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8일 한겨울에 이사를 했다.
겨울에 이사 오려면 가을에 계약을 했을 터이므로,
나는 키 큰 은행나무가 한 줄로 늘어선 단지를 걷다가
그 노란 은행잎 색을 흡수한 황금빛 햇살이 길게 드리워진 거실을 보고 결정을 했다.
그러나 이사 들어오던 날 다시 본 이 집과 동네는 낡고 황량하고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겨울은 이 동네살이에겐 최악의 계절이었다. 일생일대의 실수란 이런 걸 말하는 건가.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어느 날 저녁 우리 아파트 단지 바로 옆이었던
굴다리 시장이라는 곳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찾아갔다.
좁은 시장통의 거의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았는데 저 멀리 한 곳만
주변을 환하게 만들 정도로 밝은 불이 켜져 있었다. 이끌리듯 그곳으로 향했다.
과일가게였다.
“귤 얼마예요?”
“귤? 겨울엔 귤이 최고지. 우리집 귤 먹어봤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집에 와서 하나씩 까먹은 그 귤은 꿀맛이었고 나는 아이와 마주 앉아
웃으며 말했다. “맛있다. 귤이 맛있어.”
그 뒤로도 늦은 저녁 시장 골목을 걷다 노란 빛이 세어나오는 가게들을 보면
좀 거창하지만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을 떠올리곤 했다.
“모든 것이 허무였고 인간도 허무였다. 바로 그것 때문에 반드시 빛이
필요하고 약간의 깨끗함과 질서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단어를 바꾸어본다.
“모든 것이 불안이었고 선택도 불안이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반드시
빛이 필요하고 약간의 친절함과 맛있는 과일이 필요한 것이다.”
*노지양의 <오늘의 리듬>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