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211화 환하고 따뜻한 기억에 번지는 향기로운 그대가 되기를
그대아침
202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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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마른 빨래 냄새가 난다.
그 시절 나는 햇볕에 보송보송 마른 기저귀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태어난 조카들은 연년생이나 두세 살 터울이었다.
그즈음 살던 한옥 마당의 바지랑대로 높인 빨랫줄에선 하얀 기저귀들이 볕과 바람에 바싹 말라갔다.
대청마루에 앉아 하얀 기저귀를 서툰 손놀림으로 개다 보면
은은히 떠도는 빨래 냄새 속에서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그럴 땐 계절이 봄이든 여름이든, 가슬가슬한 가을볕이 어깨를 어루만지는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기억에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은은히 번지는 향기와 달리, 
기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냄새들도 있다.
어린 시절 어느 날이었다. 밖에서 실컷 놀다가 집에 들어섰는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온 집안에 꽉 차 있었다. 비린 듯 퀴퀴한 냄새였다. 
말린 고사리 삶는 냄새가 그렇게 지독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날부터 고사리나물에 손도 안 대는 것은 물론이고,
빈대떡에 든 고사리를 슬쩍 발라내고
비빔밥을 비비기 전에 고사리부터 건져내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사회에 나온 뒤로는 가리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스스로 찾아 먹게 되지는 않는다.
몸은 어느 한때 질렸던 냄새를 끈질기게 기억하고 있는 듯싶다.

그러나 아무래도 가장 오래도록 그리고 강렬하게 남는 냄새는 사람의 향기일 것이다.
단순한 체취가 아니라 냄새를 맡을 수 없는 먼 거리에서도 느껴지는 어떤 것.
입에 올린 한마디의 말,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외부의 자극에 진동한 가슴의 파장......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저마다 고유한 향기를 만들 것이다.
젓가락도 대기 싫은 음식의 냄새보다는 환하고 따뜻한 기억에 번지는 향이 되고 싶은데,
그런 향이 몸에 배게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혜경의 <그냥 걷다가, 문득>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