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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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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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응우옌 티 탄 (베트남전 피해자)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 증언
8살 때 마을 들이닥친 한국군, 가족 5명 잃어
내 배에 총상이 증거, 법적 대응 나섰지만…
이번이 마지막 방한 되길…韓 사과 바란다
오늘 아주 특별한 외국인 손님 한 분이 뉴스쇼 스튜디오를 3년 만에 찾아오셨습니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번이 벌써 네 번째 방문인데요. 지난번 인터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사이에 이분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는 겁니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1968년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한국군이 베트남 한 마을에 들어가서 민간인 70여 명을 학살하는 사건이 있었죠. 바로 그 생존자의 증언입니다. 이 민간인 학살 문제를 계속 세상에 알리고 다니던 분들이 소송의 당사자가 된 거예요. 지난 화요일에 법정 증언으로 화제가 됐죠. 베트남인 응우옌 티 탄 씨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모셨습니다. 탄 선생님 어서 오세요.
◆ 응우옌 티 탄> CBS 모든 여러분들께 인사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응우옌 티 탄이라고 합니다.
◇ 김현정> 지금 통역을 해 주시고 계시는 분은 응우옌 응옥뚜옌 씨, 어서 오십시오. 먼저 1968년 2월 12일, 그러니까 사건이 일어났던 그날로 한번 다시 돌아가 봐야 될 것 같아요. 우리 탄 씨가 그때 그러면 8살이셨던 거죠?
◆ 응우옌 티 탄> 1968년 2월 12일에 퐁니, 퐁넛 마을에서 한국 군인에 의한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 김현정> 학살. 8살밖에 안 되셨으니까, 글쎄요, 그날의 기억이 얼마나 생생할까 싶은데 제가 전해 들었던 걸로는 굉장히 생생하게, 워낙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자세하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어요. 조금 아픈 기억이긴 합니다만 다시 한 번 그날의 기억나는 장면들을 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응우옌 티 탄> 네, 할 수 있습니다. 그날은 1968년 2월 12일이었습니다. 그때는 오전이었습니다. 집에는 우리 어머니, 우리 형제 4명이 있었고요. 그리고 이모하고 이모의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에는 어머니가 장사하러 집을 나갔습니다. 갑자기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거예요.
◇ 김현정> 총소리가.
◆ 응우옌 티 탄> 총소리. 저희 이모가 빨리 방공호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 김현정> 방공호로 들어가라고 8살 형제한테 이모가 말씀하셨어요.
◆ 응우옌 티 탄> 우리 형제들은 이모의 말에 따라서 방공호에 빨리 들어갔습니다. 한 30분 넘게 지나갔을 때야 그때 한국 군인이 우리 집 방공호 입구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호를 보여주면서 나오라고 하는 그런 신호였습니다.
◇ 김현정> 군인이 나오라고. 아이들을 보고.
◆ 응우옌 티 탄> 네. 그러자 저희 오빠가 혹시 지금 나가면 총 맞지 않을까, 그냥 방공호 안에 있자, 그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 군인들이 수류탄을 꺼내서 이렇게 보여줬습니다. 안 나오면 수류탄 던지겠다는 그런 신호였습니다. 거의 한꺼번에 방공호에서 나갔는데 올라가는 대로 총 맞았습니다. 저도 그때 이미 몸에 총상은 맞았습니다. 많이 아팠지만 가만히 있어야 되었습니다. 이모는 마지막으로 방공호에서 올라왔습니다. 한국 군인이 집에 불을 지르려고 했더니 이모가 불을 지르지 말라고 약간 말리는 그런 행동을 하자 한국 군인이 칼을 꺼내서 이모를 찔렀습니다. 이모는 바로 거기서 죽었습니다. 한국 군인들이 우리 집을 불태운 다음에 바로 집을 나갔습니다.
그때서야 제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제 누웠던 자리 바로 옆에 이웃집에서 놀러 온 이웃 오빠가 벌써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언니도 죽어 있었습니다. 저는 집 밖으로 나갔는데 물 항아리 있는 쪽 옆에 제 남동생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턱에 총알을 맞아서 숨 쉴 때마다 핏물이 이렇게 막 흘러 나왔습니다. 동생을 안고 구조하고 싶었는데 저도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 오빠는 한 구석에서 저를 발견했습니다. 아주 심각한 중상을 입었습니다. 집을 나가 보니까 온 마을의 집들이 다 불에 타 있었고 동물들이 막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우리 남매가 바로 눈에 확 들어가서 숨었습니다. 볏속에.
◇ 김현정> 볏속으로. 그렇게 해서 몸에 총상을 심하게 입긴 했습니다만 목숨은 건지신 거예요. 8살의 탄 씨와 남매는. 이렇게 그날 그 마을에서는 70명이 숨졌습니다. 지난번, 3년 전에 출연하셨을 때에는 한국 정부가 이 민간인 학살에 대해 진상 조사를 해 달라. 그 청원을 하러 오셨던 건데요. 청원을 하고 그다음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나요?
◆ 응우옌 티 탄> 제가 청원서를 냈는데요. 한국 국방부에서 저희에게 답장 보냈는데요. 학살의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내용이 나왔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건이다.
◇ 김현정> 확인되지 않은 사건이다.
◆ 응우옌 티 탄> 네, 그런 내용으로 제기되어 있었습니다.
◇ 김현정> 그래서 법적 대응까지. 2년 전에 이미 제기를 하셨더라고요. 이번에 증언을 하러 법정에 서기 위해 오신 겁니다만 법적인 소송은 이미 2020년에 시작을 하신 건데 아니, 저는 갑자기 궁금해지는 게 그 마을에서 70명이 숨지고 우리 탄 씨도 목숨은 건졌지만 지금도 흉터가 여기 있으신 거예요? 어디 몸에 지금 흉터가 있습니까?
◆ 응우옌 티 탄> 네, 맞습니다.
◇ 김현정> 어디...
◆ 응우옌 티 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 김현정>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법정에서도... 배에 부상을 크게 입으신 거군요. 지금 유튜브로는 보고 계시는데요. 굉장히 커다란 상처가 마치 뭐라고 해야 되나. X자 모양으로 가슴부터 배를 거쳐서 엉덩이까지 쭉 깊이 나 있습니다. 이게 저 정도 상처면 뭐 당시에 장기가 다 훼손됐을 정도의 상처, 어떻게 저 정도 상처를 8살이 입고 살아남았을까 싶을 정도네요.
◆ 응우옌 티 탄> 그때 많이 아팠습니다. 많이 고통스러웠습니다.
◇ 김현정> 저 정도 부상이면 그럼 장기가 손상이 될 정도로 큰 부상일 것 같은데요.
◆ 응우옌 티 탄> 장이 아예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창자가 아예 나왔거든요. 병원에서 장을 잇는 그런 수술은 받았습니다.
◇ 김현정> 아니, 이모도 돌아가시고 돌봐줄 수 있는, 키워줄 수 있는 어른들은 계셨던 겁니까? 가족이 생존하신 거예요?
◆ 응우옌 티 탄> 아버지는 이미 1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 김현정> 어머님은.
◆ 응우옌 티 탄> 학살 때 어머니를 찾으러 계속 뛰어다녔습니다. 어머니가 죽어 있었던 것을 모르고 계속 엄마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저는 지금 사실 궁금했던 게 저런 부상을 입고 어린 소년소녀 남매가 남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살아오셨는가 상상이 안 돼요. 그 고생하신 거는 지금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짐작이 제가 되는데 결국 이 학살의, 이 민간인 학살의 증인으로서 내가 세상에 참상을 알려야겠다고 나서서 발 벗고 다니신 지가 꽤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방부의 입장은 이 말만 가지고 어떻게 이거를 입증할 수가 있느냐. 증거가 부족하다, 이런 입장이었고 소송을 지금 걸었습니다만 소송에서도 같은 입장을 지금 취하고 있는 거죠?
◆ 응우옌 티 탄> 국방부에서 지금 갖고 있는 기밀 서류들 중에서 민간인 학살에 관한 자료가 없다. 그래서 확인이 안 된다. 그런 식으로 답했습니다.
◇ 김현정> 확인이 안 된다, 계속 그런 입장이군요. 그런데 보니까 지난 11월에 그 당시 퐁니 마을 수행 작전에 참여했었다 하는 전직 군인이 법정에서 증언을 하셨더라고요. 류진성 씨라는 분인데 당시의 상황을 증언할 수 있다 하면서 말하자면 피해자 측의 참고인으로서 증언을 하신 건데 여기에 대해서도 정부 측은 그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 이런 입장이네요.
◆ 응우옌 티 탄> 맞아요. 류진성이라는 참전군인 분이 그런 증언하셨는데요. 그래서 저도 많은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죠.
◇ 김현정> 그 군인들, 그 학살을 저지른 군인들이 한국군이라는 증거가 있느냐. 그 얘기를 계속 묻고 있는 거거든요. 뭐라고 답을 하십니까?
◆ 응우옌 티 탄> 군인들이 확실히 한국 군인이라는 거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군복은 약간 얼룩무늬가 있는 군복이었고 얼룩이 있는 철모도 쓰고 있었고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말이 우리 베트남 말이 아니었던 겁니다.
◇ 김현정> 그 얼룩무늬 군복은 그 당시 그러니까 참전했던 군인들 중에 한국 군인만 입고 있었던 건가요?
◆ 응우옌 티 탄> 미군은 다른 군복을 입었습니다.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 김현정> 이 이야기를 계속해서 법정에 서서 증언을 하는 건데 특히 이번 주 화요일에 한국 법정에 증인으로서 서야 했을 때 그때 심정은 어떠셨어요?
◆ 응우옌 티 탄> 어제 법정에서 많이 긴장했습니다. 제가 증인하기 전에는 제 삼촌 응우옌 득쩌이 님이 먼저 들어가서 증인하셨습니다.
◇ 김현정> 삼촌도 같이 오셨어요.
◆ 응우옌 티 탄> 그 과정에 제가 밖에 있어야 되었습니다. 한국 참전군인들 분들도 와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법정 안에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안 되었기 때문에 그냥 바깥에서만 대기해야 되었는데요. 그런데 그분들이 윈티 탄 퐁니, 퐁남, 그런 마디 몇 마디 말은 알아들었습니다. 그때는 많이 긴장했습니다. 옛날 생각은 떠오르면서.
◇ 김현정> 옛날에 그때 그 생각이 나면서. 그분들이 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분들을 봤을 때는 정말 옛날 그 트라우마, 그 장면이 떠오르셨을 법 하네요. 2년째 지금 진행 중이지만 판결이 나오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습니다.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 텐데 좀 무서운 싸움이 될 수도 있는데 그래도 계속 가실 겁니까?
◆ 응우옌 티 탄> 이렇게 저한테 한국까지 찾아와서 증언하는 게 그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러나 진실을 얘기하러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방한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한국 정부하고 한국 참전군인들이 진실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진실을 이제 그만 인정했으면 좋겠다 하는 말씀을 하시면서 아마 이 이야기를 참 수도 없이 한 증언일 텐데도 또 눈가가 촉촉해지시네요. 탄 씨. 지금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또 정부에게 꼭 좀 하고 싶은 말이 끝으로 있다면.
◆ 응우옌 티 탄> 제가 원하는 것은 한국 정부하고 한국 참전군인들이 학살 사실을 인정하고 그리고 사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양국에서 화해를 할 수 있고 그리고 평화를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가족을 잃고 또 본인도 어린 시절에 끔찍한 마음과 몸에 상처를 입고 민간인이 왜 이런 피해를 당해야 하는가, 왜 이런 학살을 당해야 하는가 수없이 되물으면서 사과 한마디, 인정 한마디를 듣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고 있는 현실. 그래서 법적 투쟁을 지금 이어가고 있는 그 상황 저희가 전해드렸습니다. 이게 결과가 지금 나온 건 아니에요. 나온 건 아니지만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같이 지켜봐야겠습니다. 탄 씨, 오늘 어려운 증언, 걸음 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건강 잘 챙기시고요. 오늘 대단히 고맙습니다.
◆ 응우옌 티 탄> CBS 방송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이런 저와 같은 피해자의 그리고 이런 문제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현정> 오늘 두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응우옌 티 탄> 감사합니다.
◇ 김현정> 54년 전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의 생존자시죠. 그리고 국가 배상 소송의 원고인 응우옌 티 탄 씨, 그리고 오늘 동시통역에는 뚜옌 씨가 함께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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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8/12(금) "54년 전 한국군이 쏜 총알 자국, 아직도 선명합니다"
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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