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예보에 없던 비가 갑자기 쏟아져 하교 시간까지 이어지면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마중 나온 엄마들로 복도며 현관 앞이며 운동장이 붐비곤 했다.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하나둘씩 사라지면
아무도 마중 오지 않은 몇몇 아이들이 체에 걸러진 알갱이처럼 현관 앞에 남겨졌다.
우리가 거기 모여 있었던 건 올 수 없는 어른들을 기다리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산성비를 두려워해서는 더더구나 아니었다.
엄마들이 대거 마중 올 정도의 비라면 꽤 거센 편이어서 좀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물론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기다림이 하염없어지면 성질이나 사정이 급한 아이들부터
냅다 빗속으로 뛰어들었고,
그러면 나처럼 먼저 행동할 정도로 대범하지는 못하지만 성질은 급한 편인 아이들도 따라 뛰었다.
그렇게 비를 흠뻑 맞으며 뛰어다니면 괜히 신이 났고,
평소에는 금기시되는 어떤 것을 상황에 맞게,
내 의지대로 선택하는 융통성을 발휘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열 살도 안 된 나에게 그런 융통성은 '어른의 것'이었으므로 어른스러운 행동을 한 것에 조금 우쭐해졌다.
우리에게는 은근한 자부심 같은 게 있었다.
이까짓 비쯤은 얼마든지 혼자서도 부딪힐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은 느낌.
실제로 교실에서 볼 때는 안 그랬던 아이들도 엄마의 우산 아래 들어가면 갑자기 어린애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들의 안락을, 우리는 우리의 자율을 나눠 가진 셈이었다.
그러고 나니 더욱더 드라마 등에서 챙김, 특히 '엄마의 챙김'을 받지 못해
쓸쓸하게'만' 그려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걸 보고는 아이에게 미안해할 엄마들이 떠오를 때마다, 항변하고 싶었다.
전혀 쓸쓸하지 않았던 아이들 역시 많았다고.
우산 속 자리도 아늑했겠지만 우산 밖 빈자리가 우쭐했던 아이들도 분명 있었다고.
그 빈자리를 스스로 채워가며 커간 아이들이 갖게 되는,
산성비도 부식시키지 못할 단단한 마음 같은 게 있다고.
설령 그렇지 않았던들 그건 엄마들만 미안해할 일이 절대 아니라고.
*김혼비의 <다정소감>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