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장을 부려 친구들과의 약속에 늦게 생겼다. 부리나케 준비를 마치고 아파트를 나오는 길이었다.
곳곳에 잔설이 남아 있는 후문을 지나고, 내 앞에 곱상한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곱게 빗은 머리에 말쑥한 옷차림 단정한 걸음걸이를 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품이 넓은 옷가지에 걸음걸이가 약간 기우셨다.
한 손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할머니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부축보다는 '할머니의 손을 의지하고 있었다'가 더 맞는 표현이겠다.
급한 나의 마음처럼 분주한 내 걸음과 여유가 널린 노부부의 여백이 묻은 걸음에
우리의 간격은 점점 좁혀져갔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나의 달팽이관을 자극하는 말이 오고 갔다.
어떤 문장이 있었는데 말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게 일품이었다.
느긋한 그들의 걸음걸이와 비슷하게 할아버지의 입술이 느린 곡조로 연주되었다.
"우리 약간 늦게 갑시다. 혹시 위에서 누군가 불러도 약속에 늦은 사람처럼 늦게 갑시다.
걷기만 하면 내 남은 손이 한 손밖엔 없는데, 그 손을 둘 곳이 당신이라면 좋겠소. 고맙고 미안하구려."
느닷없이 마음이 허물어진다. 사랑을 가하고 사랑을 입혔다.
가애(愛)자는 할아버지, 피애(愛)자는 할머니. 방금 나는 현장의 목격자가 되었다. 사랑이라는.
확언을 즐기지는 않지만, 지금 내가 목격한 이 장면이 사랑이 아니라면
단언컨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은 부정으로 귀결될 것이다.
훗날 누군가가 나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자문한다면 나는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싶다!
“남은 손이 한 손밖에 없는데 그 손을 둘 곳.”
*권용휘의 <계절의 단상>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