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115목 지탱할 수 있을 만큼만 열매를 달았으면
그대아침
2026.01.15
조회 117
결국 감자를 사고 말았다. 그것도 두 무더기나 말이다.
병원 갈 때 마트 앞에 진열되어 있던 감자였다.
가격도 얼마나 착한지 한 무더기에 2천 원이었다.
그러므로 싱싱하고 윤기 나는 감자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점점 무겁게 느껴져서 안고 걸었다. 오늘 치료사가 팔의 통증은 더 심하다면서
집에 가면 냉찜질을 꼭 하라고 했다. 아무래도 어깨에 무슨 무리가 가서
염증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당장 감자를 먹지 않아도 되련만 욕심을 부렸나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감자 봉지가 아니라 돌덩이처럼 느껴졌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 이정록, <의자> 가운데 

'허리' 대신 '어깨'로 바꾸어서 '어깨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로 바꾸어야 되겠지만,
요즘 마음마저 돌덩이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몸을 누르다 못해 마음이나 의지까지 짓누르는 돌덩이 말이다.
언제쯤이면 집에 도착하나! 내 발이 빨리 집에 가 닿는 것만이
최대 소망이자 최고의 목표가 되어버린 그때, 시 하나가 또 떠올랐다. 

가지에 벌레 먹은 자국이 있었나? 과거에 남모를 깊은 상처가 있었나? 
아니면 바람이 너무 드셨나? 그러나 나무 허리에선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너무 많은 열매를 나무는 달고 있었다.
-공광규, <욕심> 가운데

어깨 입장에선 억울할 만도 하겠다. 생전 스트레칭 한 번 안 해주고 종일 
휴대폰과 노트북으로 작업하거나 책을 본다고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던 주인이다.
그리하여 피가 잘 돌지 않아 염증이 생기고 돌이 되고 말았다. 급기야 어깨 관절까지 붙어버렸다.
글 한 줄 더 쓰고, 책 한 장 더 읽고, 강의 하나 더 듣겠다고, 운동하는 걸 무시했다.
그리하여 감자 한 봉지 드는 것도 힘겨워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탱할 수 있을 만큼만 열매를 달았다면 대추나무는 부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곳엔 이상 없었으니 더 센 바람이 와도 끄떡없었을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나도 하루에 한 시간만이라도 운동에 내어주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속으로 '대추나무'와 '열매'를 되뇌다 보니 집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적당한 열매를 달겠다고 다짐하면서 드디어 돌덩이를 내려놓았다.

*김건숙의 <비로소 나를 만나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