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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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한판승부> FM 98.1 (18:25~20:0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김성회 소장
■ 대담 : 전양준 前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관에서의 일만 하룻밤' 저자)
◇ 박재홍> 우리 한판승부 보물 같은 코너죠. 금요일 2부의 한판클라스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전주국제영화제를 필두로 영화제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영화팬들에게 너무나 반가운 소식인데 그래서 오늘은 영화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영화제 이야기. 대한민국에서 영화제 얘기를 가장 잘해 줄 수 있는 분. 최고의 영화제 전문가이자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린 개척자이자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든 주역이십니다. 전양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위원장님 어서 오십시오.
◆ 전양준> 안녕하십니까?
◇ 박재홍> 진 작가님, 김성회 소장님 인사 나눠주시고. 처음 뵙습니다. 위원장님 마이크에 가까이 대고 하시면 되겠습니다. 1995년부터 2021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굉장히 오랜 시간이네요.
◆ 전양준> 영화제 창설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계속 일을 했으니까요.
◇ 박재홍> 작년까지 일하신 건데.
◆ 김성회> 처음에 맡았던 일은 어떤 계기로.
◆ 전양준> 처음에 맡았던 일은 제가 그 전부터 영화제.
◇ 박재홍> 프로그래머.
◆ 전양준> 하기 전부터 월드시네마에 대해서 해박한 그런 지식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해외 영화제도 여러 영화제에 참가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역할이 주어졌어요. 월드 시네마 담당 프로그래머로 한국 영화와 아시아 영화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영화를 다 맡아달라. 이렇게 해서 역할이 시작이 된 거죠.
◇ 박재홍> 그렇군요. 위원장님께서 '영화관에서의 일말 하룻밤'이라는 책을 쓰셨는데 거기에 보면 위원장님께서 얼마나 많은 세계 영화제를 보셨고 또 많은 영화인들과 함께하신지를 알 수 있는데. 코로나로 묶여 있는 영화제들도 다시 열고 있습니다. 이런 거 보면서 좀 위원장님께서도 굉장히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아요.
◆ 전양준> 우리나라의 경우는 재작년, 작년 코로나19 방역 수칙의 원칙에 입각해서 너무 지나치게 이제 그걸 지켜가는 바람에.
◇ 박재홍> 지나쳤습니까?
◆ 전양준> 위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하는 삶을 추구하지를 못했는데요. 영화제의 어떤 원조 대륙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에서는 작년 말부터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하는 영화제를 시작을 했고 올해 같은 경우는 굉장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하게 감염자들이 급증했던 베를린영화제를 제외하고는 계속 영화제들을 활발하게 개최할 예정이고 5월 17일에 개막하는 칸국제영화제의 경우는 실외, 실내에서 전부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을 천명을 했어요, 최근에.
◇ 박재홍> 실내에서도?
◆ 전양준> 그래서 지금 유럽의 참가자들은 거의 코로나19 시기 이전의 수준을 회복해서 거의 모든 그 수준에 도달하는 참가자들이 다 지금 오기로 약속이 돼 있고요. 아시아만 이제 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대부분이 다 권위주의 체제의 나라들이기 때문에 국경을 너무 지나치게 통제하는 바람에 지금 아시아의 영화산업 관계자들이 칸의 참여가 올해도 여전히 저조하다는 그런 볼멘소리를 갖다 지금 현지에서 하고 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 영화계에서도 적극적으로 이제는 위드 코로나 해야 된다.
◆ 전양준> 그렇죠.
◇ 박재홍> 그래요. 위원장님께서는 영화관에서 일만 하룻밤의 제목으로 책을 내셨는데 국제영화제가 진짜 매력적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책을 읽으면서. 관객 입장에서 영화제가 갖는 매력은 뭘까요?
◆ 전양준> 아무래도 국제영화제에서 참가하는 관객들이 느끼는 매력은 영화를 직접 만든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감독과 그다음에 연기자, 배우들과 함께하는 그런 스크리닝에 내가 그 몇 년도, 몇 월 며칠. 그 스크리닝에는 함께했다고 그리고 내가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했다. 그리고 내가 감독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감독을 몰아붙이는 질문을 했다.
◇ 박재홍> 현장에서 몰아붙이는 질문을 했다. 왜 이렇게 영화 재미없냐.
◆ 전양준> 이게 재미있는 대목인 게 그런 사람이 먼 훗날에 20년 후에, 30년 후에 세계적인 대가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 박재홍> 감독으로서?
◆ 전양준> 국제영화에 그런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이미 국제영화제의 연혁이나 역사가 70년을 훨씬 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게 얼마든지 가능해요.
◇ 박재홍> 우리 위원장님도 1985년 10월에 런던국제영화제를 처음 가신 다음에 1995년에 대한민국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드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누가 어떻게 될지 정말 모르는 거네요.
◆ 전양준> 그때만 하더라도 저는 제가 다시 나중에 영화제 전문가가 돼서 영국과 그다음에 아일랜드를 방문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죠.
◇ 박재홍> 그러셨어요. 그렇군요. 그래서 우리 위원장님께서 어떤 공부를 하셨나 보니까 대학에서 신방과를 전공하셨고 영화를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셨네요. 어떤 생각으로 영화를 공부하신 거예요? 감독이 되시기 위해서? 아니면...
◆ 전양준> 저는 감독보다는 사실은 예술영화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었어요.
◇ 박재홍> 예술영화 프로듀서.
◆ 전양준> 그런데 유학을 가게 된 것도 집안이 넉넉해서 그 당시에 유학 가면 집안이 넉넉하다고 볼 수 있는데 넉넉하지는 않았고 당시에는 굉장히 한국에서 영화를 한다는 게 굉장히 척박한 상황이었어요.
◇ 박재홍> 그때는 6공화국, 5공, 6공 때였나요?
◆ 전양준> 5공 때였고요. 5공화국이 영화산업을 완전히 장악을 해서 20개의 영화사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그런 통제를 하고 가혹한 검열을 할 때였거든요. 그리고 어떠한 비판과 영화는 물론이고 영화평으로도 반정부적인 어떤 그런 의사를 표시하는 것들이 허용이 안 되는 그런. 그런데 제가 이제 1974년도에 한국영화진흥공사, 지금 영화진흥위원회라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전신인 한국영화진흥공사가 그때 설립이 돼요. 설립목적은 아주 굉장히 좋습니다. 한국영화 발전을, 한국영화를 진흥시키고 효율적으로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 진흥공사를 창설해서 그 목적을 수행한다. 이렇게 돼서 자세한 세칙들이 있는데요. 그 수장이 영화진흥공사의 사장을 퇴역 장성을 보내는 그리고 검열을 맡기는 공연윤리위원회라는 검열기관을 갖다가 거기서 부속적으로 실행하는. 사실 문체부를 대신해서 한국영화산업을 통제하고 검열을 행하는 그런 기관이 생긴 거죠, 그러니까.
◇ 박재홍> 척박한 환경 속에서 이제.
◆ 전양준> 그런데 제가 기관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선언문을 썼어요.
◇ 박재홍> 그랬었어요?
◆ 전양준> 굉장히 어린 나이였었는데요. 그래서 상당히 블랙리스트에도 올라갔고 그 당시에 진짜 블랙리스트가 없을 때 시국선언을 하고 한국영화계가 이래서는 안 되고 한국 정부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시국선언에 참여하고 그런 선언문을 쓰니까 이제 주시 대상이 된 거죠, 보안사랑 저쪽에. 저도 몰랐었는데 그 블랙리스트를 또 만드는 기관이 또 영화진흥공사였어요. 거의 군인들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으니까.
◆ 진중권> 계엄령 상황이죠.
◆ 전양준> 더 이상 그런 상황에서 계속 영화를 한다고 돌아다녀봐야 잘못하면 구속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돈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런던으로 가버린 거죠.
◇ 박재홍> 그래서 런던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영화의 일만 하룻밤이 시작이 됐습니다. 사진을 본다면 우리 영화제에 대한 얘기를 살짝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우리 위원장님께서 또 배우들과 혹은 감독들과 영화제에 참석했던 사진. 저 사진은 문소리 씨 있고. 이창동 감독.
◆ 전양준> 저 자신은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돼서 지금 베니스영화제 영화 궁전, 대극장에서 상영 직전에 레드카펫 올리는 장면입니다.
◇ 박재홍> 위원장님 마이크에 가까이 대고 말씀해 주시면.
◆ 전양준> 이창동 감독님이 옆모습으로 서계시고 이것은 1997년도인데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박하사탕이 소개된 후에 외국 관계자들의 열화와 같은 어떤 그런 출품 요청에 힘입어서 경쟁 영화제에 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창동 감독이 시상식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그 직후의 사진입니다.
◆ 김성회> 집행위원장님도 젊으셨는데 이창동 감독님 진짜 젊은데요.
◆ 전양준> 이창동 감독님은 지금 모습이.
◆ 진중권> 25년 전이니까요.
◆ 전양준> 우스갯소리지만 북한군 장교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지금의 헤어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 박재홍> 죄송한 얘기지만 명계남씨는 지금이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 김성회> 오히려.
◇ 박재홍> 영화제 얘기하고 있는데. 다음 사진인데 여기 박찬욱 감독이 있네요.
◆ 전양준> 이 사진은 2003년 칸영화제인데요.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 영화로 경쟁부문에 초대돼서 고 올드보이의 공식 상영이 바로 있기 직전. 한 15분 전 르미에르, 그랑드르미에르대극장으로 향하기 전에 투숙하고 있는 드레이달비옹이라는 호텔에서 영화제 차량에 타기 직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 진중권> 다 기억하고 계시는구나.
◇ 박재홍> 사진 나온 여성분들은 가족이시죠, 위원장님?
◆ 전양준> 박찬욱 감독의 부인이시고요. 그다음에 따님이시고.
◇ 박재홍> 그렇군요. 지금 말씀하신 영화들이 해외에서 엄청나게 각광을 받았고 상도 많이 받고 있는데 실제 영화제에서 반응 또 관객들의 반응을 또 직접 보고 느끼셨을 거 아닙니까? 어떠셨습니까? 어떤 반응들을 보시고 느끼셨는지.
◆ 전양준> 올드보이는 관객들까지 반응은 칸영화제는 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일반 관객은 없습니다.
◇ 박재홍> 그런가요?
◆ 전양준> 전 세계 영화제 전문가들만.
◇ 박재홍> 칸영화제는.
◆ 전양준> 또 산업 전문가들만 와서 영화를 보기 때문에. 칸 시민들은 영화를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칸 시민들은 아침 일찍부터 블랙타이를 하고 의상을 갖춘 다음에 저녁에 상영되는 영화의 표를 구하기 위해서 혹시 남은 표 없냐고 아침부터 이렇게 종이로. 표 구하느라고.
◆ 진중권> 혹시 못 가게 되는 사람 있을 수 있으니까.
◇ 박재홍> 못 가는 VIP들에게 표를 달라고.
◆ 전양준> 저게 기본적으로 2장씩 나오니까 못 가는 사람들 달라 이거죠. 그래서 구할 경우를 대비해서 복장을 아예 갖추고 아침 8시부터 서 있습니다.
◆ 진중권> 복장을 하고 들어가야 되는군요?
◇ 박재홍> 드레스 코드가.
◆ 전양준> 복장이 한동안은 그래서 미국의 유명한 감독 몇 분이 복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공식석상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유력한 어떤 언론매체에서 이건 너무 심하지 않느냐, 감독까지.
◇ 박재홍> 영화제에서 이렇게 드레스 코드가 중요한 이유는 왜 그렇습니까, 위원장님?
◆ 전양준> 그것은 일종의 감독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는 거죠.
◇ 박재홍> 영화를 만든 감독에 대해서?
◆ 전양준> 그렇죠.
◇ 박재홍> 예의를 갖춰서 함께 그걸 봐야 된다.
◆ 전양준> 대중예술인 감독도 똑같이. 고전음악과 어떤... 상영 때 우리가 일종의 의식행위처럼 옷차림을 갖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해야 된다는 게 칸의 입장인 거예요, 공식적으로.
◆ 진중권> 베를린영화제는 그냥 막 가도 되는데.
◆ 전양준> 베를린도 경쟁부문은 그래도 블랙타이까지는 아니지만 청장을 해야죠, 넥타이 메고 짙은 색 양복 입어야 되고.
◆ 진중권> 기억납니다.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물에 빠진 날. 나는 그 영화 너무 어렵더라고요. 저게 무슨 영화가 왜 저렇지? 딱 끝나고 나니까 독일 관객들이 다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치는 거예요. 정말 좋은 영화인가 보다.
◇ 박재홍> 그래서 우리 위원장님 책을 보면 80년대 중반에 세계 영화제를 많이 가보셨는데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영화제가 별로 없어서 서운했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요즘에는 그래도 한국영화를 많이 초청을 하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과거에 비해서 어떤 점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 비해서 우리 한국영화에 대한 세계 영화제들의 대우가.
◆ 전양준> 역시 그 큰 차이를 만든 것은 80년대부터 사실은 이제 보안당국에서는 파악을 못 했어요. 왜 이렇게 일련 기준을 볼 때 볼 때 한 달 생활비도 안 되는 것을 연봉으로 받으면서 저렇게 고학력자들이 영화를 한답시고 영화판에 많이 들어와 있냐. 분석을 해 보니까 마치 대학생들이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서 위장취업을 하는 것처럼 아마 영화계도 저런 명문대에서 예를 들면 아주 의식화 훈련을 받은 전문요원들이 대거 투입된 거다.
◆ 김성회> 영화 구석구석에 어떤 사상을 집어넣어서 본인들 현혹시키려고.
◆ 진중권> 이해가 안 되는 거지.
◆ 전양준> 노조를 결정해서 파업을 하고. 그래서 안기부든 보안사든 다 그런 관점에서 보고 블랙리스트로 만든 거예요. 그런데 이제 블랙리스트를 해제시켜주는 조건은 충무로에서 상업영화의 감독으로 데뷔를 하면 블랙리스트 봉인을 해제시켜줬어요.
◇ 박재홍> 충무로 감독이 되면?
◆ 전양준> 그래서 블랙리스트에 앞선 순위에 마치 공천 우선순위 같습니다마는 앞선 순위에 있던 장선우 감독이나 대학교 때 학생운동까지 했고 또 타계한 홍기선 감독이나. 이런 사람들이 충무로 감독으로 데뷔하면 자동으로 우리 통제권 하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해제시켜주는.
◆ 진중권> 더 이상 재야가 아니다.
◆ 전양준> 그렇죠. 그런 거죠. 그런데 끊임없이 의혹의 눈초리로 봤던. 그런데 그 우수한 인력들이 여전히 한국영화의 제작시스템 내에서 맥을 못 쓰고 있다가 왜냐하면 이유는 검열인 거죠, 그러니까. 검열이 지속되는 한 영화는 갈 길이 없어요. 상업영화도 아니고 예술영화도 아니고. 한국영화는 이 두 가지가 항상 컴플렉스처럼 뭉쳐져 있는 가운데 그래서 유럽에서 한국영화들이 보여질 때 그냥 맥락 없이 예를 들면 여자를 갖다가 여자에게 성폭행을 가하는 장면들이 나오고. 그게 다 검열의 영향이거든요. 대종상을 받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기는 만드는데 지루하고 이런 문예 영화만 만들 수 없으니까 관객들이 조금 들어야 되니까 정치적인 장면을 시나리오에서 억지로 써서 집어넣고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서 그런 영화가 아무리 잘 만든다 한들 영화제 가서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거죠.
◆ 김성회> 언제부터 나아졌습니까?
◆ 전양준> 검열이 해체되고.
◇ 박재홍> 검열 해체된 이후부터.
◆ 전양준> 9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 박재홍> 세계 영화제가.
◆ 전양준> 검열이 완전 해체되거든요. 부산영화제 열릴 때 초기에도 검열을 받았고요. 형식적이기는 했지만. 3회 때부터 아마 검열이 없어졌을 겁니다, 부산영화제는. 98년도 전이니까. 그러니까 그다음부터 한국 영화는 놀라운 영화들이 나온 거예요. 그리고 굉장히 우수한 교육을 받은 그런 감독들의 지력이 담긴 사회의식이 담긴 영화들이 나오면서 주목을 받은 거죠. 그때가 1990년대 말 그다음에 2005년 이전.
◆ 김성회> 그때 유명했던 영화 저희들이 알 만한 거. 그러니까 알 만한 거 세계적으로 알려졌던.
◇ 박재홍> 박하사탕.
◆ 전양준> 올드보이, 박하사탕, 오아시스 많죠, 뭐. 홍상수 감독도 마찬가지고.
◇ 박재홍> 그래서 우리 위원장님께서 홍콩국제영화제를 가보시면서 우리 대한민국의 영화제의 필요성을 느끼셨다고 책에 적으셨던데.
◆ 전양준> 그 당시에는 가장 아시아에서 앞서나가고 있던 영화제가 역사도 그렇고 개방성도 그렇고 홍콩이 완전히 으뜸이었어요. 왜냐하면 영국 식민지를 거치기는 했지만 또 영국 식민지 기간 동안 배운 어떤 자유주의와 개방 이런 것들이 마음껏 영화제 정신에 깃들여져서 거의 놀라운 영화들을 홍콩 가서 봤던 거죠, 저희들이. 그래서 그때 타계했습니다마는 부산영화제를 만든 3명의 중요한 주역 중인 1명인 김지석 부위원장 같은 경우도 거기 가서 큰 충격을 받고 내가 아시아 영화 전문가로서 길을 가야 되겠구나 하는. 너무 놀라운 필리핀 영화를 봤던 거죠. 필리핀 영화는 지금 거의 존재 의미가 별로 없지만요. 1980년대, 90년대에는 놀라운 영화들이 나왔어요. 그래서 칸에서 계속 초대되면서 세계를 놀라게 한 그런 영화들이 걸작들이.
◇ 박재홍> 그렇군요.
◆ 김성회> 말씀 들어보니까 이게 정치적 민주화와 예술의 발전도 어떤 상관관계가 있어 보이네요.
◆ 전양준> 굉장히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아시아 전체가 거의 대부분이 지금까지도 권위주의 체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영화제는 물론이고 영화 발전이 굉장히 더딥니다. 일본조차도 눈치를 보고 웬만한 소리들은 다 피하고 그런 상황이니까.
◇ 박재홍> 영화제에서 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 위원장님께서 유명 감독을 초대하기 위해서 몸으로 부딪힌 에피소드가 굉장히 많더군요. 어떤 감독이 떠오르십니까?
◆ 전양준>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많은 여러 가지 유형의 감독들이 계신데요. 유명하신 분들을 말씀을 드리면 그중에는 약한 속물 근성이 있는 사람도 계셔서.
◇ 박재홍> 속물 근성. 이를테면.
◆ 전양준> 꼭 어떤 상을, 의미 있는 상을 줘야만 나는 간다, 이런 식의. 아니면 내 영화가 당신네 나라의 테리토리에서 배급돼서 내가 경제적인 이득을 얻어야 되는데 너희 영화제는 무슨 연계가 돼 있는가. 무슨 역할하는 것인가 이런 거랑 결부돼야 내가 가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 먼 데까지 가는가. 극동이잖아요, 그러니까. 북미에서 오기에 그리고 유럽의 중심부에서 오기가 멀단 말이에요.
◆ 김성회> 어떻게 설득하셨어요? 그때는 무슨 이메일도 없던 시절.
◆ 전양준> 그런 분들은 설득이 안 돼요. 그런 분들은 설득하는 방법은 저기밖에 없어요. 영화제로는 설득이 안 되고 지금은 한국영화 시장이 더 커졌습니다마는 아시아에서 극동에서 한국영화시장이 굉장히 크다. 웬만한 당신네 나라 시장보다 훨씬 크니까 그걸 보고 오시라.
◇ 박재홍> 미래를 보고 오시고.
◆ 전양준> 시장이 크다. 일본 왔다가 약간 들릴까 말까 하는 그렇게 보시지 마시고 그 정도여야 되지 그 이상은 설득이 안 돼요.
◆ 김성회> 현지 가서 하시는 경우도 있고 전화기를 들고 하시고. 어떻게 하셨나요, 그때는?
◆ 전양준> 전화기가 아니라 처음에는 팩스를 썼어요. 초창기 때는. 이메일은 최근인 거죠. 이게 얼마 안 됐죠. 팩스와 전화로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전화값이 굉장히 많이 나왔죠.
◇ 박재홍> 그러셨군요.
◆ 전양준> 그런데 대한항공 다닐 때 직원들한테 그걸 가르쳤는데 그걸 대중화시키지를 못했어요. 예전에는 팩스 이전에 텔렉스라는 게 있었거든요. 제가 대한항공 다닐 때 텔렉스 교본을 숙지했기 때문에 텔렉스가 굉장히 비쌉니다. 그래서 모든 영어 단어도 영어로 메시지를 작성하더라도 단어를 줄여야 돼요. 그래서 약자들이 있습니다, 모든 약자. 그다음에 시티, 예를 들어 도시명은 두 글자, 이런 식으로. 어크놀로지 같은 단어는 세 글자로 줄이거나.
◇ 박재홍> 영화제 준비하시면서 감독이랑 배우들이랑 에피소드가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숀 코너리 007의 명배우 숀 코네리와의 에피소드가 있다고 하는데 어떤 얘기였나요.
◆ 전양준> 정말 우연이었죠. 제가 뭐 굉장히 좋아하는 그런 배우는 아닙니다마는 굉장히 유명한 배우잖아요. 왜냐하면.
◇ 박재홍> 하기야 위원장님은 예술영화를 좋아하셨으니까요.
◆ 전양준> 왜냐하면 그분은 아무래도 여성들이 추앙하는 스타니까.
◇ 박재홍> 추앙 나왔습니다, 요즘 드라마 뭐 보시는지 알겠어요, 숀 코네리.
◆ 전양준> 우연히 많은 영화제를 다녔습니다마는 그 당시에도 안 가본 영화제가 이제 에든버러영화제였어요.
◇ 박재홍> 영국의.
◆ 전양준> 에든버러의 영화제도 관심이 있지만 프렌지페스티벌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아서 같이 볼 수 없었고요. 어쨌든 그 당시에 아시아에서 떠오르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해서 에든버러영화제의 여자 집행위원장 분이 관심이 좀 많았거든요. 그래서 교류를 원하셨고.
◇ 박재홍> 한국 영화제와.
◆ 전양준> 저를 초대했어요. 그래서 그때 공교롭게도 박찬욱 감독이 또 거기에 특별전 주인공으로 초대받으셔서 거기서 또 만났는데 우연히. 제가 묵고 있던 호텔은 힐튼호텔이었는데 힐튼호텔이 레이트가 비쌉니다. 에든버러성이 보이거든요. 캐슬뷰거든요.
◇ 박재홍> 전망이 좋다.
◆ 김성회> 초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군요.
◆ 전양준> 그 정도 호텔을 막 팍팍 줄 정도의 부유한 영화제가 아닌데.
◇ 박재홍> 위원장님을 보고.
◆ 전양준> 교류 때문에. 교류의 목적으로 아마 주신 것 같아요, 일부러 의도적으로. 그래서 왔는데 제가 체크인하는 날 그쪽에 늦게 밤에 근무하는 야간 경비를 맡고 있는 그런 접수계원이 아시아인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너스레를 떨면서 말을 많이 걸고 그러면서 일부러 더 물어보고 신문 무슨 신문을 넣을까요. 그렇게 질문받으면 무조건 가디언 그러거든요. 의식 있는 척하면서 가디언 달라고. 그런데 제가 잠시 그 사람이 작성을 완료하는 동안 벽에 클립핑 돼 있는 거, 신문 클립핑 돼 있는 걸 봤는데 숀 코네리 배우에 대한 기사가 현지 로컬 신문에 오려놓은 게 붙여져 있었어요. 보니까 거기에 에든버러의 아들이라고 이렇게 써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숀 코네리 별칭이 에든버러의 아들이래요. 에든버러 출신은 아닌데 그 인근에 아마 지방에서 태어나셨는데 거기서 목동을 하다가.
◇ 박재홍> 목동을 하다가.
◆ 전양준> 목동을 하다가.
◇ 박재홍> 양을 치다가.
◆ 전양준> 많은 여인들의 추앙을 받다가 더 이상 이 목동생활 계속하면 당신은 생명이 위태롭다. 빨리 런던으로 가라는 둥 조언에 따라서 런던에 가서 배우가 된 거예요, 자기의 길을 찾은 거죠.
◇ 박재홍> 너무 잘생겼으니까.
◆ 전양준> 오히려 자기의 장점을 승화시킬 수 있는 그런 직업을 찾은 거죠. 그런데 그분을 거기서 만나게 될 거라는 것은 생각도 못 했어요. 그 얘기를 듣고. 그 다음 날. 추앙받는 숀 코네리가 나갈 준비하고 하고 샤워도 하고 그러는데 도착한 다음 날이었는데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계속 울린 거예요. 너무 이상해서 문을 열고 빼꼼 보니까 옆에 할머니분이, 영국 할머니가 나오시더니 너 지금 그러고 있으면 안 돼 빨리 내려가야 돼. 그래서 이거 뭐냐 그러니까.
◇ 박재홍> 불이 났다.
◆ 전양준> 불이 났어 빨리 피해야 돼. 그러면서 아주머니가 여유 있게 빨리 안 움직이시고.
◇ 박재홍> 그때 숀 코너리가 도와줬습니까?
◆ 전양준> 아니요. 그때는 긴가민가 하고 있었는데 또 울려서 결국은 내려가게 됐죠. 내려가서 사람이 웅성웅성하고 있는데 이제 잠시 후에 인근 소방대의 대장이 와서 설명을 하는데 화재경보기 훈련이고 실제 상황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움직이셔야 된다. 그런 얘기를 해 주고 가는데 그때 이제 숀 코너리 씨가 계단에서 내려왔어요.
◇ 박재홍> 영화처럼.
◆ 전양준> 갑자기 고음의 목소리들이 탄성을 내뱉는 목소리들이 밑에서 들리더니 아주머니들이 대거. 그래서 시선을 돌려보니까 그분이 내려온.
◇ 박재홍> 위원장님과 대화를 나누신 것은 아닌 거군요.
◆ 전양준> 본 거죠.
◆ 진중권> 화재 훈련을 같이 하신.
◇ 박재홍> 숀 코너리와 화재훈련을 같이하신 썰 함께 들어봤습니다. 요즘 또 우리 영화배우들, 특히 여배우들이 국제영화제에서 막 주목받고 있습니다. 윤여정 씨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기도 하고. 말씀 들어 보니까 파친코 캐스팅 원래 윤여정 씨가 아니었다고 하는데 세계적인 국제영화제에서 우리 배우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또 뭐라고 보십니까? 최근에 더더욱.
◆ 전양준> 아무래도 오랜 연기생활 끝에 쌓인 내공 탓이라고 보는데요. 그런데 그런 배우들은 적지 않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그런데 주목받고 이유는 한국영화가, 한국 문화가 주목을 받고 있거든요.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게 아닌가.
◆ 김성회> 왜 지금 한국 영화이고 한국 드라마이고 그럴까요? 넷플릭스도 그렇고 여러 군데에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거든요. 원래 미국 사람들 같은 경우는 자막 있는 영화 보통 많이 잘 안 보는데 그런 것들 흡수하고 그러는 것들 중에서 한국영화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꽤 돼보이거든요.
◆ 전양준> 일단 경제와 산업 논리로 아마 이해를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일단 한국의 감독들과 기술팀들이 만들어내는 수준이 가성비죠. 제작비 대비해 굉장히 수준이 높습니다. 할리우드의 영화인 관점에서 볼 때. 그러니까 우리 같으면 제작비가 5배 이상 들어갈 텐데 이 정도 만들어내네?
◆ 진중권> 인력들이 얼마나 고생하겠습니까?
◆ 전양준> 그리고 이게 좋은 거죠, 그러니까. 상당히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하고 있으니까요. 지금 영화 쪽의 기술팀들 촬영 뭐 이런 기술팀들은 굉장히 고연봉을 받고 있어요.
◇ 박재홍> 그렇군요.
◆ 전양준> 과거와 완전히 다릅니다, 1980년대랑 90년대랑 완전히.
◇ 박재홍> 윤여정 씨 얘기 했습니다마는 우리 국민들이 느끼기에 어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연기를 인정받았던 첫 분으로 우리가 기억하는 건 강수연 씨일 것 같아요. 강수연 씨가 아프시다고 며칠 전에 어제였나요. 뉴스도 나오고 있는데. 위원장님이 잘 아시고 부산국제영화제하고도 인연이 많으시잖아요, 강수연 씨가.
◆ 전양준> 와서 집행위원장도 한참 동안 활동하셨죠.
◇ 박재홍> 배우로서 기억이 있으실 것 같아요. 혹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함께.
◆ 전양준> 연기자로서는 대단한 분이죠. 아주 젊은 어린 나이부터 아주 출중한 그런 연기 능력을 갖다가 보여줬고 또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이 말해 주듯이 1980년대 말이잖아요.
◇ 박재홍> 그렇습니다.
◆ 전양준> 거의 한국의 존재 가치가 없을 때 거의 개인이 완전히 K-시네마를 완전히 인식시킨 건데. 어쨌든 부산영화제를 또 중도 하차하셔서 그만두시고 나가서 약간 좀 고립된 생활을 하시다가 이런 일을 당하시게 돼서 너무너무 안타깝습니다.
◇ 박재홍> 영화계 동료로서 안타까운 마음 들려주셨고요. 영화 얘기하다 보니까 시간이 거의 다 돼서요. 이거 참 안타까운데 우리 대한민국의 영화제가 부산국제영화제 어떤 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것도 있지만 전주영화제도 있고 부천판타스틱영화제도 있고 제천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런 영화제들이 전 세계 상품으로 돼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영화제들이 어떠한 보완을 하면 세계적인 산품으로 될 수 있을지 말씀 듣고 마무리할게요.
◆ 전양준> 지금 영화제들이 영화제마다 어떤 그런 차별성. 그다음에 성격 이런 것들이 다양하게 차별화돼 있기는 한데요. 하나 문제점이 한국의 영화제 구조, 인력 같은 것들이 일반 한국영화 산업이랑 비슷합니다. 생산성이 좀 낮아요. 그래서 지나치게 많은 인력들이 소요되고 있고 그래서 영화제 예산을 크게 대변해서 보면 사업비와 경상비 둘로 나눠지는데 예산 전체에서 차지하는 그 경상비 비중이 높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사업활동이 적으니까 똑같은 예산으로. 생산성을 높여야 되지 않나. 너무 경제적인 관점에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창의성이랑 연계되거든요. 창의성을 발휘해서 굉장히 독특한 사업들을 많이 전개를 해야 되는데 그게 약간 정체 상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제 역사가 도입된 지 27년이 됐는데 조금 그런 문제에 대해서 좀 집행부들이, 각 영화의 집행부들이 자세히 들여다봐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 박재홍> 그 영화제마다 특성뿐만 아니라 어떤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한 조언까지 해 주셨어요. 시간이 많이 아쉽네요. 함께하신 분 전양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전양준>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5/6(금) “한국영화 세계적 성장의 비밀? 사라진 검열”
202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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