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길치인 나는 어딘가를 찾아가는 일이 늘 힘이 들었다.
이 빌딩이 저 빌딩 같고 저 빌딩이 이 빌딩 같고, 또 이 골목이 저 골목 같고,
간판도 다 똑같게 느껴진다. 하지만 숲은 다르다.
내 발로 걸어본 숲길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딱 한 번 가본 길이라도, 또 가본 지 이삼년이 지났더라도
희한하게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숲속의 특정 나무나 풀을 찾아가는 길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사람들은 “숲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나무와 풀밖에 없는데 어찌 찾아가느냐”
라고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나무와 풀들이 서로 다르게 보이고
그 다른 점을 누구보다도 잘 기억하는 편이다.
사람들이 도회지의 건물과 간판들을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듯이
나는 숲속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과 풀들,
그리고 바위들을 이정표 삼아서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날도 역시 그 친구랑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목적지 근처에서 내렸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하지?' 불안하고 당황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친구에게 또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길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 반복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고 했더니,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보이는 가로수가 무슨 나무야?" "회화나무"
친구의 질문에 나는 아주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럼 그 길로 그냥 쭉 걸어와. 그러면 회화나무 가로수가 끝나고 버드나무가
시작되는 곳이 있을 거야. 세번째 버드나무 아래서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얼마 걷지 않아서 저 멀리 버드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겨우 마음이 놓였다.
더욱 빠른 걸음으로 버드나무를 향해 걸었다.
세번째 버드나무 아래에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고,
친구는 만나자마자 인사도 없이 나를 타박했다.
친구의 타박을 듣고도 실실 웃었다.
*김영희의 <가끔은 숲속에>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