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 선물해주고 싶을 만큼 잘 볶은 원두가 있어서 더치를 내렸다.
찾아보니까 마침 밀봉이 되는 유리병도 딱 하나가 남아 있었다.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원두도 좋았고, 병도 딱 하나 남아 있었으니까.
여덟 시간 동안 커피를 내렸다. 여덟 시간 동안 직접 물을 한 방울씩 떨어트린 건 아니지만
중간중간 잘 내려지고 있는지 계속 확인해야 했다. 저녁이 돼서야 커피는 다 내려졌다.
하나 남은 유리병에 조심히 옮겨 담고 갈색 상자에 더 조심스럽게 담았다.
늦은 시간에 퇴근을 마치고 커피를 선물하기 위해 걷고 있었는데 마음이 꽤 들떴다.
선물은 그렇다. 사러 가는 길이나 만드는 순간부터 선물을 받고 좋아할 사람의 모습이 상상된다.
기분이 좋아서 상자를 흔들면서 걸었기 때문인지 상자가 약해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상자 밑이 터져버렸다. 커피는 아스팔트 위로 처참히 떨어졌다. 큰 소리와 함께 완벽히 깨졌다.
선물 받을 사람은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괜찮기에는 향기가 너무 좋았다.
병이 깨진 곳 옆은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었는데도 깨진병에서 새어 나온 커피 향기가 거리를
덮을 정도로 좋았다. 늦은 시간이라 거리에 아무도 없었는데 그 고요함이 더 속상하게 만들었다.
유독 병 깨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으니까.
그냥 병 하나가 깨졌을 뿐인데 상처로 남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곧 선물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의 모든 설렘이 단번에 싹둑 잘린 느낌.
만약 그 커피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었다면 바로 다시 샀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고 하나밖에 없는 병이었으며 그 향기를 곧 선물할 사람이 마실 수 있었다.
한참 지난 일이지만 그날 이후로 그때와 같은 갈색 상자에 커피를 담아야 한다면 테이프를 붙인다.
사람들 눈에 보이는 곳은 조금만 붙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 번 터진 기억이 있는 밑바닥에는
덕지덕지 붙인다. 상처는 늘 이렇다. 보이지 않는 곳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이게 만든다.
테이프가 붙은 마음을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하면서.
*박근호의 <비밀편지>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