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129목 시간이 흘러 다시 본 영화 속에서 찾은 '용기'
그대아침
2026.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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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비포 선라이즈>를 또 한 번 봤는데 이번에 느낀 단 하나의 용기는 
‘기차에 오른 일’이다. 영화는 기차 안에서 시작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의 집에서 나오게 되는 순간이 있었을 거다.
각기 앉아 있던 일상, 어떤 이유로든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나 기차에 올랐다.
짐 가방을 꺼내고, 책 몇 권과 옷을 챙겨 넣고, 비행기와 기차표를 끊고, 안전한 자리에서 일어난 것. 
그 용기로부터 모든 게 시작된 것처럼 보였다. 

<비포 선라이즈>를 처음 보았던 10대의 나에게 기차 타는 일 따위는 용기가 아녔을 거다.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라, 다음의 말과 행동이 더 대단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기차 타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회사에 연차를 제출할 수 있을까.
그때 같이 갈 사람이 있나. 혼자 떠나볼까. 그냥 집에서 쉬는 게 낫지 않을까’ 
요즈음의 내 주변에는 작고 적은 용기만이 머문다. 일, 사랑, 우정, 가족, 여행,
주말 심지어 매일 하는 산책에도 관성이 생겼다.
뭔가 사건을 만들려면 전과 다르게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음을 단단히 여며야 한다.
자연스레 용기 내는 사람을 보는 마음도 전과 달라졌다. 아름답다.
용기를 내 기차에 오르는 사람에게는 이유를 묻지 않고 “멋지다”고 말하게 된다.

나도 멋지면 좋겠지만, 요즘은 어느 일 하나에 용기 없이 사는 자신이 제법 마음에 든다.
기차에 오르는 일을 포기한 대신 관성에 기대 하루를 보내고, 
매일 부지런히 걸어 출근을 하고, 동네에서 편안한 친구를 만나고,
자기 전에 고양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괜찮고 충분해서 용기는 아껴둬도 괜찮지, 싶다.
이러다 어느 날에는 또 거대한 용기가 올 수 있을까. 오면 좋지.
감당할 수 없이 커다란 용기가 온 날,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 누워 있는데
이불 밖으로 나온 내 발가락들이 요란스레 움직이던 모양이 떠오른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웃다가 조용히 잠에 든다.

*박선아의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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