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213금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가장 정직한 자화상 아닐까
그대아침
202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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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거울을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이유는 너무 많지만, 특별한 목적(새치를 뽑아야 하거나
턱에 여드름이 있거나)이 있지 않는 한 거울을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한다.
아마도 내 얼굴을 마주하는 게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와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것에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면서도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재빨리 머리를 쓸어 넘긴다.

생활은 마음을 닮아간다. 그럴 때는 문득 거울이 보고싶다. 지금 도착해 있는 얼굴을 보기 위해서.
마음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얼굴에 있다고 믿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마음이 간에 있다고 생각한다던데,
그 말을 들은 뒤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 것 같냐고 물어보곤 했다.
심장이 있는 가슴을 가리키는 사람, 두 손을 살포시 포개어 보여주는 사람,
제 머리를 쓰다듬는 사람, 제각기 다른 대답을 했다. 마음에는 주소가 없어서
우리는 종종 갈피를 잃는 것일까. 그래서 잎새처럼 늘 흔들리며 살게 된 것일까.

얼굴이 표정을 만드는 게 아니라, 표정이 얼굴을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 그 마음으로부터,
얼굴은 충실히 마음을 반영하는 듯하다.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사람을 보면서 길거리에
쓰레기 하나 버리지 않을 것 같고, 무언가에 복받쳐 엉엉 우는 사람을 보면 일기장에
솔직한 문장들로 가득할 것만 같다. 투명한 얼굴로 진실한 마음을 출력하는 얼굴이라는 삶,
표정이라는 생활을 내내 헤아리다가 수백장 속의 사진 속에서 고른 내 얼굴은 여지없는 나였다.

휴대폰 속에서 즐거운 것을 쫓다가 잘 시간을 놓치고 부랴부랴 화면을 끄면,
문득 검은 화면에 비친 얼굴을 본다. 아무런 표정도 가지지 않은 얼굴을.
나도 가늠한 적 없는 얼굴을 만날 때마다 나의 얼굴을 외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비엔나에서 보았던 에곤 실레의 자화상처럼.
자신의 불안과 우울을 지진계 삼아 그렸던 그 얼굴은 완성된 얼굴이 아니었다.
그저 그날의 자신이었을 뿐이다. 자화상은 내가 가진 투명함에 용기를 내거는 일일 것이다.
모르는 척, 못 본 척 지나갔던 내 얼굴의 찡그림을 구경해보기로 한다.
안경을 고쳐 쓰고 갈라진 앞머리를 정돈하면서, 내게로 찾아온 빗금을 읽으며
오늘 도착해 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것. 거울 앞에 앉은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어떤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서윤후의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