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230화 인생에서 무엇에 집중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대아침
20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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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우연히 눈에 띈 카페에 들어갔다. 양쪽 벽면이 온통음반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카페였다.
알고 보니 고전음악 애호가이자 음반수집가인 카페 주인이 중학생 때부터 오십 년간 모은
음반들이었다. 친구와 나는 한참이나 음반들을 구경했다. 고전음악에 조예가 깊은 친구는
어머, 이 실황 앨범이 여기 있네, 와아, 저건 진짜 희귀한 한정판인데, 하며 줄곧 눈을 반짝였다.
그것들의 가치를 모르고 보아도 그 많은 시디와 엘피 레코드가 카페 천장까지
빈틈없이 꽂힌 풍경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었다.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카페 주인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했다.
그러다가 문득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주인은 저 음반들을 한 번씩은 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한 번씩 더 들어볼 수 있을까 하는 것.
음반 한 장 듣는 데 대략 한 시간이 걸린다고 치자.
하루 이십사 시간 중 수면 시간을 포함하여 불가피하게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시간을
열 시간으로 계산해서 그것을 빼고 종일 음악을 듣는다면 매일 열네 개의 음반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수명을 백년으로 가정해도 그는 죽기 전에 저 음반들을 끝까지 다 들어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재생되는 음악.
주인보다 오래가는 음반들. 주인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하기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작가들에 비하면 집에 책이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사할 때마다 가장 큰 짐이 책이니 적은 편이라고도 할 수 없다.
게다가 처분하는 책은 적고 새로 유입되는 책은 많으며 설상가상 처분했던 책을
다시 사들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으니 책들의 총량은 필연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매일 한 권씩 독파한다 해도 십 년에 겨우 3,650권. 삼십 년이면, 사십 년이면..
나는 죽기 전에 내 책장의 책들을 끝까지 다 읽지 못할 것이다.
카페 주인과 달리 아예 한 번도 못 읽고 죽는 책도 있을 것이다.
그거 멋지네. 친구의 대꾸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어쨌든 자신이 인생에서 무엇에 집중했는지, 놓친 게 무엇이고 이룬 게 무엇인지
한곳에 모아놓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거잖아. 친구는 덧붙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쫓기듯이 살거든.
여전히 어안이 벙벙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뭔가 묘하게 설득당한 기분으로
나는 카페 주인의 반백년 인생이 오롯이 담긴 수천수만 장의 음반들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김미월의 <엄마 껴안기 대회>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