경환
정치적인 평가나 그런 부분은 저희 몫은 사실 아닙니다. 저희들은 오로지 인권 문제, 법적인 근거로 저희들이 준거만 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북한 주민이 북한 정부에 당하고 있는 그런 인권 침해를 우리 위원회에 대고 진정을 해서 진정을 우리가 받아서 해결 할 수는 없습니다. 법적인 근거가 딱 제한돼 있기 때문에요.
그러나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는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당연히 저희도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을 많이 하고 있죠.
◇ 김현정 / 진행
하지만 이게 정치적인 게 워낙 개입이 된 문제이기 때문에 남북 관계는, 섣불리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문제라는 말씀이시죠?
◆ 안경환
그런 부분은 저희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판단할 몫이 아닙니다.
◇ 김현정 / 진행
아주 조심스럽게.
◆ 안경환
그 판단할 몫이 아니고요. 왜냐하면 정치 중립이어야 합니다. 그 판단은 저희에게 주어진 법적인 권한과 의무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충실할 뿐입니다.
◇ 김현정 / 진행
참 건드리기 어려운 문제라는 게 또 확인이 되네요. 위원장님, 임기 10개월 정도 남으셨죠. 뒤돌아보면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으십니까?
◆ 안경환
일상적으로 여러 가지 많지만요. 밖에서 제일 관심을 가지고 저희 위원회에 대해서 걱정해주거나 격려해주는 분들 입장에서 볼 때는요. 새 정부가 바뀌면서 처음에 우리 국가인권위의 독립적인 지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옮겨서 좀 더 보호해 주겠다, 그런 안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부분의 의도는 인권을 챙기려는 의도였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그것이 국제사회의 룰에 맞지 않아요. 그래서 UN의 지적이 있고 그랬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긴 논란, 그게 위원장으로 그걸 감당해 나가는 것이 조금 힘들었죠.
◇ 김현정 / 진행
잘 기억 못하시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인권위가 소속이 되면 아무래도 영향을 여러 가지 사건에 받지 않겠느냐 이런 걱정들이 있었던, 그 무렵 말씀하시는 거죠?
◆ 안경환
네, 그렇습니다. 그건 아마 대통령이 인권 문제를 직접 챙겨준다는 뜻도 있겠지만 원래 이것을 대통령 직속에 두지 말라는 것이 국제 룰이거든요. 그래야 일상적 명령 지휘 안 받고 보고도 안 하고 그래야 한다고 한 것인데.
아마도 그래서 인수위 시절에 그런 안이 있었는데 아마 국제사회 여론을 받아서 그 부분을 바로 접었었죠. 그러나 그 사실로 인해서 일어난 사회적 논쟁과 국제적인 물의, 그걸 제가 수습하는데 좀 힘들었습니다.
◇ 김현정 / 진행
국가인권위가 여러 가지 결과들 중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의미가 있었다고 보시나요?
◆ 안경환
우선 UN이 얘기한 것 중에서요. 각 정부마다 각 나라마다 종합적인 인권증진계획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위원회에서 정부에 권고를 해서 종합적인 인권행동증진계획을 2007년에 우리 정부가 채택을 했습니다. 가장 큰 성과로 볼 수 있죠. 이런 채택한 계획대로 하는지 안 하는지 저희들이 관심을 갖고 챙기고 쓴 소리도 하고 해야 합니다.
◇ 김현정 / 진행
한 가지만 더 여쭙죠. 가장 뜨거운 관심 중 하나입니다, 정치권에서. 국정원법 개정하는 문제, 휴대전화 도청을 지금보다 광범위하게 한다든지, 이런 문제 어떻게 보십니까?
◆ 안경환
그 부분은 구체적인 법안을 봐야 되겠습니다만, 원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평화 시일수록 민주화된 평화 시일수록 그렇게 뒤에서 일하는 기관의 권한을 좀 강화해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국가 안보나, 그런 필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만큼 보다 중요한 것이 그로 인해서 개인의 사생활이 갖고 있는 고유한 자유 침해라는 부분이 중요하거든요. 그 둘 사이에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느냐에 대해서 세부적 논의가 필요한 사항일 겁니다.
◇ 김현정 / 진행
그 말씀은 아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부분이다?
◆ 안경환
네, 공론도 있어야 하고요.
◇ 김현정 / 진행
알겠습니다. 임기 10개월 남으셨지만 하실 일이 여전히 많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 해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12/10(수)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국정원법 개정, 세부적논의 필요"
200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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