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3화 보통의 삶이 깃든 이야기를 파는 구멍가게
그대아침
2024.12.03
조회 82
몇 해 전, 책 때문에 인연이 이어진 기자에게 문자가 왔다.
'작가님, 우리 동네 유심수퍼가 조만간 문을 닫는대요. 사진 안찍으셨으면 얼른 다녀가세요.'
'아, 할머님이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아쉬움이 들었다.
유심수퍼에는 두 번 찾아가 인사를 드렸었다. 팔순이 넘는 연세에도
강단 있어 보이는 선한 얼굴의 할머니가 계신 곳이었다.
50년 넘게 해온 장사를 접으시려는 모양이었다.
혼자 장사하며 자식 키우느라 고생 많으셨으니 쉬실 때도 되었다 싶으면서도
서울의 오래된 가게 중 하나가 문을 닫는다니 마음 한 귀퉁이가 허물어지는 듯 울먹했다.
꽃이 피면 지는 게 순리인데 매번 스러지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
몸을 낮추고 거센 비바람과 혹한, 그리고 모진 세월에도 견디어 내는
구멍가게는 작지만 단단하게 그린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왜 작고 오래된 쇠락하는 가게 풍경을 그리느냐고,
인류의 가치관을 대변할 좀 더 근사하고 웅장한 상징물을 그리라고 한다.
기억의 향수에 머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더 높이 수직을 보라 한다.
그렇지만 왕조의 유물,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상징물보다
나를 더 강렬히 잡아끄는 것은 보통의 삶에 깃든 소소한 이야기다.
사람 냄새나고 매력 있게 다가온다.
수직에서 느껴지는 경쟁과 성공 지향의 이미지와 엄숙함, 숭고함이 나는 낯설다.
그저 동시대의 소박한 일상이나 사람과 희망에 의지하여
오늘도 작업에 임할 뿐이다.
정겨운 구멍가게, 엄마의 품, 반짇고리 같이
잊고 있던 소중한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미경의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