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107화 찰나의 순간을 잡으며 생각 정원을 거닐어요
그대아침
2025.01.07
조회 171
천체망원경을 갖고 별들을 관찰하고 싶다.
올겨울에는 반드시 주황색 양말을 신고 싶다.
어디서든지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종일 지치도록 수영을 하고 싶다.
앵무새 한 쌍과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싶다.
토요일 오후에는 핀란드 헬싱키의 벼룩시장에 가보고 싶다.
날씨가 화창한 주말에는 도시 근교의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와 기린을 보고 싶다.
그리스어를 익혀 [그리스인 조르바]를 원서로 읽고 싶다.
한 주에 두 끼는 팥죽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싶다.
지중해의 크레타 섬에서 딱 두 계절만 보낸 뒤 돌아오고 싶다.
옛날에 살던 동네, 혜화동이나 성북동에서 다시 살아보고 싶다.

열아홉 살로 돌아간다면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내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눈먼 돈이 생기면 만사를 제치고 북극의 오로라를 보러 여행 가방을 꾸리고 싶다.
제주도에서 작은 서점을 꾸리며 만년의 시간을 지내고 싶다.
언젠가 우정에 관한 심오하면서도 근사한 책을 쓰고 싶다.
모란과 작약으로 가득한 정원을 가꾸고 싶다.
언제라도 흉금을 털어놓고 평생 우정을 나눌 만한 친구 한 명이 있으면 좋겠다. 

나는 오후 느지막이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 앞에 멈춰 서 있다. 지금은 빨간불. 
나는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어 점멸할 때까지 이 앞에 서 있다.
그 찰나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들이 파노라마를 이루며 흘러간다.
기특한 생각도 있고, 허황하거나 터무니없는 생각도 더러 섞여 있다.
내가 깨달은 것은 건널목이 생각하기에 좋은 장소라는 점이다.
건널목은 아주 짧게 번성하다 이 세상의 모든 건널목들은 사라지는 '생각 정원'들이다.


*장석주의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