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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한판승부> FM 98.1 (18:25~20:0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김성회 소장
■ 대담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 박재홍> 대한민국 최장기라고 하죠.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소금꽃나무 김진숙 씨가 오늘 복직했습니다. 해고된 지 37년 만의 일인데요. 지난 2011년에는 309일 동안 크레인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인 뒤에도 동료들은 모두 공장으로 돌아갔지만 회사의 반대 때문에 김진숙 씨만은 복직을 하지 못한 바 있죠. 그런데 지난 23일 HJ중공업과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명예복직과 퇴직에 합의하는 서명식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복직행사가 있었는데요.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봅니다. 위원님 안녕하세요.
◆ 김진숙> 안녕하세요.
◇ 박재홍> 꿈에 그리던 복직입니다. 그토록 외치고 싶었던 “저 복직했어요”라는 말씀 저희 청취자들에게도 해 주시겠습니까?
◆ 김진숙> 저 김진숙, 오늘 37년 만에 복직했습니다.
◇ 박재홍> 너무 축하드립니다.
◆ 김진숙> 고맙습니다.
◇ 박재홍> 복직 소식 처음 들으시고 어떤 마음 드셨어요?
◆ 김진숙> 처음에는 실감도 안 나고 꿈같고 이랬는데 막상 오늘 이제 행사를 해 보니까 비로소 내가 공장에 37년 만에 들어가서 일했던 공장들도 돌아보고 그리고 행사를 끝내고 나니까 비로소 실감이 나네요.
◇ 박재홍> 사실 37년이라는 숫자가 정말로 저희가 상상할 수 없는 기간 아니겠습니까?
◆ 김진숙> 그렇죠.
◇ 박재홍> 강산이 3번이나 변하는 동안 회사 이름도 대한조선공사에서 그리고 한진중공업 그리고 HJ중공업으로 3번이나 사명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오랜 세월 우리 위원님 어떻게 지내오신 겁니까?
◆ 김진숙> 해고자의 삶이라는 게 사실 보통의 정상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다 빼앗긴 삶들이니까 여러 가지로 결핍된 채로 살기는 했지만 그중에서도 하여튼 제일 꿈에도 그렸던 게 복직이고 그 희망들을 37년을 포기하지 않고 지니고 있었던 게 오늘 결실을 맺어서 그것도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이루어냈다는 게 고맙고 감격스럽죠.
◇ 박재홍> 오늘 행사 무대에서 말씀하시면서 많이 우셨잖아요. 왜 그렇게 많이 우셨어요?
◆ 김진숙> 그냥 복받치는 게 많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때 해고됐을 당시에 두드려 맞고 끌려가고 하여튼 많이 맞았거든요, 그때는. 사람 취급 못 당하고 나타나기만 하면 때리는 게 일이었으니까. 그때는 내일은 안 올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그걸 1년을 계속했었거든요, 그때 당시 출근 투쟁을. 그런 생각들도 많이 나고. 그 세월들이 정말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더라고요. 그런 순간들이 너무 아프기도 하고 왜 이렇게까지 한 인간이 고통을 오랜 세월을 고통을 받아야 했나 하는 생각들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 박재홍> 예전에 일했던 곳을 보시면서 어떤 마음이 드셨을지 궁금해요. 이제 과거에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 똥 싸는 곳에서 밥 먹고 일하고 너무 열악했다, 이런 말씀해 주셨잖아요. 지금은 어떤가요, 노동 현장이?
◆ 김진숙> 많이 달라지기는 했어요. 제일 눈에 띄었던 게 사람이 없는. 그러니까 그동안 한진중공업이 수주를 안 받았거든요. 의도적으로 수주를 안 받기도 했고 공장을 어쨌든 폐쇄를 하고 싶어 했으니까. 그래서 비어 있는 야드들, 작업장들을 보니까 마음이 아프기도 했는데 또 한편으로는 변화된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화장실도 생기고 어쨌든 식당도 생기고 그리고 작업하는 현장들도 예전보다는 훨씬 정리된 게 깔끔하게 보이고 그런 정리된 현장들이 단순히 어떤 사측의 개선의 노력들보다는 노동조합이 이제 민주화되면서 안전에 대한 것들, 워낙 조선소에는 다치거나 죽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리고 그런 것들을 일하는 사람들이 제일 잘 알잖아요. 어떤 게 위험하고 어떻게 하면 덜 다칠 수 있는 것들을 현장에서 제일 잘 아니까 그런 것들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들이 생긴 거예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바꿔낼 수 있는 힘들이 있었던 거고. 그렇게 깔끔해진 현장들이 눈에 많이 띄더라고요.
◇ 박재홍> 37년 전 우리 김진숙 위원님께서 뿌렸던 한 알의 밀알이 하나씩 조금씩 열매를 맺고 있다, 이렇게 보면 될까요?
◆ 김진숙> 제 노력이었다기보다는 하여튼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노력했고 그리고 그걸 또 바꿔낼 수 있는 힘인 노동조합이 있었고 그런 결실들로 보는 거죠.
◇ 박재홍> 아닙니다. 오늘만큼은 김진숙 위원님의 그 눈물, 땀, 피 때문에 그런 것이다라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김진숙> 고맙습니다.
◇ 박재홍> 오늘 푸른 작업복 그리고 안전모를 쓰시고 행사에 참석하셨어요. 그런데 말씀하실 때 옛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미래로 가십시오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의미였을까요?
◆ 김진숙> 한진중공업 시절이 현장이 열악했던 것보다도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들이 너무 심했거든요. 그걸로 인해서 또 죽은 사람들이 많고 구속됐던 동지들이 너무 많았었으니까 그런 과거를 저한테 묻어두고 정말 여러분들은 활기차고 노동이 존중받는 그런 세상으로 가주십사 하는 바람이고 희망이고 당부였습니다.
◇ 박재홍> 저는 무엇보다 가장 가슴 울렸던 것은 첫 노조이자 생애 마지막 노조인 금속노조, 한진조합원의 동지였다는 게 가장 빛나는 명예고 사랑이었다는 말씀이었는데 어떻게 이 37년의 세월을 한 길만 오롯이 가실 수 있었을까요?
◆ 김진숙> 그 일을 같이 했다는 그런 경험들도 있지만 그때 어떤 끈끈한 동료애 이런 것들도 있었지만 워낙에 한진중공업들이 큰 역사적 고비들, 투쟁들을 많이 겪어왔잖아요. 그러니까 열사 투쟁만 해도 몇 번을 했던 노조들이고 노조고. 그리고 또 2011년도에 정리해고 투쟁을 크레인 위에서 309일을 했었을 때 그 투쟁을 지켜주고 제 목숨을 지켜줬던 게 우리 조합원들이고 희망버스였고 시민사회단체였기 때문에 그런 힘들로 지켜왔다.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가장 벅찼죠.
◇ 박재홍> 먼저 세상을 떠났던 동료들 그러니까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최강서 열사 이분들에 대한 기억도 다시 새롭게 좀 오늘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떠셨습니까?
◆ 김진숙> 그분들 생각이 제일 많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박창수 위원장도 작업장을 입은 채 끌려가서 감옥에 갇히고 그리고 결국은 죽고 아직까지도 의문사로 남아 있고 김주익도 크레인 위에서 못 내려온 채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맸던 그런 분들도 너무 현장에 돌아오고 싶어 했고 조합원들을 만나고 싶어 했고. 그 최강서 같은 경우도 사실은 복직하기로 합의해 놓고 그 약속을 또 회사가 안 지켰기 때문에 목을 맸던 거거든요. 얼마나 복직이 하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꿈들과 열망들을 제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너무 아팠습니다.
◇ 박재홍> 그 동지들의 꿈과 열망을 담아서 마침내 우리 김진숙 위원님의 37년의 긴 싸움을 오늘로 마무리하신 것 같아요. 그동안 너무 고생하셨다라는 말씀드리고 싶고 이제 앞으로의 삶 어떻게 사실 것인지 또 여쭤보고 싶네요.
◆ 김진숙> 복직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 저는 이제부터 26일부터 막 살겠습니다, 이런 글을 제가 트위터에 올렸었는데.
◇ 박재홍> 막 살고 싶다.
◆ 김진숙> 정말 정상인의 삶을 살고 싶은. 그런데 너무 또 오랜 세월을 평범하지 못한 삶을 살아서 그게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여러 사람들이 막 사는 데 도와주겠다고 그러더라고요.
◇ 박재홍> 막 사시면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뭐세요, 위원님?
◆ 김진숙> 사실은 여행도 다니고 싶고 이런저런 꿈들이 있는데 이제는 또 몸이 또 여의치를 않아서.
◇ 박재홍> 그렇죠.
◆ 김진숙> 하여튼 우선은 건강을 회복하는 데 시간들을 써야 될 것 같습니다.
◇ 박재홍> 재작년에는 청와대까지 가는 도보 행진하실 때도 암 투병 중인 상태였잖아요. 지금은 건강 괜찮으세요?
◆ 김진숙> 재발하고 작년에만 해도 수술을 큰 수술을 여러 차례 해서 아직도 성치는 않기는 한데 회복해야죠.
◇ 박재홍> 이제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누리시는 그러한 막 사는 삶 정말 누리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 아시는 것처럼 대선 투표가 얼마 안 남았지 않습니까? 여야 대선주자들 요즘 노동 관련 공약들 내놓고 있지만 빈곤하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는데 우리 김진숙 위원의 복직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될까요?
◆ 김진숙> 이게 저 한 사람의 복직의 의미보다는 너무 많은 해고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저를 보시기보다는 그분들의 현재 삶들 그리고 회복되지 못한 명예들, 그런 것들도 눈여겨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여튼 옛날 70~80년대 해고됐던 동일방직이나 청계피복이나 YH나 그리고 부산의 수많은 신발공장 노동자들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노동조원들도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명예라도 회복할 수 있는 길들을 모색을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가 시대의 복직이라고 얘기했던 것들의 시작이었으면 좋겠어요.
◇ 박재홍> 시대의 복직 너무나 뭐랄까요. 가슴이 떨리는 말이기도 한데요. 남은 자들의 역할이 굉장히 클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서 재작년 12월에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도보 행진도 하셨지 않습니까? 사실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에서 함께 활동을 했던 옛날 동료이기도 하죠, 노동운동을 함께하셨던. 이제 임기를 마치는 문 대통령에게 어떤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김진숙> 아쉽죠. 그리고 최소한 약속하셨던 정규직화 약속만이라도 지키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최소한 그건 하시지 않겠냐는 기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선되시고 나서 취임하시자마자 인천공항에 달려가시고 비정규직들에게 그 약속을 하셨을 때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그 뉴스를 들었던, 소식을 들었던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희망을 걸고 눈물을 흘리고 자신들의 달라진 미래를 꿈꿨겠습니까? 그런데 그 노동자들이 아직도 싸우고 있고 사법 처리를 당한 노동자들도 많고 그래서 하여튼 문재인 대통령께서 모르겠습니다. 임기 얼마 안 남기는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라도 최소한 어떤 사죄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박재홍> 다음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저희가 스튜디오에서 한번 뵀으면 좋겠습니다.
◆ 김진숙> 고맙습니다.
◇ 박재홍> 말씀 감사합니다.
◆ 김진숙> 고맙습니다.
◇ 박재홍> 해고된 지 37년 만에 복직하신 분이죠. 한진중공업의 해고 노동자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봤습니다. 사정상 사전녹음으로 진행이 됐고요. 인터뷰 들으신 다음에 한마디씩 짧게 들을까요. 진 작가님부터.
◆ 진중권>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37년간 삶 전체를 바쳐서 투쟁해야 되고 또 심지어 어떤 분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상황인데. 이번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더 큰 이야기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현재 진행형이라는 상황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 박재홍> 김 소장님.
◆ 김성회> 한 시대의 상징이 고별인사를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씀처럼 이제는 미래로 향할 때인데 그 방향이 지금과는 저는 사뭇 다를 거라고 생각하고요. 김진숙 지도위원님, 남은 일은 남은 사람들이 해결해 갈 테니 존경과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드리고요. 부디 막 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박재홍> 청취자 여러분도 김진숙님 가슴 뭉클하다라는 말씀. 또 뉴욕맘 님은 앞으로의 막 사는 삶을 응원하겠다는 말씀 주셨습니다. 저희 한판승부도 응원하겠습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2/25(금) ‘37년 만에 복직’ 김진숙 “저 오늘부터 막 살거예요”
202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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