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108수 콩 한쪽을 나누더라도 즐거움을 다하는 것이 효도라 하였으니
그대아침
2025.01.08
조회 175
밤늦도록 할머니가 돌아오시지 않으면 나는 언제나 동구 밖까지 나가서 
기다리곤 했다. 산나물을 뜯거나 땔감을 하러 가셨을 할머니는 자주 늦으셨다.
어둠을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 저편으로 희미한 달빛을 받으며
할머니 그림자가 어른거리면 나는 크게 할머니를 불렀다.
짐을 부려 놓자마자 할머니는 저녁을 차리셨다.
할머니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어느새 저녁상이 준비되었다.
찬거리가 다채롭지 못한 처지라 준비할 것이 많지 않은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할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은 언제나 아름답고 풍족했다.
지금 생각하면 밥과 된장찌개, 김치 한 쪽 정도였을 밥상이 그렇게
깊은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참 불가사의 한 일이다.

내가 자라서 월급을 받게 되었을 때, 나는 다달이 할머니에게 용돈을 드렸다. 
외지에 나가서 직장 생활을 하는 손자가 애처로웠는지,
할머니는 언제나 돈 받기를 주저하셨다.
한번은 할머니께 옷을 사 입으시라고 용돈을 드렸는데, 
몇 달이 지나도 할머니의 허름한 옷은 바뀌지 않았다.
돈을 다른 데 쓰셨는가 싶어서 조금은 섭섭했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난 뒤, 할머니의 짐을 정리하다가 한 뭉치의 돈을 발견했다.
부모님은 그 돈의 출처를 의아하게 여기셨지만 나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내가 드린 용돈을 고스란히 모아서 보관하고 계셨던 것이다.
할머니께서 원했던 건 어쩌면 용돈보다는, 소박할망정 손자와의 식사 한 끼
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한 끼 식사의 
풍요로움을 알아차리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어렸고 철이 없었다.
‘숙수지환’이라는 말이 있다. “콩을 먹고 물을 마시더라도 즐거움을 다하는 것, 
그것을 효라고 한다”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하였다.
효도란 경제적 부유함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김풍기의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마음>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