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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9/17(수) 박세직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 "동계, 하계올림픽 둘다되면 좋겠어"
200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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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기, 호돌이, 호순이, 굴렁쇠 소년. 뭐가 생각나세요? 1988년 9월 17일 오늘은 20년 전 오늘은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개막한 그 날입니다. 서울올림픽 20주년 맞이해서 당시의 여러 가지 추억들이 다시 회자되고 있는데요.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당시 서울올림픽의 조직위원장이었던 박세직 위원장 만나봅니다. 지금 20주년 맞아서 기념하는 걷기 축제도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지금은 사단법인 세계걷기운동본부의 총재십니다.
◇ 김현정 / 진행
저는 아직도 생생한데 어떠세요?
◆ 박세직
그러네요. 잠실 벌판에 활활 타오르던 성화가 아직도 눈에 선한데요. ‘코리아나’가 불렀던 ‘손에 손잡고’ 그 노래가 생생한데 벌써 20년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참 빠른 것 같습니다.
◇ 김현정 / 진행
어떻게 지냈셨어요? 그동안?
◆ 박세직
그동안 하나님 은혜 가운데 여전히 건강하게 여러 가지 활동 하고 있습니다. 회장 외에 국가... 세계 걷기 대회 총재도 맡았지만, 국가 &%%& 이런 단체의 상임위원장도 맡고 있거든요. 우리나라에 거주해야 되니까 그래서 국가에 대한 긍지도 가져야되겠고, 그래서 우리나라가 불행하게도 지난 날 대한민국보다 북한을 선호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지 않았습니까?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 회복해야 되겠다. 그래서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 진행
당시 조직위원장으로 올림픽 진도지휘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그때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은 뭘까요?
◆ 박세직
그렇습니다. 금년 이제 건국 60주년이고, 또 서울올림픽 20주년이거든요. 그나마 60주년의 우리 역사 중에서 가장 이벤트가 서울올림픽었다고 생각됩니다. 서울올림픽이 화합의 불길을 당겨주었고, 국민의 마음 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잠재적인 화합의 불꽃 피우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고 애국심 북돋워 주었다는 것에서. 그것도 우리 사회가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굉장히 기하하적으로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이 아주 특이하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 진행
그 당시에 우리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도 많을 것 같은데, 이제는 말 할 수 있는 비화, 재미있는 일화 이런 것 있을까요?
◆ 박세직
비화가 여러 개 있는데 국민들 잘 아실지 모르겠는데, 서울올림픽은 체육뿐 아니라 서울올림픽 독특하게 우리나라 말에 지덕체 삼위일체라는 말이 있는데. 지성과 덕성이 겸해서 발달해서 삼위일체 돼야 된다. 인간의 온전함을 추구한다 이거죠. 그래서 그런 목표를 세웠거든요. 그런데 이제 그것을 상징적으로 점화를 할 때 세 사람의 점화자가 24m 높이의 성화대 꼭대기에 불을 붙이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지를 대표, 한 사람은 덕을 대표, 한 사람은 체를 대표했거든요. 지를 대표하는 사람은 학교 선생님인데 이 분은 전라남도 서해안 멀리 떨어져 있는 흑산도의 초중고등학교의 교사인 정선만 선생이었어요. 이 분은 서쪽에서 오시지 않았어요? 덕을 대표하는 분은 젊은 여성 중에서 문화예술을 대표하기 때문에 예술고등학교 3학년 손미정양을 선정했는데 이 분은 부산 출신이라 동쪽에서 왔어요. 체를 대표하는 선수는 김원탁 선수라고 마라톤 보유자인데 제주도 출신 남쪽에서 왔거든요. 그런데 성화를 도입한 손기정 옹은 이 분은 북쪽에서 오셨어요. 거기다가 마지막 주자로 성화를 건네준 임춘애 선수는 경기도라고요. 그래서 한반도의 동서남북과 중앙에서 우연하게 일치가 됐는데.
◇ 김현정 / 진행
계획을 하신건 아니고?
◆ 박세직
계획을 일부러 한건 아닌데 절묘하게 지역적인 화합의 상징이 되었다. 올림픽은 하나님의 섭리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 김현정 / 진행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까. 그런데 저는 기억이 나는게 올림픽 자체도 자체지만 서울,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발표하던 것이 생생해요. 나고야가 될 줄 알았잖아요?
◆ 박세직
나고야와 경쟁을 해서 일본 사람들은 자기들이 54년에 동경 올림픽을 치뤘고 선진국이라는 자부심도 있고 미리 별로 준비도 안 하면서 유치할 것으로 생각하고 이렇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개발도산국에다가 여러 가지 분단된 국가라 어려움 많아서 어떻게 유치를 할까 걱정을 한 나머지 그야말로 우리 국민과 체육인, 언론, 기업인 할 것 없이 일치가 돼서. 심지어 안내양까지 전시장에 가서 설명도 하고 우리가 어떻게 준비했다는 것 이게 납득을 시키고 이해시켜서 분단된 국가에서 하는 것이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 이러한 말씀도 드리고 그래서 우리가 큰 차이로 유치를 할 수가 있었죠.
◇ 김현정 / 진행
로비전도 대단했을 것 같고 첩보전도 치열했을 것 같은데?
◆ 박세직
그럼요. 그렇습니다.
◇ 김현정 / 진행
발표 직전에 감을 잡으셨습니까?
◆ 박세직
그거는 어떤 조건에 의하면 상당히 우리가 우수하단 말도 있었거든요. 그러나 반면 일본도 만만치 않아서 끝까지 마음 놓을 수 없었죠.
◇ 김현정 / 진행
그때 생각이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갑니다.
◆ 박세직
그런데 사실 올림픽을 유치한 다음에 어려움 많았죠. 왜냐하면 정치적 이유 때문에 올림픽 반대하는 일부 학생이나 세력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북한의 테러 때문에 광산 테러 때문에 17명이나 돌아가시고, 115명이나 우리 무고한 사람 숨지게 했잖아요. IOC 위원까지도 서울올림픽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공식적으로 이렇게까지 했어요.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거기다가 9월 17일 개회식 날은 30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준 사라호 태풍 분 날이에요. 그 날 태풍 올라온다는 말 때문에 굉장히 마을 졸였죠. 사실상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거든요. 국민들이 아주 현명하고 위대해서 자원봉사들 구름떼 같이 달려들어서 성공해서 오체, 최고의 올림픽 되고. 오체 올림픽 이야기 들으셨어요?
◇ 김현정 / 진행
지금 하실 말씀 한 시간 정도 더 들어야 될 것 같은데, 시간이 없어서요. 베이징올림픽 너무 재미있어서 베이징올림픽 끝난 다음에 올림픽 한 번 더 하자 여론 있는데 어떠세요?
◆ 박세직
우리가 더 하자? 각 지방자치단체장들은 그런걸 원하죠. 그래서 지금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다가 이제 두 번 좌절했는데, 거기서도 다시 한 번 하려고 하고 하계올림픽은 부산에서 하고 싶어 하고 이런 등등의 꿈이 있어서 조율해서 두 개 다 되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없겠죠.
◇ 김현정 / 진행
부산에서 하계올림픽 이야기 나오고 있나요?
◆ 박세직
네.
◇ 김현정 / 진행
제가 더 얘기를 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여기까지 줄이고, 20주년 기념하는 걷기 축제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성공적으로 치르길 기대하겠다.
◆ 박세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