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의 한판승부

표준FM 월-금 18:00-19:30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5/5(목) 가수 김창완 "산울림 45년 내 창작의 힘? 평정심과 망연자실"
202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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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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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한판승부> FM 98.1 (18:25~20:0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김성회 소장
■ 대담 : 가수 김창완

◇ 박재홍> 오늘 어린이날입니다. 앞서 예고해 드린 대로 한판승부 2부는 어린이날 특집 인터뷰로 준비를 했는데요.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서 개구쟁이라는 그림책을 출간하신 분입니다. 글도 쓰시고 연기도 하시고 노래도 하시고 심지어 DJ도 22년째 하고 계시는 우리들의 영원한 아티스트 김창완 씨를 초대해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

◆ 김창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초대해주셔서.

◆ 진중권> 진중권 작가님과 김성회 소장님.

◆ 김성회> 안녕하세요.

◆ 진중권> 안녕하세요, 너무 반갑습니다.

◆ 김창완> 안녕하세요, 팬입니다.

◇ 박재홍> 저희도 팬입니다. 우리 선생님, 1977년에 산울림으로 데뷔를 하셨고 올해로 데뷔 45주년.

◆ 김창완> 45년 됐는데 지금 산할아버지 이렇게 전주 나오니까 저기 종로 5가 시절 생각이 납니다.

◇ 박재홍> CBS 종로 5가에 있었죠.

◆ 김창완> 그때 꿈과 음악 사이를 진행하고 그랬었기 때문에 인연이 깊죠.

◆ 진중권> 그런데 데뷔곡이 처음에.

◇ 박재홍> 아니 벌써

◆ 진중권> 아니 벌써였죠? 제가 중학교 때 1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아니 벌써.

◇ 박재홍> 77년에 중학생이셨군요, 진 작가님.

◆ 진중권> 중학교 2학년.

◇ 박재홍> 45주년 되셨는데 어떠세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현역으로 방송을 하시고.

◆ 김창완> 글쎄요, 숫자로는 그런데 그렇게 긴 세월처럼 느껴지지 않네요.

◇ 박재홍> 그러세요? 라디오 DJ도 22년째 하시는데.

◆ 김창완> 한 프로그램만 지금 22년이니까요. 그것도 꽤 됐는데 뭐 어제오늘 같아요.

◇ 박재홍> 그러세요. 대단하세요.

◆ 김성회> 그게 젊음을 유지하시는 비결이시니까.

◆ 김창완> 글쎄요. 요즘에 자전거 타고 방송국에 와요. 편도가 한 21km 정도 되는데 그것도 어쨌든 건강해야 하니까. 그것도. 특히 아침 방송이라 좋았던 것 같아요.

◇ 박재홍> 일단 무조건 일찍 일어나야 된다.

◆ 김창완> 일찍 일어나죠. 6시 반이면 일어나요. 매일.

◇ 박재홍> 그 전날 규칙적인 삶을.

◆ 김창완> 규칙적으로 요새도.

◇ 박재홍> 약간 절제하시는.

◆ 진중권> 어제만 빼고.

◇ 박재홍> 어제만 빼고. 오늘 모신 이유이기도 한데 어린이날을 맞아서 아이들을 위해서 선물을 들고 나오셨어요. 개구쟁이 그림책을 출간하셨어요. 제가 들고 있는데 직접 책 설명을 우리 선생님께서 해주실까요?

◆ 김창완> 책 설명. 그냥 개구쟁이 노래에 담겨 있던 표지를 책 표지로 썼는데요.

◇ 박재홍> 선생님이 디자인하셨던 거죠?

◆ 김창완> 제가 직접 크레파스로 그린 거예요. 그런데 저도 사실 원화가 집에 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찾아보니까 있더라고요. 고스란히 액자에 담겨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복원해냈는데 사실 내용은 개구쟁이라는 노래는 가사도 짧고 내용도 별개 없어서 제가 썼던 수필집 ‘이제야 보이네’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을 좀 담아냈어요. 앞에는 보물지도같이 지도도 그리고.

◇ 박재홍> 맞아요.

◆ 김창완> 제가 살던 동네는 아닙니다.

◇ 박재홍> 그러셨어요?

◆ 김창완> 어느 동네나 가면 공동묘지도 있고.

◇ 박재홍> 한약방 할배도 있고. 무당집 있고 대나무 뒤에 가끔 칼춤 추는 거 보고. 그랬던 추억들을 담아냈어요.

◆ 진중권> 저녁 시간에 매일 벌어졌던 일이지 않습니까? 밥 먹으라고. 우리는 더 놀아야 되는데.

◆ 김창완> 그렇죠. 그런 풍경들.

◇ 박재홍> 그래요. 이어서 개구쟁이 책을 들고 나오셨는데 오랜만에 선생님이 개구쟁이 산울림의 노래 잠깐 듣고 동심에 젖고 다시 얘기를 이어갈까 합니다. 어린이날을 맞아서 개구쟁이라는 책을 또 아이들에게 선물하시기 위해서 갖고 오신 김창완 선생님 함께하고 있고요. 개구쟁이 노래 들었습니다. 언제 들어도 신나요. 우리 진중권 작가님이 저희 방송 하면서 신나하는 표정을 짓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 김성회> 이 곡의 작곡이 누구셨나요?

◆ 김창완> 작곡이 저입니다. 그 당시에 저희가 아니 벌써를 발표를 하고 났는데 사실 1, 2집 발표할 때쯤에는 1972년, 그러니까 열여덟, 열일곱 이럴 때 작곡됐던 노래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것 발표하고 나니까 이거 우리가 그냥 기성가요 흉내 내는 거 아닌가. 왜냐하면 사실 애인도 없고 그런 것도 없는데 가요 흉내를 낸다고 하며 헤어졌네 뭐 주단을 깔아놓겠네 그랬잖아요. 좀 민망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 앨범 나오자마자 바로 이러지 말고 진짜 우리 속에 담긴 노래를 만들어야 되겠다. 그리고 동요를. 동요가 아니라 그런 노래를 만들었는데 이제 겨우 동요풍의 노래가 나온 거예요. 그게 개구쟁이 앨범이었어요.

◆ 진중권> 원래 동요로 의도한 건.

◆ 김창완> 동요를 의도한 건 아니고요. 그런데 그때 원래는 제가 이런 노래를 작곡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어린이들도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록밴드가 하자. 이렇게 해서 시작이 된 건데 찾아보니까 그때 의외로 어린이들 동요 중에서 우리도 몰랐는데 번안곡들이 많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이렇다면 우리가 만들어보자 그랬던 거죠.

◆ 김성회> 제가 아주 옛날에 우리 형님이신 김창완 선생님 인터뷰하셨던 것들을 봤던 기억이 나는데 작곡을 어디서 배웠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제가 그 답변을 보고 좌절했던 기억이 나요. 뭐라고 답변하셨냐면 아니, 작곡은 고등학교 때 음악시간에 화성을 배우지 않느냐. 나는 그걸 그냥 외우려고 배웠지. 그걸 배워서 그래서 자기는 거기서 작곡을 배웠다. 그래서 그다음부터 그것에 기초해서 작곡을 했다는 말씀을 제가 봤던 기억이 있어서.

◆ 김창완> 맞아요. 그런데 타고난 재능이 있었어요. 있기는. 그때 음을 듣고 이렇게 그걸 채보를 하더라고요.

◇ 박재홍> 절대음감이군요.

◆ 김창완> 그러니까 그런 재주가 있었죠.

◇ 박재홍> 그래요. 0515님이 라디오계의 방정환 선생님입니다.

◆ 진중권> 이게 학교 교육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의 실패였어.

◇ 박재홍> 너무 친숙해서 만나면 아는 체 할 것 같다고 글을 주셨는데. 책 얘기를 다시 해 보면 이제 작가의 글에서 이런 대목이 있네요. 어린 시절에 두고 온 게 너무 많다. 다시 챙기려 돌아가려니 길이 멀고 가던 길을 가려니 자꾸 돌아보게 된다고 쓰셨는데 어떤 의미였을까요?

◆ 김창완> 이렇게 돌아보니까 저는 이제 은로국민학교를 다녔는데요. 학교 주변에 그 뒤에 고아원도 있고 그 언덕 넘어가면 이제 국립묘지였어요. 흑석동이었는데 그래서 다녔는데 진짜 고양이처럼 맨날 다니던 길만 다녔던 거죠. 그러고는 어른이 돼버린 거예요. 사실 못 가본 길이 얼마나 많은지. 지금 돌이켜보니까 서문에도 썼지만 “우리가 놓고 온 거. 어린이날 놓고 온 것에 대해서 이 책을 바친다” 그런 얘기를 했는데요. 어린 시절이 프로스트 시처럼 안 가본 길들이 너무 많아서 지금 여기다 그냥 담아본 거예요.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런데 그 문장이 너무 여운이 많아서 그래서 선생님께 질문을 드려봤고요. 책에 보면 엄마의 밥 먹어. 이 얘기가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어릴 때 참 여전히 많이 듣고.

◆ 김창완> 자라.

◇ 박재홍> 자라. 안 자죠.

◆ 김성회> 저는 엄마 말씀 듣고 9시에 꼭 잤는데.

◇ 박재홍> 그랬어요?

◆ 김창완> 그랬어요.

◇ 박재홍> 와라, 들어와서, 밥 먹어라.

◆ 진중권> 밥도 거르고 놀다가 가면 엄마가 밥을 남겨주시잖아요. 하필 또 라면이었어요. 퉁퉁 불은 거. 그거 먹던 기억들.

◇ 박재홍> 요즘은 밥을 줘도 안 먹지만 과거에는 밥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거 아닙니까, 삶에 있어서.

◆ 김창완> 생명이죠. 밥 먹어라.

◇ 박재홍> 밥 먹어라.

◆ 김창완> 밥은 어떻게 보면 요즘에는 진짜 밥상머리에서도 식구들이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서 먹기 그렇잖아요.

◇ 박재홍> 그렇습니다.

◆ 김창완> 그런데 밥상머리에 앉으면 밥상 예절이 있고 김 같은 거 먼저 빼도 안 되잖아요. 어르신 먼저 드셔야 되고.

◇ 박재홍> 그렇죠.

◆ 김창완> 그렇죠. 그런데 요즘에는 사실 아이들도 다이어트하니까. 또 밥이 주는 그 정겨움이 또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엄마나 이런 어떤 단어처럼 그런 정서들을 좀 담아보려고 했어요.

◇ 박재홍> 책 보신 분들이 어떤 반응 많이 보이나요?

◆ 김창완> 아직은 뭐 반응까지는 아니고요.

◇ 박재홍> 그런가요. 책 보니까 아이들에게도 어떤 이야기든 좋다고 반응을 보여달라고 출판사에 엽서도 동봉돼 있더군요.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이 책을 보고 기뻐하고 또 동심을 얻으면 좋겠어요.

◆ 김창완> 그런데 바람인데 사실은 아이들한테 혹시나 어른으로서 강요하는 것 아닌가 이런 우려도 없지 않아요. 또 이런 정서를 강제하면 안 좋은데 이런 생각도 없지는 않습니다. 너무 라떼만 찾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하고.

◇ 박재홍> 그 말씀마저 따뜻합니다. 인터뷰하신 거 보니까 선생님께서 아이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많다 하셨어요.

◆ 김창완> 정말 미안해요. 제일 미안한 건 저희 어렸을 때는 어르신들 말을 들어야 된다는 것도 있었지만 어르신들이 다음 세대나 다음 아이들이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확고한 신념이나 가치관들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하루가 다른 세상이니까 스스로 어떤 세상이 될지 모르는데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어른들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 박재홍> 불안하죠.

◆ 김창완> 그렇죠. 진짜 돛대고 없고 사대도 없는 그런 항해일지 모르죠. 그게 참 안타까워요. 왜 이렇게 어리둥절한 세상을 만들어놨을까, 그런 자책이 있어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 박재홍> 그래서 그 책을 통해서 또 아이들에게 동심을 선물하고 계시는데 책 내용을 보니까 송아지 태어난 순덕이네. 칠성이네 지붕에 알을 낳은 참새. 정순네 마루 밑에 농약 먹고 있는 아픈.

◆ 진중권> 많이 봤던 장면.

◆ 김성회> 옛날에 그렇죠? 걔들 농약 먹으면 새파래져서 마루 밑 구멍에 들어가 있고.

◆ 진중권> 그냥 기름을 먹여서 토하게 하고.

◆ 김창완> 맞아요.

◇ 박재홍> 완전히 공감하시네요, 우리 진 작가님.

◆ 김창완> 그런데 어렸을 때 저는 버스에 강아지들이 치이고 그러니까 그 치인 강아지를 부둥껴 안고 아줌마가 우시는데 아주 곡을 하시는 거예요. 어린 마음에 짠하더라고요. 그런 풍경들 많았죠.

◇ 박재홍> 그렇군요. 이름들은 선생님 어린 시절 친구들 이름인가요, 아니면 그냥 지어내신 건가요?

◆ 김창완> 지어낸 거예요.

◇ 박재홍> 그런가요?

◆ 김창완> 정순이는 있었고.

◇ 박재홍> 그렇군요. 책을 내지 않으셨는데 지금까지 동시가 200점이 넘는다고 들었는데.

◆ 김창완> 동시는 많이 썼어요. 여기 지금 CBS 오다가 횡단보도 있는데 거기에 떨어져 있는 신발 하나 보고도 쓴 게 있고요.

◇ 박재홍> 그래요.

◆ 김창완> 신발 한짝 떨어져서 울고 있는데 아무도 안 쳐다보네. 이런 글이 있어요.

◇ 박재홍> 삶을 보시면 다 시상이 떠오르시나 봅니다, 선생님.

◆ 김창완> 그건 아니고요. 그런데 점점 안 써져요.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런데 뭐랄까. 아까도 뭔가 강요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이런 말씀하셨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제 기성세대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고 또 아이들의 언어를 찾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잘 전달하시고 또 파악하시고 발견하시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생각을 하시는지.

◆ 김창완> 글쎄요. 곡을 쓰거나 시상을 떠올릴 때 제일 필요한 건 이렇게 평정심 같아요.

◇ 박재홍> 평정심.

◆ 김창완> 이렇게 고요한 가운데 뭐가 이렇게 파도도 보이고 바람도 보이고 이런 거기 때문에 뭐랄까 번민을 걷어내는 것.

◇ 박재홍> 번민을 걷어내는 것.

◆ 김창완> 뭐 그런 것들이. 아이들. 요즘에 저는 그림 캔버스 앞에 자주 서는데요. 캔버스 앞에서 망연자실한 그 상태를 참 즐겨요. 뭘 그려야 좋지? 또 이런 거. 왜 아무 생각도 안 나지. 그리고 뭘 그리려고 하면 왜 그걸 그리고 싶지. 이런 것들에 대한 질문이 그런 것들이 이렇게 순수에 다가가는 방법이 되는 것 같아요, 저 나름대로. 그래서 그런 망연자실한.

◇ 박재홍> 망연자실한.

◆ 김창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이런 상태에다 저를 자주 놔봐요. 거기서 이제 떨어진 신발도 보이고 옛날에 들었던 반봉오 소리도 들려오고 빨리 자라도 들리는 것 같고 요즘에는 도저히 들어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그럴 때 조금씩 들리는 것 같아요.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노래를 만드시니까 지금까지도 산울림의 노래가 모든 세대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김창완> 오늘 너무 올라가는데.

◆ 진중권> 저도 사실은 모르겠습니다, 이게. 옛날에 어린 시절 있지 않습니까? 그게 이제 계속 남아서 저는 어떻게 했냐면 어렸을 때 정말 돈이 없어서 못 해봤던 것들을 요즘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옛날에는 하루에 용돈을 10원을 받는데 하다못해 플라스틱 조립모델이라든지 뭐 있지 않습니까? 차임벨 전자 이런 부품들 하나 사려면 한 달을 모아서 그걸 사곤 했었는데 요즘에 그걸 하면서 즐거워하거든요. 아까도 말씀하신 것처럼 어렸을 때 참 가봤어야 하는 길인데 못 가봤던 게 한으로 남는 것 같고 죽기 전에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좀 들더라고요.

◇ 박재홍> 김창완 선생님, 어릴 때 어떤 어린이이였나요?

◆ 진중권> 궁금해요.

◆ 김창완> 저는 얌전했던 것 같아요. 혼자 있었던 시간이 생각이 많이 나고. 이런 봄철이면 허약했었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하늘이 노래져서 그래서 헛배 부르고 그랬던 시절이. 그리고 막.

◆ 진중권> 영양실조 아닙니까? 원래.

◆ 김창완> 맞아요.

◆ 진중권> 저도 어렸을 때 그랬다고 하는데.

◆ 김창완> 영양실조였어요. 그래서 제가 처방받은 게 번데기였어요. 한약방에 갔더니 얘 번데기 먹이라고. 그래서 번데기 먹고 좀 나아졌거든요. 그런데 그런 어지럼증, 또래보다 조금 학교를 일찍 가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런 기억들. 즐거웠던 기억보다는 이제 그런 게 더 많아서 조금 사색적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런 사색이 라디오 진행자로서 굉장히 장점으로 작용해서 오랜 시간 청취자를 만나고 계시는데 보통 창완 아저씨, 창완 형님 이렇게 불리시더군요. 어떤 호칭이 제일 끌리세요.

◆ 김창완> 제가 데뷔했을 때가 스물몇 살인데 그때 이제 삼촌, 이모 따라서 저희 노래를 듣던 어린이들한테는 아저씨뻘이니까. 저는 진짜 스물몇 살부터 아저씨 소리를 들었어요. 그냥 그래서 계속 창완 아저씨예요. 한 번 아저씨 되니까. 요새도 그게 제일 편해요.

◇ 박재홍> 창완 아저씨. 그렇군요. 우리 김성회 소장님이 아까 김창완 선생님 노래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했는데 지금 어떤 노래.

◆ 김성회> 저는 산울림 노래 중에는 길이라는 곡을 되게 좋아하는데요. 마침 오늘.

◆ 김창완> 그거요? 그 노래 좋아하시는 분 처음 만난 것 같아요.

◆ 김성회> 그런데 아까 전에 하셨던 말씀이랑. 저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가사가 13살 이후로 젊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작은 오토바이 한 대 그리고 어제 산 주간지 한 권이 전부, 이렇게 해서.

◆ 김창완> 저도 가난했어요.

◆ 김성회> 날씨는 좋았다 끝이 없다 이러면서 그때 제가 중학교 때 들었는데 오토바이를 살 형편도 아니고 몰고 다니지도 못했지만 그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안 가본 길을 가봤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불러일으켰던 곡이기도 하고. 사람이 독립하는 나이가 13살이라는 기준이 생긴 노래기도 하고. 그러니까 13살 이후로 젊다는 생각을 안 해봤다는 얘기는 그날 이후로는 부모님 얘기 안 듣고 마음대로 살았다는 얘기 아닙니까? 저는 그런데 저도 그때 되게 공감했어요. 이제부터는 내가 내 인생 사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노래라 그때도 곧잘 좋아했고 지금도 곧잘 머릿속에 떠오르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 김창완> 아이고.

◇ 박재홍> 노래가 인생에 메시지를 줬군요.

◆ 김성회> 저한테도 13살 기준점이 잡혔던.

◆ 진중권> 저는 어두운 거리를.

◆ 김창완> 독백, 독백.

◆ 진중권> 1982년 4월 28일 새벽에 4월 27일이 생일이지 않습니까? 전날에 축하주를 신나게 마시고 친구랑 둘이서 김포 가도를 걸어가면서 집까지 오는데. 바람이 부는데 친구가 그 노래를 불렀어요. 그래서 아직도 그 노래가 너무 좋아요. 그 친구 지금 세상에 없거든요.

◆ 김창완> 그래요?

◆ 진중권> 네.

◆ 김창완> 저는 김포 가도는 대학 졸업하고 처음 직장. 면접이 이제 합격이 됐어요. 그때도 아주 구직난이 심했거든요, 대학생들. 그런데 오라는 거예요, 면접 보러. 그런데 집은 흑석동인데 차비를 달래, 어머니한테. 어머니한테 차비를 달라는 게 싫은 거예요. 그래서 거기까지 걸어갔잖아요. 갔다 오니까 해졌어요. 떨어졌지만, 그때도.

◆ 김성회> 떨어뜨린 사장님 너무 고맙네요, 진짜.

◇ 박재홍> 선생님이 아이들의 사랑이 깊으신데 어릴 적에 어린이날에 아이들하고 어떻게 놀아줬는지 궁금하다는.

◆ 김창완> 어린이날이요?

◇ 박재홍> 어린이날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주셨는지 궁금하다.

◆ 김창완> 저 그렇게 다정다감한 아빠가 아니었어요.

◇ 박재홍> 그러셨어요?

◆ 김창완> 그래도 뭐 어린이날이라고 챙겨준 건 없지만 그래도 아이랑 자전거 여행도 하고.

◇ 박재홍> 자상하신데요.

◆ 김창완> 기차 여행도 하고 그런데 저는 상처받았어요. 그때 이제 애들 데리고 기차여행이라고 춘천 쪽인가. 간이역에서 내렸는데 애가 인상을 팍 쓰더니 아, 똥냄새 이러는 거예요. 기껏 데리고 나왔더니 그래서 상처받았어요, 그때 일로.

◇ 박재홍> 역시 좋은 아빠가 되기는 굉장히 힘들군요.

◆ 김창완> 힘든 것 같아요.

◇ 박재홍> 오늘도 수많은 아빠들이 어린이날을 맞아서 상처를 받고.

◆ 진중권> 좌절을 하고.

◆ 김창완> 지금도 오다 보니까.

◇ 박재홍> 아빠 얼굴들.

◆ 김창완> 애들 손잡고 유모차 끌고 많이들 나오셨더라고요.

◆ 진중권> 다 자기 시대에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문제는 그 시대가 지난 거죠.

◆ 김창완> 그러니까요.

◇ 박재홍> 참 좋은 아빠가 되기도 어렵고 좋은 자녀가 되기도 어렵고 굉장히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김창완 선생님을 보내드릴 시간이 됐는데 청취자들이 아쉬울 것 같아서 선생님 노래 한 곡을 더 들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명곡이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어려웠는데 선생님께서 직접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산울림의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를 골라주셨는데요. 이 노래를 선곡해 주신.

◆ 김창완> 그런데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운다는 게 사실 어른들로서는 어떻게 보면 좋은 어른이 되는 첩경일 텐데 그게 쉬운 노릇이 아닌 것 같아요.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지. 사실 어른들 스스로도 잘 모르잖아요.

◇ 박재홍> 어른들도 자유롭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 김창완> 그러니까. 그런데 이 노래는 사실은 그런 모든 여태까지 틀이나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해체하는 거예요.

◇ 박재홍> 틀을 해체하는 것.

◆ 김창완>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논리가 생길 것 같으면 그걸 파괴하면서 작사를 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틈새에서라도 자유로웠으면 하는 생각에서 선곡을 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수박으로 달팽이를 타자, 비눗방울로 집을 짓자. 이런 가사들은 논리적으로 해석하면 안 되고 마음으로,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 김창완> 그러니까 아이들이 이게 무슨 노래야. 이렇게 하는 게 저는 제대로 감상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노래야? 제발 그렇게 듣기를 바라는 거예요.

◇ 박재홍> 이것도 노래야? 이 반응이 정상이군요.

◆ 진중권> 정말로 이렇게 놀이할 때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야 될 부분이 너무나 많았잖아요.

◆ 김창완> 그렇죠.

◆ 진중권> 그런데 요즘 많이 사라져서 아쉬워요.

◆ 김창완> 저희는 진짜 딱지, 구슬 갖고 살았어요. 그냥 진짜 무수한 변화가 있는 놀이고 이런 것 같은데 요즘에는.

◇ 박재홍> 학원에 싸여 있고 아이들이.

◆ 진중권> 놀지 못하니까.

◇ 박재홍> 놀지 못하니까.

◆ 김창완> 그런데 어른들이 왜 애들을 그렇게 얽어매는 거죠?

◇ 박재홍> 공부를 시켜서.

◆ 진중권> 자기가 공부 못한 걸 애들한테.

◇ 박재홍> 한을 해소.

◆ 김창완> 굳이 한풀이를 왜 거기다 해요? 진짜로. 그러니까 저는 아이들한테, 아이들이 행복하기 바라서 그러겠죠. 그런데 그것보다는 어른이 먼저 스스로 행복해지시고 지금 이렇게 개구쟁이. 아이들한테 권하기보다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 박재홍> 굉장히 좋은 말씀이네요. 어른들이 행복하고 어른들이 동심을 회복하면 함께 있는 아이들도 행복할 것이다.

◆ 김창완> 그렇죠.

◇ 박재홍> 우리 김창완 선생님의 노래.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이 노래를 들으면서 선생님이랑 여기서 인사를 하고 보내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영원한 개구쟁이, 가수 김창완 씨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 진중권> 고맙습니다.

◆ 김창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